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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목걸이를 한 농구 선수

젠더리스 패션은 남녀 구분이 모호한 ‘무성의 패션’에서 남녀 모두가 예쁨을 뽐내는 일종의 ‘옷장 공유(Shared Wardrobe)’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On January 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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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의 경계를 허문 프라다.

2021-2022 시즌 KBL 최우수선수(MVP)였던 프로 농구선수 최준용은 2022-2023 시즌 개막을 알리는 미디어데이에 정장 대신 프라다 티셔츠에 진주 목걸이를 레이어링하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그는 “KBL에서 정장 착용을 공지했는데 왜 입지 않았는냐?”는 질문에 “살쪄서 정장이 많이 작아졌다”며 “미디어데이 분위기가 항상 무겁고 재미없었다. KBL에서 드레스 코드를 자유롭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또한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맨 파이터>에 출연한 남성 댄스 크루, ‘어때’는 성별을 초월한 퍼포먼스로 인기를 모았다. 사람들은 ‘어때’의 춤이 “걸리시하다” 또는 “젠더리스하다”고 말했지만, 이들은 오히려 “춤에는 ‘성별’이 없다”는 소신을 보였다. “쟤네 왜 자꾸 여자 춤 춰?”라는 틀을 깨고 싶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핑크의 경계를 허문 프라다.

핑크의 경계를 허문 프라다.

핑크의 경계를 허문 프라다.

지금껏 선두에 서서 성별의 장벽을 파괴한 최초의 남자들은 주로 뮤지션이었다. 글램 록의 아이콘 데이비드 보위는 하이힐을 즐겨 신었고, 젠더리스 패션의 선구자인 프린스는 지나친 하이힐 사랑으로 고질적인 엉덩이 통증을 달고 살 정도였다. 그룹 너바나의 리드 싱어였던 커트 코베인은 “꽃무늬 원피스보다 편안한 옷은 세상에 없다”며 1991년부터 종종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팬을 제외한 일반 대중에게는 ‘기행’으로 받아들여졌다. 데이비드 보위가 1974년에 발표한 곡 ‘Rebel, Rebel’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너희 엄마가 당황하고 계셔. 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대.”

50여 년이 지난 현재, 가슴골이 깊이 파인 브이넥 카디건을 입고,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샤넬 가방을 들고, 네일 아트를 한 남자는 더 이상 특이한 인류도 놀림의 대상도 아니다. 1980년대에 ‘유니섹스(unisex)’라는 용어로 시작했던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패션은 이후 ‘앤드로지너스’, ‘젠더리스’, ‘젠더뉴트럴’, ‘젠더플루이드’ 등으로 이어지며 이제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티모시 샬라메, 저스틴 비버, 릴 나스 엑스, 트로이 시반, 포스트 말론, 영블러드, 키드 커디 등 현재의 패션 아이콘이 과감한 젠더리스 패션을 통해 대중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동시에 여성에 비해 훨씬 제한적인 선택권을 지녔던 남성 패션을 급속히 진보시키고 있는 것이다.

티모시 샬라메가 2022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레드 와인 컬러의 백리스 슈트를 입고 등장하자 대중은 환호를 보냈다. “남자는 핑크!”를 외치는 이들도 많아졌다. 배우 이정재는 핑크색 재킷에 진주 목걸이를 한 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영화 홍보차 방한한 브래드 피트는 레드 카펫 행사에 슈트부터 스니커즈, 마스크까지 온통 핑크 컬러로 차려입고 등장했다. 당시 그는 “인생은 짧으니 마음껏,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살아!”라고 소리쳤다.

심지어 네일 아트 브랜드를 론칭하는 남성 패셔니스타도 많아졌다. 젠더리스 스타일의 아이콘인 해리 스타일스를 비롯해 힙합 신의 악동 릴야티, 머신 건 켈리,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등은 손톱 손질과 네일 아트에 남다른 공을 들이더니 아예 네일 아트 브랜드까지 론칭했다. 이들의 생각은 한결같다. “남성들이 표현에 대한 장벽을 깨기 바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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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의 젠더리스 패션.

구찌의 젠더리스 패션.

