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딸과 재벌가 2세의 결혼. 세기의 결혼으로 주목받았던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의 관계는 34년 만에 ‘이혼’으로 끝이 났다. 서울가정법원 가사 합의2부(김현정 부장판사)는 2022년 12월 6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이 서로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을 받아들였다. 이제 둘은 법원 판결 끝에 ‘남’이 됐다. 법원은 두 사람의 이혼 결정과 함께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분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 관장은 현재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가장 주목받았던 부부에서 이혼에 이른 이들의 풀 스토리를 정리했다.
37년 전인 1985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노소영 아트 센터 나비 관장 역시 1980년 서울대에 입학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났다. 노 관장이 대학에 입학하기 몇 개월 전인 1979년 12월 12일 벌어진 쿠데타 직후, 아버지 노태우는 9사단장을 거쳐 수도경비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당연히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대학가의 비난이 거셌던 상황. 이를 부담스러워하던 노 관장은 미국행을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노 관장은 윌리엄앤드 메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시카고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렇게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미국의 시카고대에서 만났다. 같은 대학원 경제학 전공 선후배 사이가 된 것. 두 사람은 테니스를 치는 등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에게 끌렸다고 전해진다.
최태원 회장 아버지 고 최종현 회장은 이들의 만남에 대해 “본인들의 뜻”이라며 “대통령이어서 사돈을 맺자고 했던 것이 아니었고, 또 대통령이라고 해서 굳이 사돈을 맺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고 못 박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드물다.
그렇게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지 7개월 만인 1988년 9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최태원 회장은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1991년 SK글로벌에 입사했고, 1996년 ㈜SK 경영실장, 1997년 ㈜SK 대표이사 부사장 등으로 고속 승진했다.
SK그룹은 1991년 4월 선경텔레콤을 설립하면서 이동통신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1992년 8월 신규 사업자로 선정됐다. 당연히 ‘현직 대통령 사돈기업 특혜’ 시비에 휘말리다 결국 사업자 자격을 반납했지만, 대신 SK는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현 SK텔레콤으로 이어왔다.
SK그룹 성장사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당연히 ‘어두운 모습’들도 향후 드러났다. 최 회장은 1994년엔 노 관장과 함께 외화 밀반출 혐의로, 1995년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스위스 비밀 계좌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물론 모두 사법 처리되지 않았지만 장인(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 제공 의혹과 사업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결혼 생활 중에도 잡음 계속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 생활은 초기엔 불화설이 돌지 않았다. 결혼 다음 해인 1989년 장녀 윤정 씨, 1991년 차녀 민정 씨, 1995년 장남 인근 씨를 차례로 출산하며 금실 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2000년 무렵에만 해도 함께 식사하기 위해 시내 레스토랑을 찾는 모습이 언론 보도에 나올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2003년 최 회장이 검찰 수사로 구속되자 노 관장은 거의 매일 면회를 가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세 자녀 문제를 비롯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최 회장이 다른 재계 총수와 달리 골프를 자제하는 것도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함일 정도로 ‘가족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2010년 즈음부터 ‘불화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2012년, 아예 불화설이 언론에 등장했다. 2011년 9월 최 회장이 본격적인 검찰 수사를 받는 시점에 노 관장이 내조는 고사하고 오히려 최 회장과 관련해 불리한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소리를 접한 최 회장이 큰 충격과 배신감을 느껴 이혼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당시 SK그룹은 이를 부인했다. SK그룹은 2012년 당시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현재 최 회장이 다른 문제로 소송에 휘말린 상태에서 이혼을 생각할 여유가 있겠느냐”며 “수년 전에 두 사람의 이혼 얘기가 루머로 돌 때도 웃으면서 넘겼다”고 했다.
3년 뒤 드러난 ‘이혼’ 이유의 실체
하지만 2015년 12월 29일 최태원 회장은 다시는 없을 법한 ‘언론사에 보낸 가정 파탄 고백 편지’로 이혼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최 회장은 세계일보에 편지를 보내 전격적으로 사생활을 고백했다. 최 회장은 편지에서 “노 관장과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며 동거인의 존재도 고백했다. 최 회장은 “성격 차이때문에 노소영 관장과 10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 알려진 대로 오랜 시간 별거 중”이라며 “결혼 생활을 더는 지속할 수 없다는 점에 공감하고 이혼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던 중 우연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고, 수년 전 여름에 저와 그분과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노 관장도 아이와 아이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개인적인 치부를 밝히고 결자해지하려고 한다”며 노 관장과의 관계도 마무리하고자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혼을 추진한 것은 불화설이 돌던 2012년부터다. 실제로 최 회장은 2013년 1월, 이미 이혼 소장을 작성했던 적이 있다. 2011년 4월 받게 된 계열사 자금 500억원 횡령 관련 검찰 수사가 ‘노 관장 때문’이었다는 판단에서였다. 최 회장이 동거인을 만나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것도 비슷한 시기로 알려졌는데, 2009년부터 노 관장과 별거에 들어간 최 회장은 2010년 한 여인을 만났고 이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얻은 것. 하지만 검찰 수사와 함께 법정 구속되면서 최 회장은 소송을 제기하지 못했다.
