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5일 오전, 온라인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의 SNS(인스타그램)가 화제를 모았다. “전두환 일가는 자신들의 죄를 알지 못한다. 법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며 저격성 폭로 글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전우원의 아버지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인 전재용은 전우원의 글에 대해 “(정신적으로) 많이 아프다”며 해명했지만, 논란은 커지고 있다. 전우원은 누구인지, 전우원의 폭로 내용은 무엇인지, 향후 어떻게 사건이 흘러갈 것인지 짚어봤다.
전우원, 전재용과 두 번째 부인 사이의 둘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전재용은 세 번의 결혼을 통해 2남 2녀를 두고 있다.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고, 두 번째 부인과는 아들 2명을 낳았다. 폭로전에 나선 전우원이 바로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이다.
전재용의 세 번째 부인은 1990년대 유명 탤런트였던 박상아다. 박상아는 1995년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 1기에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2003년 무렵 전재용과 만난 뒤 사실상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이들 사이엔 딸이 둘 있다. 전우원의 여동생들인 셈이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박상아에 대해 ‘새어머니’라고 적은 전우원은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뉴욕 한영회계법인 파르테논 전략컨설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고, 현재는 퇴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3월 13일부터 작심한 듯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가족들의 ‘어두운 모습’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전우원은 자신을 수치스러운 사람의 손자이자, 악마 같은 사람의 아들이라고 설명했다. 수치스러운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악마 같은 사람은 아버지인 전재용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우원은 “할아버지가 학살자라고 생각한다. 나라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라고 표현하며, “제 가족들이 행하고 있을 범죄 사기 행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폭로 이유를 밝혔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검은돈’ 의혹도 제기했다. “제 아버지와 새어머니(박상아)는 출처 모를 검은돈을 쓰고 있다”라거나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작은아버지(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전재만)에게서 검은돈 냄새가 난다. 와이너리는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사업 분야”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내란·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당시 313억여 원을 낸 뒤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며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텼다. 그사이 골프장을 찾은 모습 등이 언론에 공개됐지만 전 전 대통령 측은 ‘29만원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11월 23일 전 전 대통령은 연희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일각에서는 ‘진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가 맞느냐’는 의혹도 당연히 제기됐다. 그러자 전우원은 자신의 영주권, 운전면허증, 전두환 전 대통령과 어린 시절 찍은 사진 등을 SNS에 공개했다. 전 전 대통령 부인이자 할머니인 이순자가 연희동 자택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는 영상까지 올렸다.
실제로 영상 속 인물은 이순자와 뒷모습이 흡사하다. 전우원은 이순자의 스크린 골프 영상을 올리며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는 전두환 일가에 대해 “그러기엔 돈이 너무 많다. 돈이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전우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산상속 포기 각서도 함께 공개했다).
나는 수치스러운 사람의 손자이자, 악마 같은 사람의 아들이다.
제 가족들이 행하고 있을 범죄 사기 행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수습 나선 가족들, 계속되는 폭로
아버지 전재용은 수습에 나섰다. 일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을 돌보지 못한 애비 잘못이다. 우리 아들이 많이 아프다. 아들이 우울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또 “인스타그램에 쓴 글도 알았으나 막을 수 없었다. 저는 가족이니 괜찮은데 지인들이 피해를 봐서 정말 죄송하다”고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연희동 자택의 스크린 골프 시설에 대해서는 “자녀들이 돈을 모아 선물해드렸는데 지금은 거의 사용을 안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박상아와 현재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전재용. 그는 아들의 폭로에 대해 “지난주까지 매주 안부 묻고 잘 지냈는데, 3월 13일 월요일부터 돌변했다. 갑자기 나보고 악마라 하더라”며 “그래서 ‘그냥 아빠와 둘이 살자’고 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본인이)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던 아들 둘 다 ‘존경스럽다’며 나를 지지해줬는데, 지금 그 공부가 무슨 소용이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우리 아들부터 돌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우원은 자신의 폭로가 시작되면 전재용 등 가족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미리 알았던 것 같다. 이미 일찌감치 자신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전우원은 인스타그램과 라이브 방송 등에서 자신 역시 ‘범죄자’라고 칭하며 “저의 죄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었다”고 주장했다. 