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뭐 한 달짜리 인기 아닙니까”
1985년 연극배우로 시작해 39년 차 베테랑 연기자가 된 이성민은 어느덧 대한민국 국민 배우가 됐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연기력을 갖추게 됐다. 그럼에도 쉼 없이 연기한다. 휴대전화 속 알람이 쉼 없이 체크돼 있다. 배우의 삶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는 그다.
이성민은 여전히 연기가 어렵고,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난해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로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을 때도 그는 초연했다. “그거 뭐 한 달짜리 인기 아닙니까.”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성민을 직접 만났다.
이번엔 스크린이다.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이후 첫 작품이다. 어떻게 봤나?
영화 <대외비>의 시나리오가 좋았다. 영화 <악인전>을 재밌게 봤기 때문에 이원태 감독님을 향한 믿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도 재미있게 봤다. 함께 출연한 (조)진웅 씨가 힘들었겠구나 싶었다.(웃음) 사실 촬영한 지가 꽤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 보니 새롭기도 했다.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이다. 그 시대의 정서를 잘 살린 것도 볼거리가 많았다.
시기상 <재벌집 막내아들> 전에 촬영한 것이긴 하나 역할이 비슷한 면이 있다. 노인 분장에 부산 사투리에 각 잡힌 역할이다.
애초에 완전히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워낙에 드라마가 큰 사랑을 받아서인지 <대외비> 예고편을 보고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이 생각난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책상에 앉아 있는 정면 샷이 나오는데 그건 진짜 진양철 회장 같아서 뜨끔했다.(웃음)
최근 들어 고령에 고위직 역할을 많이 맡는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다. 아마도 전작들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 영화 <남산의 부장들> 이후 강한 역할, 권력을 가진 역할이 주로 들어왔고 그런 작품들을 쭉 해왔다. 앞으로 약속이 돼 있는 작품들은 어쩔 수 없고, 이후에는 조금 편안한 역할을 하고 싶다. 조금 풀어지고 싶다.
실제 모습과는 어떤가?
실제 내 모습은 극적이지 않다. 평소의 나는 캐릭터가 없는 사람이다.(웃음) 하지만 배우는 알게 모르게 배역과 작품의 영향을 받는다. 무의식조차 의식을 하니까. 건강하고 힐링되는 작품을 하면 나도 건강해지고, 어둡고 칙칙한 작품을 하면 나도 무거워진다. 이젠 정서를 위해 건강한 작품도 만나고 싶다.
진양철 회장도 아주 센 역할이었다. 그런 역할을 하면 배우로서 기가 많이 빠지나?
꼭 그렇지는 않다. 물론 가끔 힘든 작업이 있을 때가 있는데, 그건 캐릭터와 내가 매칭이 잘 안 될 때다.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여러 가지 것이 많이 소모된다. 꼭 센 역할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후유증이 좀 있다. 그런 역할을 하고 난 뒤에 건강검진을 받으면 좋지 않게 나온다.
지난해 영화 <리멤버>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이어 이번에도 노인 분장을 했다.
<리멤버>를 하면서 노인 연기를 어느 정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후 작품들에서 부담감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다. 노인 연기의 노하우 같은 건 없다. 주어진 상황에 맞게 연기한다. 목소리를 좀 긁어 내서 목이 아프긴 하다.
<대외비>의 ‘순태’는 어떤 역할인가?
전직도 과거도 묻고 따지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직업을 묻는다면, 나도 정확히 뭔지 모른다. 나이도 모호하다. 어쨌든 어마어마한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는 브로커겠구나 생각했다. 상상 속의 인물이었다. 서울은 모르겠는데 그 시절의 지방은 그런 실세가 있지 않았나 싶다. 정치 쪽에 그런 인물이 더 많았을 것이다. 뒤에서 정치인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는 미스터리한 인물 말이다. 깡패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묘하고 애매한 선에서 순태를 연기했다.
