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교육격차
EBS1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K> 5부작 ‘교육격차’가 화제다. 사교육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자녀의 교육만큼 관심을 끄는 이슈는 없다. 남들보다 일찍 입시 교육에 뛰어들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부모와 자녀의 지상 최대 목표. 지난 4월 19일부터 5월 2일까지 총 5부작으로 방송된 <다큐멘터리 K> ‘교육격차’는 대한민국 교육격차의 실태와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살펴보고, 교육격차 해소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내용을 담았다.
1부 ‘격차의 조건’은 교육격차는 무엇이며 어떤 요인에 의해 언제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 가능한 것인지 등 교육격차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교육격차는 지역과 제도적 요인, 학교 특성, 개인의 지적 능력, 사회경제적 배경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육적 수준 차이를 말한다.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이 문제.
1,000개가 넘는 학원이 밀집해 있는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성공하려면 아이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공부는 아이 몫, 정보 수집은 엄마 몫, 경제력은 아빠 혹은 조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게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선행학습과 엄청난 학습량이다. 그냥 열심히 해서는 안 되고 경쟁자보다 더 열심히 해야 좋은 입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2022년 서울시의 서울대 입학생 순위를 보면 1위는 강남구(231명)이고, 25위는 강북구(7명)였다. 그러다 보니 다들 8학군, 대치동을 꿈꿀 수밖에 없다. 교육격차는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3살 이전부터 이미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해 7살까지 계속 증가한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사교육을 효율적으로 받은 학생은 당연히 높은 입시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진학한다.
하지만 그 결과만큼 똑똑하지 않은 학생도 물론 있다. 바로 똑똑해 보이는 치장법으로 입시에 성공했기 때문. 주입과 반복, 문제 푸는 요령만 학습하는 입시 교육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대학들도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인재상을 확립하고 진짜 인재를 뽑기 위한 입시를 고민해야 한다.
2부 ‘나의 자퇴기’는 필요에 의해 스스로 자퇴를 선택한 아이와 어쩔 수 없이 자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학교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퇴하는 상황과 선행학습을 받지 못해 다른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어 불가피하게 자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 등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달라진 자퇴의 이유와 이후 더욱 심해지는 교육격차의 모습을 다뤘다. “성적이 공부를 한 정도를 나타내는 건지, 돈을 쓴 정도를 나타내는 건지 모르겠다”, “사교육에 맞춰 공교육이 변하고 있다”는 학생들의 인터뷰는 무너지고 있는 공교육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각자 어떤 이유로든 학교를 자퇴한 학생들은 모두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의 자퇴 이유를 성찰하면서 학교의 존재 이유, 공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3부 ‘인(in)서울이 뭐길래’ 편에서는 대학 입시를 위해 대치동을 오가는 지방 학생들, 벚꽃 피는 순서대로 사라진다는 지방대, 자녀의 교육 문제로 이직을 고민하는 학부모 등 서울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지역격차의 벽을 다뤘다. 대치동의 ‘윈터 스쿨’은 겨울방학에 지방에 사는 학생들이 대치동 학원 주변의 호텔에서 지내면서 철저한 감시하에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8주에 1,000만~1,200만원 정도의 큰 금액이지만 항상 조기 마감될 정도로 지방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방의 많은 고등학생은 원하는 전공보다 ‘인서울’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실제 지방에서는 인서울이 어렵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 신입생 중 서울 출신이 3분의 1을 차지하고, 서울대 신입생의 64%가 수도권 학생이다. 점점 지방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국립대를 포함한 지방대의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의 경우도 도시 붕괴가 시작된 지 오래다. 젊은이가 많이 줄어들어 오죽하면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 사람도 기업도 일자리도 모두 수도권에 몰려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나날이 커지고 있는 지역격차는 또 다른 모습의 교육격차다.
내 자녀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입시 교육
4부 ‘현수는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는 공교육의 시작인 초등학교에서 발견되는 격차를 들여다봤다. 입학할 때부터 시작되는 정보의 격차, 문화의 격차, 돌봄의 격차 등 여러 겹의 차이와 불균형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매년 한 반에 몇 명씩 만나게 되는 아이, ‘현수’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는 아이를 통해 격차와 소외,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가슴 먹먹하게 전달했다. 신도시보다는 원도심, 분양 아파트보다는 임대 아파트가 있는 학구에서 더 자주 발견되는 ‘현수’들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환경 탓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타고난 환경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게 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지지해주고 단단하게 혼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 아닐까.
5부 ‘스포일러’에서는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덴마크 등 5개국 20대 청년 2,800명을 대상으로 ‘교육격차와 공정성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가 공개됐다. 서로 다른 사회·경제·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한 20대 청년들의 교육격차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응답자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며 자신의 성취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지만, 정작 사회에서 청년이 성공하기 위한 요인으로 ‘노력’을 꼽는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특징을 보였다.
반면 한국을 제외한 4개국 청년 대부분은 성공하기 위한 제1의 요인으로 ‘노력’을 꼽았다.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부터 명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청년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못해도 존중받으며 살 수 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 입시에서 어려운 환경의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역차별이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노력인가, 환경인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환경보다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부분의 청년이 명문대생들이라는 것. 그들은 분명 중산층 이상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부모의 사회적 위치나 재력 등 환경의 영향 없이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으로 지금의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교육격차’를 보면서 우리의 교육 현실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는 됐지만, 사실 뚜렷한 대안이 없어 답답하다는 시청자가 많았다. 누구나 불공정하다고 인정하는 우리의 입시 교육 현실 속에서 격차가 아닌 평등과 공정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역 균형, 지역 인재, 기회균등 전형 등 교육격차가 심화될수록 이를 줄이기 위한 여러 보완책이 나왔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것이 역차별이라고 말하며 8학군의 1등급과 다른 지역의 1등급이 동일할 수 없다고 한다. 내 아이에게 좋은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니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답답한 현실이다. 대학 진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12년간 우리 아이들은 그야말로 전력 질주를 한다. 실제 설문조사에서도 고등학교 때까지의 공부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우리나라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공부’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했다. 반면 미국은 ‘적성과 흥미를 찾고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공부’, 덴마크는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공부’라는 답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우리나라 청년들이 유일하게 한목소리로 답변한 질문이 있었다. 바로 “내 자녀에게 내가 경험한 교육 시스템을 물려주고 싶은가?”였다. 청년 모두가 망설이지 않고 “아니오”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육의 민낯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망치고 있는 ‘스포일러(Spoiler:망치는 사람)’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