또 “제 가족들이 저의 정신과 치료 기록을 이용해 ‘미친X’ 프레임을 씌울 것”이라며 “저는 지난해 1월부터 우울증, ADHD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다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나와 지금 몇 달간 일을 잘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목사 준비에 대해서도 ‘사기’라고 표현했다. 전우원은 “아버지는 한국에서 자신이 범죄자가 아니라고 서류 조작을 해 현재 미국에서 시민권을 받으려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법의 감시망에서 도망가기 위해 현재 한국에서 전도사라는 사기 행각을 벌이며 지내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 “이 자(아버지)가 미국에 와서 어디에 숨겨져 있는 비자금을 사용해 겉으로는 선한 척하고 뒤에 가서 악마의 짓을 못 하도록 여러분이 꼭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할아버지의 재산 대부분을 큰아빠(전재국)가 가져가면서 아버지(전재용)와 새엄마(박상아)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전재용·박상아 부부는 몇 년 전 기독교방송에 함께 출연해 종교에 입문한 과정을 밝힌 바 있다. 전재용은 과거 땅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로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일부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내지 않아 2년 8개월간 원주교도소에서 노역한 바 있다. 당시 전재용에게 계산된 하루 노역비는 400만원. 황제 노역으로 논란이 됐는데, 전재용은 정작 당시 생활을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방송 등에서 전재용은 “아버님은 치매라 기억을 잘 못하는 상태인데도 정말 기뻐하면서 ‘목사가 되면 네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겠다’고 하셔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목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놓고 둘째 아들인 전우원은 ‘법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폭로한 셈이다.
전우원은 폭로 배경에 대해 ‘회개하게 됐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황.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열흘간 병원에 입원하며 회개하게 됐고, 죄인이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아직도 반성을 모르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해 폭로를 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폭로 대상은 가족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 자신의 지인들도 있다. 평소 알고 지냈던 지인들의 사진이나 인스타그램 등 개인 정보를 인스타그램에 올린 뒤, “마약을 했다”거나 “성매매를 했다”는 등의 폭로를 했다. 누가 누구와 교제했는데 대단한 집의 자녀라는 내용도 있다.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드러낸 부분도 있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만 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전우원의 해명도 필요한 상황. 그래서인지 전우원이 올린 글 중 일부는 신고 후 삭제되기도 했다.
수사기관의 수사가 필요한 지점이지만, 전우원이 폭로한 이들 대다수는 그와 마찬가지로 한국이 아닌 미국에 체류하고 있어 당장 수사를 하기도 어렵다. 미국 국적을 취득했을 경우 수사 대상도 아니다. 폭로를 시작한 전우원 역시 과거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죄를 지은 적이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부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방송 중 환각 난동… 향후 여파는?
다만 전두환 일가 관련 폭로에 대해서는 향후 구체적인 내용이 나올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아버지인 전재용이나 작은아버지 전재만 등,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들의 자금 흐름 중 범죄 혐의점이 확인될 경우 검찰 및 경찰의 수사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전두환의 미납 추징금 956억원 환수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유산과 함께 상속되는 채무와 달리 벌금이나 추징금은 법무부령인 재산형 등에 관한 검찰집행사무규칙에 따라 납부 의무자가 사망하면 집행 불능으로 처리되기 때문.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검찰이 환수한 전두환 재산은 1,249억원으로 전체 추징금 2,205억원의 57%에 그친다. 형사소송법상 미납 추징금 집행은 당사자가 사망하면 환수 절차가 중단된다.
물론 세 아들(전재국, 전재용, 전재만) 등 제3자 명의로 해둔 재산에 관해 추가 집행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럴려면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 생전에 ‘제3자 명의로 해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여파가 큰,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폭로지만 현실적인 후속 조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범죄수익 환수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사망한 경우 법적으로 이뤄진 많은 조치가 모두 중단되고, 관련 흐름을 쫓더라도 확인할 수 있는 게 제한된다”며 “설사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들들의 명의를 빌려 재산을 감춰뒀다고 하더라도 어린 나이였을 전우원이 잘 알지 못하는 시점이라면 이제 와서 은닉 범죄 수익을 확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나온 폭로 정도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 관련 미납 추징금을 받아내기는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지난 3월 17일, 전우원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도중 마약을 투약한 듯한 환각 증세를 보여 충격을 주었다. “죄송합니다. 무섭다. 살려주세요”라고 한국어와 영어로 횡설수설하며 괴로운 표정으로 몸을 심하게 떨고 방바닥을 구르기도 했다. 현지 경찰로 보이는 이들이 아파트에 들어와 그를 끌어내면서 방송은 강제 종료됐다. 해당 영상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