내 스케줄은 직장인과 별다를 바 없다. 새벽부터 알람이 분 단위로 꽉 차 있다. 나는 잘 못 쉬는 성향이다.
최근에 여권을 갱신했는데, 도장이 두세 개 찍혀 있더라. 그중 하나는 영화제에 갔던 때다.
대중은 배우가 여유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극강의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다
베일에 싸인 설정이 힘들진 않았나?
오히려 편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등등의 전사는 많이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런 점이 오히려 연기할 때도 편했다. 모델로 삼은 실제 인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재량껏 연기할 수 있어서 더 편했다.
호흡을 맞춘 조진웅은 어떤 배우인가?
나이 차이는 조금 있지만 배우로서의 궤적이 비슷하다. 진웅 씨는 부산, 나는 대구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비슷한 시기에 방송과 영화를 시작했다. 무명일 때 드라마에서 만나 함께 성장해왔다. 그래서인지 함께 연기할 때 편하다.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무언가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앙상블을 잘 이뤄내는 배우다. 주연임에도 뒤로 빠질 줄도 아는 배우라 신뢰도 가고 의지도 된다. 좋은 배우와 함께할 때는 늘 설렌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맹활약 중이다. 가끔씩 드라마를 찍는데 그게 종종 대박이 난다. <재벌집 막내아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이다.(웃음) 가끔 이렇게 잊을 만하면 잘되는 작품이 있다는 게 살아가는 맛이다. 의아하면서도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싶더라. 그런데 ‘한 달짜리 인기’라는 것도 알았다. 지금은 조용하지 않나.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함께한 배우들이 다 잘돼 좋았다.
<재벌집 막내아들> 촬영 당시 대박 조짐이 있었나?
촬영을 시작하면서 너무 판타지로 그리지 말자고 했다. 어차피 주인공인 ‘진도준’(송중기 분)이라는 인물부터가 판타지 아닌가. 그러니 다른 부분은 너무 그쪽으로 몰지 말자고 했다. 재벌의 모습도 막연하게 그리지 말고 사실적으로 그려보자 싶었다. 중장년층 남성들이 많이 봤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실제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을 기반으로 그린 작품이다 보니 호기심 때문인 것 같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이성민 배우의 연기였다. 지금이 전성기라고도 많이들 말한다.
연기 정점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싶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아직도 연기가 잘 잡히지 않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지개 같다. 물론 대표작이 있고, 그 작품들은 당연히 만족하지만 계속 다른 걸 도전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다.
인기를 실감하나?
크게 실감하진 못했지만 전화와 문자가 정말 많이 왔다. 개인적으로 연기가 특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연기가 좋았다’는 평가를 받으니 역시 작품이 잘돼야 연기도 곱씹어지는구나 싶더라.
그러고 보면 박찬호, 봉준호 감독 등 유수의 감독과는 작업을 한 적이 없다. 기회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다. 불러주면 당연히 하지만 불러주지 않더라. 예전에 박찬욱 감독 영화 <박쥐>(2009) 때 송강호 형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본 적은 있는데 안 됐다.
간혹 공연 무대에도 오른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지방에서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알다시피 연극은 연습 기간 대비 공연 날이 짧다. 그러니 쉬지 않고 계속 연습과 무대를 오가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무대는 고향 같은 곳이다. 작년 가을에 연극 한 편을 하려고 했는데 최종적으로 일정이 안 맞아 무산됐다. 공연은 할 수 있는데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모자랐다. 연극은 절대적으로 시간을 써야 하는 예술이다. 무대는 카메라 연기와 다르게 직접 관객을 만난다. 관객의 피드백을 바로 느낀다. 그때 생기는 에너지가 있다. 또한 다시 나를 재정비하는 느낌도 든다. 연습을 한두 달 집중적으로 하면서 틀어져 있던 나를 다잡는 느낌이랄까. 그 에너지가 참 좋다.
연극 무대에 오르면 티켓 파워도 엄청날 것 같다.
