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가 오랜만에 국내 활동을 재개했다. 현재 개봉 중인 영화 <다음 소희>는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사건에 휘말린 18살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와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2017년 1월 전주의 한 콜센터에서 발생한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배두나는 극 중 소희의 시신이 발견된 후 사망 원인을 조사하는 형사 유진을 연기했다.
<다음 소희>는 아동 학대 문제를 조명하고 두 여성의 연대를 그려 호평받았던 영화 <도희야>(2014)의 정주리 감독이 9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다. 배두나는 <도희야>에서도 형사 역할로 처음 정주리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배두나는 1998년 쿨독 카탈로그 모델로 데뷔해 1999년 드라마 <학교>로 라이징 스타가 됐다. 그해 일본 공포 영화 <링>을 리메이크한 영화 <링 바이러스>로 스크린에 데뷔했고, 이후 쉼 없이 작품 활동에 매진하며 신비롭고 독특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갔다. 데뷔 25년째인 그는 저예산 영화를 비롯해 <괴물>과 같은 국내 흥행작에도 출연하며 ‘선택의 폭이 넓은 배우’로 영화 관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넷플릭스 SF 영화 <레벨 문>의 촬영을 마쳤다.
국내 배우 중 가장 ‘글로벌 스타’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배우다. 그가 국내를 벗어나 해외 감독과 손을 잡은 첫 작품은 2006년 일본 영화 <린다 린다 린다>다. 이후 2013년 워쇼스키 자매의 작품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출연 후 할리우드의 문턱도 가뿐히 넘었고, 프랑스 영화 <#아이엠히어>에 출연하며 유럽 진출까지 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인 최초로 루이 비통과 전속 계약을 맺은 스타가 바로 배두나다. 배두나는 한 방송에 출연해 루이 비통 뮤즈로서 특급 대우를 받는 이야기를 할 만큼 그와 루이 비통 브랜드는 막역한 사이다.
월드 클래스 배두나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나에게 감독은 보스이자 고용주”
오랜만에 국내 활동을 한다. 줄곧 인터뷰를 하던 삼청동도 오랜만이지 않나?
그리웠다.(웃음) 지난해는 줄곧 외국에 나가 있어 온라인상으로 화상 인터뷰를 몇 번 했었다. 직접 눈을 보고 얘기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렇게 눈을 마주하고 하는 인터뷰, 훨씬 좋다.
정주리 감독과는 <도희야>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다.
감독님이 그동안 아무 기별도 없어 이민을 가신 줄 알았다. 그래서 나를 잊고 다른 인생을 살고 계신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억하고 불러주셨다. 감동적이었고 고마웠다. 개인적으로 내가 무척 좋아하는 분이다.
최근작 중에 경찰 역할이 꽤 많다.
생각해보니 드라마 <비밀의 숲>, 영화 <도희야> <브로커> <다음 소희>까지 다 경찰이었다. 이번 작품으로 쐐기를 박는 느낌이랄까.(웃음) 좋게 생각하는 편이다. 감독님이 공직에 있는 역할을 만들 때는 바른말을 하거나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배우를 선택하는 게 아닐까? 실제로 형사는 극에서 사건을 보는 역할이다. 어릴 때부터 관찰자나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는 역할을 적지 않게 했던 것 같다. 그게 나이가 있다 보니 ‘형사’ 역할이 된 것이고…. 어쨌든 그 모든 작품은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다. 굳이 형사라서 피하거나 차별화를 두겠다는 생각도 안 했다. 형사는 직업일 뿐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사람 혹은 내가 바라는 이상향을 생각한다.
<다음 소희>를 스크린으로 본 소감도 궁금하다.
사실은 아직 못 봤다. 엊그제 언론 시사회와 기자 간담회가 시간적으로 붙어 있어 못 봤다. 영화를 보면 울 것 같았다. 평생 남을 사진을 퉁퉁 부은 얼굴로 흑역사로 남길 수는 없지 않나.(웃음) 전날 밤에 스크리너로 받아서 봤다.
