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황보라에게 2022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해다. 마흔을 맞이했고, 연기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10년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안팎으로 많은 부분이 변했지만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맑고 밝은 에너지는 그대로다. 2020년 7월 이후 약 2년 만에 <우먼센스>와 만난 그녀는 화보 촬영현장의 분위기를 환하게 만드는 역할을 자처했다. 좀처럼 지치지 않는 무한한 에너지의 소유자 황보라와의 인터뷰 또한 유쾌함 그 자체였다
제 신혼 생활은요
결혼 축하합니다.(웃음)
많은 분에게 축하를 받았어요. 이 감사함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연애 기간이 길었고, 혼인신고를 먼저 했는데 결혼식을 올리는 건 또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식장에서 너무 많이 울었어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남편을 향해 걸어가는데 지난 10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어요. 남편이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그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결혼식장에 모인 1,000여명의 하객 앞에서 잘 살겠다고 맹세했어요. 이젠 그 약속을 잘 지키면서 사는 게 가장 큰 숙제예요.
신혼 생활은 어때요?
결혼식에 와주셨던 모든 하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느라 한동안 분주했어요. 양가 부모님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요. 결혼식의 연장선이었죠.(웃음) 그래도 큰일을 무사히 치렀다는 안도감이 커요. 결혼을 준비할 때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남편과 둘이서 진행했어요. 결혼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달았죠. 비하인드를 전하자면 본식 드레스를 예식 3일 전에 결정했어요. 드레스만큼은 쉽게 고르지 못해서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어요.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잘 해냈고, 제가 머릿속에 그려왔던 결혼식을 실현해 행복해요.
남편은 어떤 사람이에요?
저보다 저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이에요. 저를 아끼고 위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의 남편이 딱 그래요. 10년간 남편을 지켜보면서 ‘저 사람의 인생에선 내가 1순위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디를 가나 제가 필요한 것부터 찾는 사람이에요. 남편은 무뚝뚝한 편이라 표현에 서툴러요. 그런데 결혼식 날 제 손을 잡고 너무 늦게 데려와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남편의 진심이 느껴졌어요.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떤 경우에도 저를 굶기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어요. 그만큼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요. 저는 물론 제 부모님에게도 잘해요. 제가 외동딸이라 부모님 입장에선 든든한 아들이 생긴 기분이실 거 같아요. 털어놓자면 우리 부부의 연애사 10년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힘든 시간을 묵묵히 같이 이겨내면서 신뢰가 깊어졌어요.
tvN Story 예능 <회장님네 사람들>에서 시아버지 배우 김용건과의 케미가 화제였죠. 서로를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카메라 밖에선 더 다정한 사이예요.(웃음) 평소 매일 전화를 걸어 제 안부를 물으세요. 시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오면 불편하다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기분이 좋아요. 사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생한 사람이 시아버지예요. 처음 치르는 아들 결혼이라 신경을 많이 쓰셨는지 결혼식 후에 몸살이 나셨대요. 뒤늦게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결혼식이 끝난 뒤에 호텔 직원들을 찾아가 덕분에 좋은 예식을 올릴 수 있었다고 박수 치며 감사 인사를 전하셨대요. 그만큼 따뜻하고 배려 깊은 분이에요.
시숙인 배우 하정우와는 술친구로 알려졌죠.
남편 없이 둘이서 만날 만큼 친해요. 알려진 것처럼 밝고 재치 있는 분이에요. 처음부터 저를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덧붙이자면 남편과 10년 동안 연애를 이어오는 데 정우 오빠의 역할이 컸어요.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때가 있어요. 상견례 때 부모님이 정우 오빠를 보곤 저와 성격이 닮았다고 말씀하셨어요. 항상 밝고 사람을 좋아하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연예인 패밀리’라는 타이틀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전혀요.(웃음) 연애할 때부터 시아버지와 정우 오빠에 대한 질문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이젠 시아버지와 예능에 동반으로 출연할 정도로 편해졌어요.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들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을 거 같아요.
