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작은 거인’. 국제 유수의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연주를 관람한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체구는 작지만 무대에서 존재감은 상당하다. 현재 독일에서 지내는 김봄소리는 2017년 세계적인 메이저 클래식 레이블 워너 클래식에서 데뷔 앨범을 발매했으며, 유니버셜뮤직 그룹 산하 도이치 그라모폰에서도 앨범을 발매하면서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했다. 음악이라는 하나의 소통 창구로 관객과 만나고, 울림을 선사하는 그녀를 만났다.
김봄소리의 무대 영상을 보면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져요.
한 번의 연주에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이 어마어마해요. 더군다나 다양한 나라의 시차와 날씨에 컨디션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도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죠. 그래서 바이올린 연습만큼이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는 평소 사이클링과 크로스핏을 해요. 고강도의 운동을 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하죠.
체력 관리만큼이나 멘털 관리도 중요할 거 같아요.
맞아요. 무대에 대한 부담감과 긴장감은 연습으로만 이겨낼 수 있어요. 최악의 상황에서도 연주할 수 있도록 10배로 연습해요. 최상의 컨디션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의 20% 정도만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가정하고 200%를 연습하는 방식으로요. 지금까지 많은 무대에 섰지만 제가 쌓아온 커리어와 경험치를 완전히 믿진 않아요. 적절한 긴장감을 안고 무대에 오르죠.
결국 연습만이 답이군요.(웃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작품을 이해하는 공부까지 전부 연습 시간에 해당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의 깊이를 이해하는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요. 따라서 무대에 오르기 전에 곡을 만든 원작자의 의도와 곡이 갖는 의미 등을 공부하는 데 몰두해요. 최상의 이해도를 갖춰야 설득력 있는 연주를 할 수 있어요. 관객들이 듣기에도 확연히 다르고요.
무대에 오르기 전 새기는 마음가짐이 있나요?
항상 겸손함을 마음에 새겨요. 그리고 그날 연주하는 음악에 대한 존경심을 잊지 않죠. 음악을 만든 작곡가에 대한 존경심과 공연을 찬양하는 마음을 가질 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게 되더라고요. 제가 대단한 작곡가의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감사함도 잊지 않으려고 해요.
김봄소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연주를 듣고 바이올린에 입문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7살이었다. 음악이 무엇인지 알기엔 어린 나이였지만 무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일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순수한 마음으로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꿨던 김봄소리는 남다른 재능을 가진 수재였다. 2004년 예원학교에 입학해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고,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 및 우승하는 성과를 나타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그녀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사를, 줄리아드 음대에서 석사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하면서 국내는 물론 국제 무대로 나아갔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 지금의 자리에 올랐어요.(웃음)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반드시 좋은 학교에 입학할 거야’라는 욕심을 가졌던 적은 없어요. 당장 눈앞에 놓인 과제들을 해내면서 연주가로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바이올린을 점점 더 잘하고 싶어졌고, 작곡가들을 알아가는 기쁨이 있었어요. 제가 앞만 보고 달려나갈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해요.
어릴 적부터 우수한 성적을 거뒀는데, 이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건 언제나 힘들어요.(웃음) 돌이켜보면 타인이 주는 부담보다 제가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에 설 기회가 많고, 멋진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지만, 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연주가로서 욕심이 커지고 있어요. 음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황홀해요. 무대 위에서 연주하면서 사람들과 감정을 교류하고 감동을 주고받는 값진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인지 더 깊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욕심이 커지는 거 같아요.
한국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세계적인 음악대학 줄리아드에 입학했어요. 적응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엔 모든 부분을 제힘으로 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죠.(웃음) 가장 크게 달랐던 건 인간관계였어요. 한국에선 집에서 가족들과 생활하고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들이 있어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새로운 인간관계가 필요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삶의 태도가 변했죠. 도움이 필요할 땐 먼저 손을 내밀고, 반대로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제가 나서게 되더라고요. 저만의 방식으로 타지 생활에 적응해나갔고, 그 덕분에 지금 체류 중인 베를린에서 새롭게 생활을 시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한국과 비교했을 때 교육체계는 어떤가요?
