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은 국제학교들이 자리한 영어교육도시로 유명하다. 2000년대 조기 해외 유학 바람이 불면서 해외로 유출되는 외화와 늘어나는 기러기 아빠가 사회문제화되자 정부가 제주도에 국가 차원의 영어교육도시 조성 계획을 마련했다. 2008년 국토부가 서귀포시 일대에 교육도시를 건설하면서 외국어 능력 향상 및 국제화된 전문 인력 양산을 목적으로 영국과 캐나다, 미국의 명문 대학 유치전이 벌어졌다.
그렇게 문을 연 제주 국제학교가 어느새 개교 10년을 훌쩍 넘었다. 외국 체류 기간이나 부모의 출신 등 비교적 입학 조건이 까다로운 외국인 학교와 달리 국제학교는 내국인 입학 비율 및 입학 자격에 대한 제한 조건이 없다. 게다가 교육부 인가를 받은 국제학교는 국내 및 해외 학력을 동시에 인정받아 국내외 진학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도 학부모들의 이목을 끌었다.
국내의 국제학교는 크게 교육부 인가와 비인가 학교로 나뉜다. 대부분 미국식이나 영국식 교육과정을 따르며, 인가받은 국제학교는 총 7곳에 달한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으로는 인천 채드윅 송도국제학교와 올해 인가받아 재개교를 앞둔 캐나다계 칼빈 매니토바 국제학교가 있으며 좀 더 멀리 대구국제학교까지 총 3곳이 있다. 그리고 제주도 교육특구지역에 있는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제주(NLCS Jeju), 브랭섬홀 아시아 제주(BHA Jeju), 한국국제학교 제주캠퍼스(KIS Jeju,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SJA Jeju) 이렇게 4곳의 국제학교가 교육부 인가 학교에 해당한다.
정재계 유명 인사나 연예인의 자녀가 다닌다는 이유로도 시선을 끄는 국제학교는 최상의 교육 여건과 최고의 교육비로도 화제가 된다. 최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코로나19 이후 해외 유학의 대체지로 제주 국제학교가 다시 대두되면서 입학하려는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정원 증원 신청이 승인됐다고 발표했다. 본지는 교육부가 인가한 제주의 국제학교 4곳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을 만나 국제학교 경험기를 생생하게 들었다.
대치동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국제학교 주변의 학원가
우먼센스 제주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양지현 저희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왔어요. 그 전엔 서울 유명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3학년 때부터 수·과학 영재원을 준비했죠. 아이의 성향이 어떤 부분은 매우 영특한 반면 또 다른 부분은 많이 떨어졌어요. 대치동의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등 또래 동네 친구들이 하는 코스를 밟아가며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그 간극이 극복되리라 여겼는데, 오히려 어린 나이에 숙제나 과제가 많아 스트레스가 심했나 봐요. 어느 날은 멍하니 소파에 몇 시간을 앉아 있더라고요. 뭐하냐고 물었더니 여행 가는 중이래요. 깜짝 놀랐죠. 그러다가 캐나다 밴쿠버로 3주간 자유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로키 투어를 신청하게 됐어요. 현지의 중·고등학생들이 4박 5일로 떠나는 여행에 합류하게 된 거죠. 캐나다는 부모 없이 아이들만 집에 남겨지면 법적으로 처벌되기 때문에 맞벌이 부모가 많은 밴쿠버에서는 며칠이라도 식사가 해결되면서 안전하게 방학을 보내는 로키 투어를 많이 보낸대요. 물어보니 그중 어떤 친구는 12번째 로키 투어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한데 하나같이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밝은 거예요. 처음 보는 우리 애도 챙겨주면서, 플라스틱 물병 하나로 게임도 즐기고 책도 읽어가면서 스스로 시간을 보내는데 문득 서울에서의 우리 아이 모습을 돌아보게 됐어요.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의 경험이 국제학교로 전학한 큰 계기가 됐죠. 현재도 저희는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아요. 1등을 원하지도 않고요. 아이도 대치동에서의 생활과는 달리 사교육 도움 없이 스스로 잘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저희 아이를 좀 이상하게 보는 시선도 있어요. 여기 학생들도 학원을 많이 다니거든요.
우먼센스 국제학교의 학비가 비싼 것으로 아는데, 학원까지 다니는 학생이 많은가 봐요.
고민정 국제학교 주변에 학원이 정말 많아졌어요. 사교육이 당연한 것처럼 되고 있죠. 더구나 학원가에서 학교 시험에 최적화된 정보를 제공하니 불안 마케팅에 휘둘린 엄마들은 안 보낼 수가 없는 거죠. 학비가 비싼 만큼 학교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사실 그 안에서도 경쟁이 존재하니까요. 그 불안을 못 이기는 엄마들이나 학생들이 사교육의 힘을 빌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교육비, 학교 선택의 유의점과 커리큘럼,
아이의 변화까지…
제주 국제학교의 모든 것
영국식 vs 미국식 학교마다 확실히 다른 문화
우먼센스 제주에 있는 4개의 국제학교가 모두 조금씩 분위기가 다르죠?
양지현 학교마다 확실히 다릅니다. 특히 영국식 학교냐, 미국식 학교냐에 따라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영국식 학교는 아무래도 조금 보수적인 분위기라 각자의 필요에 의해 소수로 뭉치는 경향이 있어요. 학교 내에서도 예의 바르고 온순하게 행동해야 하는 규율 아닌 규율이 존재하죠. 거기에 비해 미국식 학교는 확실히 학생 중심적이고 선생님들의 간섭이 덜해요. 선생님들의 통제가 적은 것이 특색이지만, 학교에서 중심을 잡아주길 원하는 엄마들은 아이들을 너무 자유롭게 풀어준다고 불안해하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저는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낸 뒤 가장 만족하는 점이, 아이가 스스로의 약점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성격 변화예요. 학교 분위기 자체가 탁월하거나 두드러지지 않아도 칭찬하고 격려해주며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거든요. 성적으로 맨 앞 줄에 꼭 서야 한다고 연연하지 않는다면 만족감이 꽤 높은 것 같아요.
고민정 한국 학교는 다양성이 인정된다기보다는 시스템 내에서 움직여야 하잖아요. 국제학교보다는 좀 더 보수적이죠. 국제학교에서는 자신이 없어도 눈치 안 보고 스스로 관심 있는 분야를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도 언제부터 국제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느냐에 따라 목표가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초등학생 때 입학하면 영어를 주목표로 공부하죠. 고등학생 때 전학 오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과학고나 영재고, 외고 같은 특목고를 목표로 엄청난 선행을 하다가 오는 친구들은 학업에서만큼은 두드러지더라고요.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저는 학습만이 공부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