<브로커>는 한이 되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극장에서 결국 못 봐서 한이 되는 작품.(웃음) 해외 일정을 끝내고 한국에 오니 영화가 극장에서 다 내린 상태였다. 오죽했으면 감독님에게 지금 상영 중인 나라가 어디냐고 물어봤겠나. 유럽이라고 해서 영국에 간 김에 영화 일정을 체크해보니 2월에 개봉한다는 거다. 이탈리아는 이미 극장에서 상영이 끝나 결국 못 봤다. 그래서 시기를 놓쳤다. 나는 무조건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나는 극장 연기를 하는 사람이지 않나. 그래서 극장에서 보는 걸 좋아한다. 왠지 극장에서 보면 영화가 더 멋있어 보인다.(웃음)
이번 작품을 찍으며 정주리 감독과 깊은 동지애를 느꼈다고?
촬영 이전부터 이후까지 이어지는 감정이다. 사실 영화를 찍을 때 배우는 촬영 시작과 끝을 오롯이 함께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이 판을 깔아놓으면 중간 과정에 딱 들어가 연기만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런데 이번 작품은 감독님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봤다. 뭐랄까, 동지처럼 말이다. 사실 이런 영화는 상업 영화계에서 투자가 엄청 잘되거나 관객이 잘 드는 기대작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헤쳐나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랄까. 옆에서 감독님의 그런 모습을 보며 감탄을 많이 했다. 타협하지 않더라. 꺾이지 않더라. <도희야> 촬영 때보다 리더십이 훨씬 강한 모습에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변하지’ 하는 놀라운 순간이 많았다.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상에 근접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일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고지식한 사람, 간혹 타협도 한다”
봉준호 감독, 정주리 감독 같은 유명 감독들의 초기작을 늘 함께했다. 정주리 감독은 어떤 매력이 있나?
나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나는 정도를 걷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고,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크리에이터로서는 고집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 말이 날카로운 것을 좋아한다. 감독님은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를 너무 잘 만든다. 솔직한 마음을 내비치자면, 나는 그분의 영화를 엄청 좋아한다.
정주리 감독이 한 살 어린 것으로 알고 있다. 관계는 어떤가?
나에게 있어 감독은 늘 어른 같다. 보스니까. 고용주라서 어쩔 수 없다.(웃음)
아까 언급한 정 감독의 강점들이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지 궁금하다.
닮고 싶다. 나는 고지식하고 좀 느리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다. 근데 그분들보다는 좀 타협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부분도 이겨나가는 사람이다. 나는 불의를 봐도 어떨 때는 참는다.(웃음)
오랜 시간 톱 배우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국내외에서 활동 중이다. 비결이 있나?
내 삶에서 촬영이 가장 우선이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만의 고지식함일 수 있다. 영화제나 시상식 또는 좋은 다른 기회보다 촬영이 우선이다. 촬영 때문에 칸영화제를 못 가는 것도 내 성격상 당연한 일이다. 내가 고용된 순간은 내 시간이 아니다. 그 마인드가 철저하다. 개인적으로 양심의 가책이 드는 일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상업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적절히 분배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며 자유롭게 활동한다. 그런 선택도 고지식한 것의 일부인가? 이번 영화는 후자인 셈이다.
의도적인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하고 싶다.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이야기 작업을 하고 싶다. 그게 상업적이고 블록버스터가 아니어도 무관하다. 다수의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를 해야 한다면 그것도 간혹 한다. 왔다 갔다 하는 게 나한테 도움이 된다. 생각해보면 외국에서 하는 작품은 재미를 추구하는 블록버스터가 많았고, 국내에서는 하고 싶은 작품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도 드라마도 많이 하지 않나.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만 한다거나 나의 박스 오피스를 위해 큰 영화만 하지는 않는다. 작품 앞에선 계산하지 않는다. 어떤 시나리오를 보내도 재미있으면 한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배우다.
혹시 연출에 대한 생각은 없나?
전혀. 물론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유능한 감독님과 일하다 보니 연출은 나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더 작아지고 더 어려워졌다. 글을 쓰고 싶은 건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나이가 드니 생각하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20대 때는 생각을 얼마나 했을까? 그때는 현재를 즐겼던 것 같다. 지금은 사색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한다. 그걸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막연하게 생각만 한다.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나?