스스로 선택해야 할 요소가 많아요. 한국에서도 성인이 되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게 많지만, 그보다 자율성이 더 강해요. 줄리아드 재학 당시 수많은 옵션 사이에서 제가 나아갈 방향을 골라야 해서 늘 고민했어요. 모든 것이 제 손에 달려 있는 느낌이었고, 갑자기 너무 많은 자유가 주어지는 게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결론적으론 제 인생을 제가 개척해나가는 방식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내면이 단단해 보이는데, 마인드 컨트롤 비법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랑 마음수련을 했어요. 심호흡을 통해 명상하는 습관을 길러왔죠. 어린 시절엔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돼요.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는 데 명상만 한 게 없더라고요. 특히 무대에 오르기 전 명상을 하면 연주할 때 필요한 몰입력과 집중력이 생겨요.
요즘 몰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올해 예정된 공연들을 잘해내는 것이요. 프랑스 파리 무대에 데뷔하게 됐고, 영국 런던에서 큰 축제에 참가하게 됐어요. 기회가 주어졌으니 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겠죠?(웃음)
바이올린 신은 피라미드 구조예요.
실력이 향상될수록 넘어서야 할 다음 문턱이 높아져요.
부모가 곁에서 상황을 헤아려주고 나아가는 길에 안정감을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언제든 너의 결정이 옳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죠.
“바이올린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기회는 있어요”
바이올린은 진입 장벽이 높은 악기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예체능은 공부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악기를 다루는 음악의 경우엔 더욱 그렇죠. 악기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초기 비용이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전반적인 비용을 고려하면 공부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음악을 배울 수 있어요. 또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지만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악기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있어요. 공부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장학금 제도가 있어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많죠.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레 겁을 먹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이올린을 좋아하고, 이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면 분명히 기회가 있어요.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하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바이올린은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장르의 음악이에요. 매 무대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야 하기 때문이죠. 운동선수처럼 꾸준함과 인내심도 필요해요.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간은 굉장히 짧은 반면, 포기하지 않고 연습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해요.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는 수많은 곡을 깊이 이해하고 연주하는 여정이 이어지는 삶을 살아요. 그 과정에서 자신과의 싸움이 벌어지는데, 이때의 마음가짐이 굉장히 중요해요. 어떤 여건 속에서도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니까요.
바이올린을 배우는 자녀를 둔 부모가 가져야 할 교육 방침도 궁금합니다.
정신적인 서포트가 필요해요. 바이올린 신은 피라미드 구조예요. 실력이 향상될수록 넘어서야 할 다음 문턱이 높아져요. 따라서 바이올린을 좋아해서 시작해도 중간에 지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생겨요. 항상 더 나은 실력을 입증받아야 하니까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음악을 지속하기 위해선 부모가 곁에서 상황을 헤아려주고 나아가는 길에 안정감을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언제든 너의 결정이 옳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죠. 돌이켜보면 제 부모님은 정신적인 케어를 많이 해주셨어요. 바이올린을 하고 싶지 않으면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씀하셨죠.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강요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제 뜻에 따라 음악을 할 수 있었어요. 만일 부모님이 바이올린을 배운 기간을 언급하면서 저를 다그쳤다면, 다른 결정을 했을지도 몰라요. 지금의 제가 없었을 수도 있죠.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어요. 바이올리니스트로 산다는 건 보는 것과 달리 늘 아름답지만은 않은 여정이니까요.(웃음)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갈고닦다 보면 막막하게 느껴지는 상황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사회적으로 바이올린 음악의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먼저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그 장벽을 낮추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음악적인 소통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공연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젊은 세대들이 객석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어떤 성역 없이 음악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것이 제 뒤를 걸어오는 후배 음악가들을 위한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김봄소리에게 바이올린은 어떤 의미인가요?
비유하자면, 아직 미혼이지만 남편과 같은 존재예요.(웃음) 1년 전 10년간 사용하던 바이올린을 바꿨어요. 어디에서든 저와 함께했던 바이올린을 바꾼다는 건 제게 큰 변화였어요. 바이올린은 살아 있는 악기예요. 날씨, 지역, 사용한 시간에 따라 악기가 내는 소리가 달라져요. 그래서 새로운 바이올린과 함께 생활하면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며 호흡을 맞추는 게 관건이었죠. 지금은 제법 호흡이 맞아요.(웃음)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발전해나가는 단계예요. 합을 맞추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제 마음과 같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이어가요. 제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친밀해질 수 있는 깊이가 달라서 애정을 크게 갖게 돼요.
김봄소리의 최종 목표가 궁금합니다.
예술이라는 건 파도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영역이에요. 그렇기에 연주가의 생을 이어가면서 끝없는 물음표를 하나씩 느낌표로 바꾸는 여정 속에 살 거 같아요. 제게 찾아오는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면 제 끝이 어디인지, 제 깊이가 얼마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 음악을 통해 저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