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식구가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군대 이야기가 나왔다. 주안이는 내가 복무했던 군부대가 어디인지 물었다. “속초 위에 통일전망대가 있고, 휴전선이 있는 부대에 있었어. GOP(주력부대를 방호하기 위해 운용되는 부대)와 해안 경계를 동시에 하는 유일한 부대였지”라고 답했다. 주안이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아빠 군악대였다고 하지 않았어?”라고 말이다. 주안이의 물음에 과거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대학에 입학한 뒤 입대 영장을 받고 아무런 계획 없이 입대했다. 그런데 신병 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2년이라는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해졌다. 군부대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기 시작했고, 사단 군악대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군악대에 지원했다면 더 좋은 기회가 많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다. 당시 했던 일련의 고민을 주안이에게 털어놓으면서 사전에 계획을 세우는 게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야기의 흐름은 주안이의 꿈으로 이어졌다. 주안이는 요즘 비행기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비행기 기종, 회사, 각 기체에 따라 운행되는 속도, 기내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수 등을 알아가는 게 흥미롭단다. 이야기를 듣다가 “주안이가 열심히 노력하면 파일럿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빠는 어릴 때 파일럿이라는 직업 자체를 생각해보지 못해서 꿈조차 꾸지 못했어”라고 조언했다. 주안이는 뜻밖의 답변을 내놨다. “파일럿이 된다면 너무 좋겠지만 미래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생길지도 몰라. 그렇다면 비행기는 사라지겠지?”라고 말이다. 나와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주안이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주안이의 입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미리 준비하면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주안이는 자신의 미래를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들의 진로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데 더 많은 배움이 필요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차 안의 공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주안이는 싸해진 분위기를 감지한 듯이 “아빠! 그래도 비행기가 금방 사라지진 않을 거야. 만일 내가 파일럿이 되면 아빠한테 매일 일등석을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줄게”라며 으스댔다. 경직됐던 분위기가 금세 밝아졌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참 경이롭다. 큰 틀에선 부모가 자식을 돌보고 교육하지만 도리어 자식으로부터 배움을 얻는 순간이 많다.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알지 못할 귀한 배움이다. 요즘 주안이와 게임을 하면서 이것저것 가르침을 받는다. 주안이는 나보다 더 능숙하게 게임을 하고 창의력을 발산한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면서 마냥 어린아이로만 취급할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떤 대화도 막힘없이 이어가는 아빠이고 싶다. 주안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아빠가 돼야겠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