1심 판결 분석&노 관장의 항소
최 회장의 편지 고백 후 비난이 쇄도하자 최 회장은 곧바로 이혼 소장을 접수하지 않았다. 편지 고백 1년 6개월 후인 2017년 7월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가정생활 파탄의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는 이혼을 희망할 수 없지만, 2019년 노 관장이 입장을 바꿨다. 노 관장은 편지 고백과 이혼 조정 신청 때만 해도 “가정으로 돌아와라. 자녀는 내가 키우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2019년 “원한다면 이혼해주겠다. 위자료 3억원과 최태원 회장이 가진 SK 주식 중 절반(반소 초반에는 42.29%를 요구했지만 향후 절반을 달라고 주장)을 달라”며 반소(소송이 진행되는 도중에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를 제기했다.
그리고 2022년 12월 6일 법원은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 부부의 이혼을 결정하며 위자료와 재산분할 여부도 판단했다.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분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어떻게 다를까? 위자료는 혼인 파탄의 사유를 제공한 ‘유책배우자’가 다른 배우자에게 정신적 손해배상의 성격으로 주는 돈이다. 보통 3,000만~5,000만원을 받으면 ‘많이 받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 회장에게 법원이 판결한 1억원을 놓고 “최 회장이 명백하게 잘못했다고 법원이 본 셈”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재산분할은 부부가 함께 살면서 형성한 재산을 기여도에 따라 나누는 것이다. 예금을 비롯해 주식, 부동산 등 형태와 상관없이 공동재산으로 인정되는 재산 모두가 포함된다. 통상적으로 ‘책임 여부’와 ‘자녀 양육 여부’가 재산분할에 영향을 미친다. 남성이 유책 배우자인데 자녀가 아직 미성년으로 엄마의 양육이 필요한 경우, 재판 분할 시 여성에게 조금 더 유리하게 할애하곤 한다.
노 관장은 “결혼 기간이 오래된 점을 고려해 증여·상속받은 재산도 공동재산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최태원 회장은 1998년 사망한 최종현 선대 회장이 보유했던 모든 계열사 지분을 상속받았다. 노 관장은 그보다 앞서 1988년 결혼한 시점을 근거로 ‘공동재산’이라고 요구한 것. 노태우 전 대통령 임기 때 시작된 SK그룹의 통신 산업 진출 등은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최 회장 측은 고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증여·상속받은 SK 계열사 지분이 현재 SK㈜ 주식의 기원인 만큼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 특유재산이라고 맞섰다. 최 회장은 SK㈜ 주식의 17.5%인 1,297만여 주를 보유하고 있다. 2022년 12월 9일 종가(20만 3,500원) 기준으로 2조 6,400억원에 달한다. 노 관장의 요구를 법원이 인정했을 경우 최 회장은 1조 2,0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노 관장에게 넘겨줘야 했다. 최 회장의 지분이 10%대 수준으로 줄어들며 경영권에도 위기가 불가피했다.
위자료 부분에서는 요구한 금액(3억원)에 비하면 적지만 의미 있는 판결을 받은 노 관장. 하지만 재산분할에서는 노 관장이 요구한 절반에 크게 못 미치는 665억원만 인정받았다. 요구액의 5% 정도만 받아들여준 셈. 재판부가 분할 대상으로 인정한 재산은 ‘최 회장의 SK그룹 계열사 주식, 부동산, 퇴직금, 예금과 노 관장의 재산’이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계열사 주식, 부동산 등만 분할 대상으로 판단했다는 것 자체가 ‘노 관장의 완패’로 볼 수 있다”며 “최태원 회장과 변호인단이 승리한 재판”이라고 판단했다. 재계 관계자 역시 “최 회장에게는 회사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SK 주식이 핵심인데, 이를 특유재산으로 지켜냈으니 크게 잃은 게 없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2차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12월 19일 노관장 측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기 때문. 소송대리인단 측은 “최 회장 소유의 SK주식을 ‘특유재산’이라고 판단해 재산분할에서 제외한 부분은 수용하기 어렵다”며 “해당 주식은 선대 최종현 회장이 상속·증여한 게 아니라 혼인 기간인 1994년에 2억 8,000만원을 주고 매수한 것이다. 원고(최 회장)의 경영활동을 통해 그 가치가 3조원 이상으로 증가했고, 그 가치 형성 과정에 피고(노 관장)가 내조를 통해 협력했다”고 주장하며 1심을 심리한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김현정 부장판사)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전업주부의 내조와 가사노동만으로 주식과 같은 사업용 재산을 분할할 수 없다고 판단한 법리는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 관장 측은 “가사노동의 기여도를 넓게 인정하는 최근의 판례에 부합하지 않는, 법리적 오류가 있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