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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의 조언, 흔들림 없는 40대 맞이하는 법

스위스의 정신분석가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안 하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나이 마흔. 그 어떤 흔들림에도 무너지지 않고 꼿꼿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On May 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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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라는 숫자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불현듯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를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달려온 시간. 몸과 마음을 깎으며 지금껏 일궈온 것들을 돌아보고 성취 그리고 후회스러운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의 젊은 날은 저물었고, 나이가 들어가며 시작될 상실을 천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결코 절망하지 말라고 정신분석 전문의이자 작가 김혜남은 말한다.

2001년,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 아내와 며느리의 역할을 성실하게 해온 슈퍼우먼 김혜남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하는 뇌 조직의 손상으로 손발이 저리고, 근육이 뻣뻣해지며 몸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고 말소리조차 잘 나오지 않는 신경 퇴행성 질환이다. 보통 65살 이후 나타나는 노인성 질환이며 우울증과 치매, 편집증 등의 증상까지 동반한다. 병원에서 말한 그녀의 남은 생은 고작 15년, 그녀의 나이 겨우 42살이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지낸 지 한 달. 절망에 빠져 있던 그녀를 일으킨 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었다. 바로 침대를 박차고 나온 그녀는 하루, 이틀 그리고 지금까지 매일 밝은 아침을 맞이하며 10여 권의 책을 집필한 스테디셀러 작가가 됐다.

그리고 올해로 64살, 아직 찬란하기만 한 김혜남이 40살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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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신분석 전문의로서 많은 40대를 만났을 텐데, 보통 어떤 이유로 병원을 찾아오나요? 선생님의 처방도 궁금합니다.
신경정신과 의사를 찾아오는 사람은 진료실에 오기 전까지 많은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냅니다. 그래서 저를 마주하면 입을 열기도 전에 울음부터 터뜨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말없이 한 시간을 넘게 운 환자도 있어요. 그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거예요. 울고 싶을 때는 시원하게 우는 게 가장 좋은 처방이기 때문이죠. 울음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공격성을 씻어내는 배출구의 역할을 합니다. 마음속 슬픔과 공포감이 눈물이라는 맑은 분비물을 통해 방출되는 것이죠. 그래서 시원하게 울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정화된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특히 마흔이라는 나이는 감정을 분출할 기회가 드물지만 그럴수록 용기 있게 울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연민도 느끼고 스스로를 보듬다 보면 다시 일어설 힘을 갖게 될 겁니다.

Q 인생의 중반기라 할 수 있는 마흔은 실패에 대한 걱정 때문에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멈추기도 애매하죠.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나이가 들면 그 결정에 무게가 생기는 것이 맞아요. 선택한 길이 틀릴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 낭떠러지에 도착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한 발짝도 떼지 않으면 영영 아무 데도 못 가게 돼요. 하지만 생각을 비틀어보세요. 애초에 틀린 길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실패하더라도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닌 새로운 깨달음이기 때문이에요. 가장 빠른 직선 코스를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용기 내어 일단 한 발짝만 내디뎌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Q 선생님의 마흔은 어땠나요?
파킨슨병 증세가 시작된 건 40살, 진단을 받은 건 42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남은 인생이 15~17년밖에 안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죠. 물론 슬픈 마음이 가장 컸지만, 인생이라는 게 노력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이기도 해요. 가장 큰 변화는 운동을 시작했다는 겁니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머리에 침을 박아 뇌에 전기 자극을 주는 수술을 받았는데, 근육이 없으면 그 어떤 자극을 줘도 움직일 수 없거든요.

Q 받아들이기 정말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요?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파킨슨병 환자가 겪는 크나큰 고통을 내가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어요. 그러다 문득 이렇게 지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고, 초기 단계에 병을 발견한 덕분에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일어나 일상을 소화하기 시작했죠. 다행히 병원 문을 닫기 전까지 진료는 물론 강의도 열심히 했고 책도 여러 권 출판했어요. 무엇보다 운동을 시작하며 건강관리에 힘쓴 덕에 파킨슨병 환자에게 동반된다는 치매와 우울증, 사고력 저하가 매우 경미합니다.

Q 2014년 병원을 정리했죠. 이유가 있었을까요?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지 13년 되는 해였는데, 몸 상태가 갑자기 악화돼 더 이상 환자를 보는 게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체질 개선과 요양을 목적으로 제주도로 내려갔어요. 평생 의사로 살 줄 알았는데 인생은 참 모르는 일이죠. 언젠가 누가 내게 물은 적이 있어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정신분석 공부를 더 하고, 죽을 때까지 의사로 살고 싶다던 꿈을 포기하게 돼 속상하지 않냐고. 물론 전혀 속상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30년을 의사로 산 것도 괜찮다 싶어요.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시작됐으니까요.

Q 후회되는 건 없나요?
딱 하나, 인생을 너무 숙제처럼 해치우듯 살았다는 거예요. 의사,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 살며 저는 늘 의무와 책임감에 치여 모든 역할을 잘해내려 애쓰곤 했어요. 나 아니면 모든 게 잘 안 돌아갈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앞만 보며 달려간 거죠. 그래서 삶의 즐거움, 아이를 키우는 기쁨, 환자를 돌보는 성취감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서 남은 생은 그렇게 지내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제 글을 읽는 여러분도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더 챙기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Q 정신분석 전문의이자 아내, 엄마, 환자 등 인생의 경험을 담아 쓴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 최근 10만 부 판매를 넘으며 스페셜 에디션으로 발매됐습니다.
첫 발매가 2015년이었어요. 제 책을 잊지 않고 찾아준 것도 놀라운데 무려 10만 부 판매라니 신기할 뿐이에요. 예전 같으면 부끄러운 마음에 다시 책을 펴내는 것을 반대했을 텐데 그동안 부족한 내 책을 읽어주고, 정성스러운 리뷰를 남겨주고, 강연회에 나를 찾아와준 모든 독자에게 책을 통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Q 책에 담겨 있겠지만, 만일 인생을 다시 살 기회가 온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정말 많지만 몇 가지만 꼽자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싶습니다.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믿고 많은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해줄 것입니다.

Q 책 내용 중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이 함축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선생님은 인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고3이 되던 해, 친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의대에 입학했지만, 모든 게 허무하고 원망스럽기만 했어요. 인생을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죠. 그때 사촌 오빠가 저에게 해준 말이 있습니다. “혜남아, 인생에 최선만 있는 건 아니야. 최선이 안 되면 차선 그리고 차차선도 있는 법이거든. 그래서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게 인생이야.” 맞는 말입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들 그저 하나의 문이 닫힌 것뿐이에요. 차선이라는 다른 문이 있고, 차차선이라는 문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문 뒤에는 더 놀라운 가능성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끝까지 가보세요. 그것이 인생입니다.

Q 이제 막 40대의 인생을 시작한 여성에게 특히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은가요?
더 이상 스스로를 닦달하지 말고, 매사에 너무 심각하지 말고, 고민 없이 그냥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당신은 충분히 즐겁게 살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응원하는 김혜남이 늘 뒤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의 지혜로운 40대를 살아가는 법 7가지 

1 처음은 누구나 서툴다는 것을 명심할 것
2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도록 놔두지 말 것
3 스스로를 가로막지 말 것
4 나이 듦을 두려워하지 말 것
5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 것
6 한 번쯤은 무언가에 미쳐볼 것
7 어느 순간에도 나를 믿을 것

CREDIT INFO
에디터
이설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이븐 제공
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2023년 05월호
2023년 05월호
에디터
이설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이븐 제공
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