  • 구찌의 젠더리스 패션. 구찌의 젠더리스 패션.
  • 구찌의 젠더리스 패션. 구찌의 젠더리스 패션.
  • 티모시 샬라메의 백리스 슈트. 티모시 샬라메의 백리스 슈트.
  • 해리 스타일스가 론칭한 네일 브랜드 플리징. 해리 스타일스가 론칭한 네일 브랜드 플리징.
  • 젠더리스 패션 아이콘 해리 스타일스. 젠더리스 패션 아이콘 해리 스타일스.
  • 루이 비통 2022 F/W 오프닝을 장식한 정호연. 루이 비통 2022 F/W 오프닝을 장식한 정호연.
  • <스트릿 맨 파이터>의 남성 댄스 크루 ‘어때’. <스트릿 맨 파이터>의 남성 댄스 크루 ‘어때’.

과거 유니섹스 패션의 개념이 성별 구분 없이 남녀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면 현재는 남녀 성별의 경계를 지우고 서로의 옷장을 함께 나누는 이른바 ‘옷장 공유(Shared Wardrobe)’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정호연은 2022 F/W 루이 비통 컬렉션에서 아빠가 입을 것 같은 보머 재킷에 넥타이까지 한 모습으로 오프닝을 장식했고, 구찌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약하는 아이유는 2022년 9월 밀라노에서 열린 2023 S/S 구찌 패션쇼에 참석하며 익스퀴짓 구찌 컬렉션의 그레이 슈트에 슬림한 블랙 레더 넥타이를 착용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브 안유진, 예능에서 활약하는 이미주도 넥타이를 착용하며 젠더리스 유행에 동참했다. 2022년부터 톰브라운, 오프화이트, 루이 비통, 버버리, 셀린느, 로에베, 프라다, 발망, 에곤랩, 안드레아스 크론탈러 등 수많은 컬렉션에서 남성용 스커트인 ‘머트(Mirt, Man+Skirt)’와 그보다 더 길이가 짧은 일종의 마이크로 미니스커트인 ‘스코트(Skort, Shorts+Skirt)’를 내놓으며 남성들이 각선미를 맘껏 뽐낼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 하이힐, 사이하이 부츠, 슬립 드레스 등도 원한다면 어렵지 않게 남성 컬렉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여자들도 예쁜 아이템을 발굴하기 위해 남성복 매장을 적극적으로 방문할 필요가 있겠다.

패션에서 시작된 성별 파괴 현상은 사회 전반으로 연착륙하는 중이다. 영국의 버진애틀랜틱항공은 2022년 가을, 모든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 성별에 상관없이 치마와 바지를 골라서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세계 최대의 국제 여객 항공사인 영국항공은 최근 승무원 복장·용모에 관련된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남성 승무원도 여성 승무원처럼 머리를 기르고 묶거나 쪽질 수 있으며, 과하지 않은 수준의 색조 화장과 검은색·형광색을 제외한 모든 색상의 네일 아트를 할 수 있도록 한 것. 휴대품 관련 규정도 완화돼 남자 승무원들이 손가방을 갖고 비행기를 타는 것도 가능해졌다(모든 조항은 조종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한항공은 2022년 11월부터 남녀로 구분해 사용하던 객실 승무원 명칭-여성 객실 승무원은 ‘스튜어디스(Stewardess, SS)’, 남성 객실 승무원은 ‘스튜어드(Steward, SD)’-을 바꿨다. 대한항공의 모든 객실 승무원 명칭은 ‘플라이트 어텐던트(Flight Attendant, FA)’로 통합됐다.

한편 2022년 7월 서울 홍대 인근에 오픈한 나이키 스타일은 의류를 성별에 따라 구분하지 않는 젠더플루이드를 기반으로 구성됐다. 3층 규모의 매장에는 남성용·여성용이 아닌 스타일별로 아이템을 진열했고, ‘오버사이즈 S’, ‘루스핏 L’ 등으로 상품을 구분해 취향에 따라 제품을 선택하도록 했다.

CREDIT INFO
에디터
문하경
명수진(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각 브랜드, 셀렙, Mnet 제공
2023년 01월호
2023년 01월호
에디터
문하경
명수진(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각 브랜드, 셀렙, Mnet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