극단 공연은 거의 개런티가 없다고 보면 된다. 돈 버는 선배들이 개런티를 적게 받고 못 버는 후배들에게 몰아주는 편이다. 연극을 하는 배우들은 늘 힘들다. 연극은 절대적으로 산업이 될 수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그렇다. 미국 배우 알 파치노는 지금도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한다.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에서 무료로 연극을 한다고 들었다. 얼마나 멋있나. 세계적인 배우의 연기를 공원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니. 배우로서도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아직도 잡히지 않는 연기, 더 잘하고 싶다
배우 인생에서 운명적인 작품이 있나?
드라마 <골든 타임>(2012)이다. 속된 말로 내 팔자를 바꿔놓은 작품이다. 영화로는 <공작>(2018)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경상북도 영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TV에서 하는 <주말의 명화>도 꼭 챙겨 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다고 연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시골에서 연기를 준비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막연히 연기를 떠올리면 연극이 생각나는 정도였는데, 그때 우연히 연극 한 편을 보게 됐다. 송승환 선배가 나온 <일어나라 알버트>라는 작품이었다. 영주시민회관에서 그걸 했다. 그것도 참 우연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연극인데, 그게 현재까지도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 그때 막연하지만 연기에 대한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아주 특별한 작품이다.
현재는 ‘명배우’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다.
돌이켜보면 작품이 내 인생을 변화시켰다기보다 사람이 나를 바꿔준 게 많았다. 앞서 말했듯 인구 10만 명이 겨우 되는 영주에 극단이 있었다. 당시 극단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그 상대가 전화를 다정하게 받지 않았더라면 연기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이후에 거기서 만난 연출가가 더 큰 무대인 대구로 가자고 나를 설득했고, 그렇게 조금씩 큰 무대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대학로에서 연극을 했는데, 당시엔 영화감독들이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많이 왔다. 덕분에 드라마 <파스타>(2010)에 출연하게 됐고, <파스타>를 연출한 권석장 감독이 2년 뒤에 <골든 타임> 대본을 내게 준 거다. <파스타>와는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였는데, 결국 내가 캐릭터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봐줘야 그 캐릭터가 된다는 걸 느꼈다. 권 감독 덕분에 배우로서 내게 새로운 장르가 생긴 거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때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뜻대로 온 게 아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내게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든다.
<파스타> 이후 매년 꾸준히 두세 작품씩 출연했던 것 같다.
내 스케줄은 직장인과 별다를 바 없다. 새벽부터 알람이 분 단위로 꽉 차 있다. 나는 잘 못 쉬는 성향이다. 예전에 연극할 때도 그랬다. 당장 내일 살기가 바빠 쉬지 못했다. 물론 막연히 ‘유명한 배우가 되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한 번쯤 하긴 했지만. 최근에 여권을 갱신했는데, 도장이 두세 개 찍혀 있더라. 그중 하나는 영화제에 갔던 때다. 대중은 배우가 여유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극강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고 싶나?
다른 직업으로 살고 싶다. 고치고 수리하는 기술직 같은 거. 그 직업은 연기와 달리 명확한 답이 있지 않나. 작동하지 않던 것을 작동시키는 명확함 말이다.(웃음) 사실 지금은 나이 들고 배우로서 자신감도 생겼지만, 예전에는 내가 배우인 게 부끄러웠다. 자존감도 낮았고, 인간 이성민과 배우 이성민을 구분 지어 생각했다. 이젠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역할과 나를 구분하려 바둥거렸는데 이제는 배우 이성민이 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이젠 누가 진양철 회장님이라고 해도 그러려니 한다.(웃음) 나이를 먹을수록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 같다.
요즘 드는 고민이 있나?
배우가 나이 들면 주위에 디렉션을 해주는 연출가나 선배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 젊을 땐 야단쳐주는 선배들이 있어서 연기를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됐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어진다. 결국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적어진다는 소리다. 솔직하게 평가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럴수록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늘 긴장하며 살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