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는 주방 외에도 거실, 안방, 욕실 등 공간이 많습니다. 그중 주방 디자인에 집중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설렘과 기쁨, 식사하면서 나누는 대화와 교감은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주방은 단순히 가구와 공간을 넘어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주방은 여러 가지 역할과 강력한 힘이 있지만 하나의 오브제처럼 존재하기도 하죠. 미감이 주는 행복이 분명 있잖아요. 예전에는 가부장적인 문화로 여성들만의 공간인 주방을 따로 분리해야 한다는 시선도 분명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주방 공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주방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나요?
물론입니다. 과거에는 거실이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어요. 4인 가족 기준으로 오래 머무는 공간이 거실이니까요. 지금은 문화가 바뀌고, 생활 방식도 많이 달라졌어요. 주방과 거실을 구분하지 않고 한곳으로 모으고, 거실의 사이즈를 줄였죠. 오히려 방을 하나 늘리기도 하고요. 방마다 독립적인 성격을 더 갖게 하는 거죠. 거실 사이즈가 줄어들면서 주방의 중요도는 더 커졌어요. 요즘 레지던스 디자이너들이 공간을 디자인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방 레이아웃을 만드는 거예요. 주방 레이아웃에 따라 동선이 달라지거든요. 잘 생각해보면 주방은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자 일어나서 맨 처음 가는 곳이에요. 유럽에서 온 친구들에게 제가 항상 물어봐요.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이 어디냐고요. 그러면 “당연히 키친이지”라는 대답이 돌아와요. 유럽은 스탠딩 파티가 익숙하기도 하고, 주방에서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죠.
주방 가구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현재 라보토리라는 공간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실내디자인을 전공했고, 공간 디자인 일은 12년 정도 했죠. 그동안 무신사 스탠다드 홍대점과 강남점, 아크로폴리스 디뮤지엄의 공간 디자인도 했어요. 저희가 디자인한 공간에는 기성 제품을 쓰지 않아요. 브랜드의 성향에 맞게 가구, 조명 등 모든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하죠. 기성 제품을 가져다 쓰면 저희의 정체성을 제대로 담기 어려우니까요. 그렇게 여러 제품을 만들다 보니 주변에서 가구를 통해 브랜드의 이야기를 펼쳐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많이 했는데 개인적으로 명분이 없더라고요.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얼마나 사랑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죠. 마케팅 관점의 후킹한 요소만으로 본질을 지키지 못한 채 흘러가는 브랜드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금방 버려지는 가구를 만드는 건 지구를 아프게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직접 뛰어든 주방 시장 생태계는 어떤 상태였나요?
조사해보니 저가 시장과 고가 시장이 양극화돼 있었어요. 저가로 가면 갈수록 디자인적 설계가 미흡한 부분이 많아요. 시간과 비용이 한정돼 있으니 딱 그만큼만 해내는 거죠. MMK는 디자이너 출신 팀원들이 모여 지식과 노하우,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하고 살면서 디자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만족을 주기 위해 설계를 하죠. 물론 고가 시장도 나름의 문제는 있었어요. 하이엔드를 위한 하이엔드였죠.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에 매몰돼 사치화돼갔어요. 주방은 주방의 본질에 집중해야 해요. MMK가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We Build Kitchen Culture(우리는 주방 문화를 만든다)’에는 우리는 주방을 통해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어요.
MMK의 쇼룸은 남산 자락에 있습니다. 유동 인구가 많지도 않고, 조용한 곳에 쇼룸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기 오는 길이 어땠나요? 가을이 느껴지지 않았나요? 제가 이곳으로 사계절 출근해보니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길이더라고요. 서울의 중심에 있으면서 강북과 강남 모두 다리만 건너면 갈 수 있죠. 여기 오는 분들이 계절을 느끼며 숨통이 틔는 순간을 경험했으면 해요. 주방이라는 프로젝트 특성상 방문객은 주로 목적을 갖고 찾아오니까 위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했어요.
가구의 컬러를 직접 매칭할 수 있도록 컬러 칩을 비치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똑같은 공간에 똑같은 색을 매칭하죠. 컬러 활용을 망설입니다. 미묘한 색감과 채도 차이에도 분위기가 확 바뀌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그동안 컬러에 대한 가이드가 전무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MMK는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컬러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모두 자연에서 나온 컬러로 계절을 타지도 않죠. 오랫동안 보아도 질리지 않고, 식재료와도 잘 어우러지는 컬러를 만들었어요. MMK 쇼룸은 A존과 B존, 최근 오픈한 C존까지 3개 영역으로 나뉩니다. 식기와 패브릭 등 주방 오브제를 큐레이션한 A존부터 MMK가 제안하는 4가지 타입의 주방을 만날 수 있는 B존, 새로운 유형의 협업, 컬렉션, 큐레이션을 전개하는 C존까지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