인간에 대한 얘기 혹은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외로움. 자꾸 이러니까 진짜 글을 써야 될 것 같다.(웃음)
그러고 보니 아주 예전에 에세이집을 낸 기억이 난다.
배우가 자기 얘기를 많이 하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20년 넘게 활동했는데 투머치 인포메이션이면 대중이 너무 지겨워할 것 같아 늘 걱정한다. 나에 대해 많이 알면 캐릭터에 몰입이 힘들 것이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 혼자 있을 때 뭘 하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SNS에도 글을 최대한 자제한다. 그래서 행여 책을 쓰더라도 내 얘기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배우를 그만두면 몰라도.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바람직한 어른의 역할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에 다수 출연했다.
나도 그 시절을 지나왔다. 청소년기와 20대 시절을 생각해보면 막막하게 몰아붙여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럴 필요가 없고 마냥 행복해도 되는 나이인데 말이다. 좋은 어른이 돼야겠다는 생각보다 지금 그 시기를 겪는 친구들이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때보다는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되도록 참여하려고 한다. 뭔가 할 얘기가 있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사회 고발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마흔 중반쯤 되면 어릴 때보다는 걱정이 덜하지 않나. 그 나이가 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내게 ‘네 걱정이나 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걱정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어느 도시에 가도 나만의 루틴을 따른다. 아침 일정은 늘 똑같다.
땅에 발붙이고 살려 노력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누가 나를 비행기 태워 구름 위에 올려놓으면 내가 나를 끌어내리고,
누가 나를 끌어당겨 지하에 처박아두려고 해도 내가 알아서 올라온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세트장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이 멋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20년 넘게 톱 배우로 왕성한 연기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나 자신이 기특하다. 20년 넘게 여기서 버티고 있지 않나. 워낙 배우 일을 좋아한다. 아직도 현장에서 “배우님, 슛 들어갈게요” 하는 말과 함께 현장에 걸어 들어가는 내 모습이 너무 멋있다.(웃음) 배우 의자도 멋있고, 아직도 일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멋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을 늘 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참 좋은 직업이다. 굳이 내 입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영화를 통해 표현할 수 있고, 배우는 세트에서 숨어 찍기 때문에 짠 하고 나오는 드라마틱함도 있고, 쉬고 싶으면 쉴 수도 있다. 재충전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도 많다. 그 모든 게 재미있다.
해외 활동이 많다. 시차 적응 노하우도 궁금하다.
그 부분은 꽝이다. 그래서 괴롭게 산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드라마를 찍고 있을 때 해외 패션 위크에 초대되면 내 촬영분을 미리 몰아서 찍는다. 당연히 밤샘의 연속이다. 그리고 해외에 가면 시차 적응을 못 해 디너 자리에서 졸곤 한다.(웃음) 그리고 한국에 오면 바로 촬영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식으로 스케줄이 겹치다 보니 단 하루도 못 쉬었던 해도 있었다. 그래서 시차 적응을 포기했다. 요즘엔 시차를 격하게 바꾸는 일은 안 하려고 한다. 체력이 안 된다. 올해는 한국에 머물 생각이다.
국내외를 오가며 다양한 성향의 작품을 하고 있다. 환경이 지속적으로 바뀌고, 작품 속 세계관도 바뀐다. 그럴수록 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위태로웠던 순간에 어떻게 자신을 지켜나갔나?
어느 도시에 가도 나만의 루틴을 따른다. 아침 일정은 늘 똑같다. 어딜 가도 일상처럼 지내려고 노력한다. 땅에 발붙이고 살려 노력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누가 나를 비행기 태워 구름 위에 올려놓으면 내가 나를 끌어내린다. 누가 나를 끌어당겨 지하에 처박아두려고 해도 내가 알아서 올라온다. 평소에는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집에서 나만의 페이스를 찾는 편이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언젠가는 회식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눈물이 나더라. 그런 쪽으로는 에너지가 없는 사람인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날 편안해하는지 배우게 되지 않나. 하이텐션으로 나를 끌어올리다 보니 너무 힘들었던 거다. 그런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