가족들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제 개인적인 일이어도 가족들까지 언급될 테니까요. 최근에 하와이 여행을 다녀왔는데, 제 목격담을 전해 들었어요. 저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지나치단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차 싶었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늘 유념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반대로 좋은 점은요?
누구보다 제 마음을 잘 알아주세요. 시아버지와 정우 오빠는 연기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제 고민을 이해해요. 그리고 제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도 재미있게 봐주고 응원해주죠. 정말 든든한 식구예요.
2세 계획이 궁금해요.
점점 생각이 많아져요. 올해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많이 속상했어요. 아무래도 나이가 있기 때문에 준비를 이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남편은 평소 무뚝뚝한 편이라 표현에 서툴러요.
그런데 결혼식 날 제 손을 잡고 너무 늦게 결혼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의 진심이 느껴졌어요.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2022년
황보라는 2003년 SBS 1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인 그녀는 알고 보면 드라마는 물론 스크린까지 섭렵하며 필모그래피를 탄탄하게 쌓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업계에서 황보라는 신스틸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감칠맛 나는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키스 식스 센스>로 여자 조연상을 수상했어요.(황보라는 2022년 제13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여자 조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감독님과 호흡이 잘 맞아 촬영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수상까지 하게 돼서 더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거 같아요. 무엇보다 정우 오빠와 함께 시상식에 참석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어요.(웃음) 공식적인 자리에 동석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말이죠. 약간 민망했고 많이 좋았어요.
데뷔 20년 차입니다. 황보라의 연기관이 궁금해요.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요. 아마 배우로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연기를 깨치며 성장해가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는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황보라가 이런 모습이 있네?’라는 반응이 나오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모성애가 강한 엄마 역할이요. 아직 엄마가 돼보진 않았지만 연기의 영역에선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MBC <전원일기>를 다시 봤는데 김수미 선배님의 연기가 감명 깊었어요. 당시 30대 나이에 노인을 완벽하게 연기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죠. 업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혼 후에 연기의 농도가 더 짙어진다고 해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촬영장 밖에서 황보라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나요?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아요. 스케줄이 없을 때는 오전 11시부터 몸을 움직여요. 사우나에 가서 땀을 빼면서 본격적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요. 운동을 비롯해 자기 관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종종 친구들과 만나요. 거의 10분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거 같아요.(웃음)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가지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있어요.
2020년 <우먼센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SNS 댓글을 살펴본다고 했어요. 지금도 그런가요?
제가 그랬나요?(웃음)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제 이름을 검색해 어떤 기사가 보도됐는지 살펴보고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에서 댓글을 확인해요. 오늘은 시아버지와 함께 출연하고 있는 예능에서 시아버지가 제게 “연기 연습 좀 더 하라”고 말씀하신 게 기사로 났더라고요. 몸으로 속담을 표현하는 게임에서 제가 잘 못하니까 보다 못한 시아버지가 재치 있게 말씀하신 거예요. 그 당시의 상황이 떠올라 기사를 읽으면서 웃었어요.
항상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예요. 실제론 어때요?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늘 밝을 순 없어요.(웃음) 그래도 타고나길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가 커서 에너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친한 친구들은 저를 보고 입이 쉬지 않는다며 고개를 젓기도 해요. 물론 지칠 때가 있지만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금세 충전돼 다시 본래의 높은 텐션으로 돌아가요.
기분이 다운될 땐 어떻게 하나요?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채워요. 속상한 일이 있으면 표출하는 편이에요. 혼자서 끙끙 앓으면 속에서 병이 나기 마련이니까요. 종종 숨김이 없어서 오해를 살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제 성향은 변하지 않을 거 같아요. 인간적이고 솔직해야 연기도 더 잘된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가는 사람들의 유형을 꼽으면요?
결혼을 준비하면서 깨달았어요. 슬플 때 같이 울어주는 사람도 소중하지만, 기쁜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는 사람이 소중한 인연이라는 사실을요. 결혼 준비를 하면서 상처받았던 순간이 있었는데 한 지인이 제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살지 말라고 조언했어요. 특히 결혼에서는 제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며 진심으로 이야기해주더라고요.
2022년이 저물어갑니다. 황보라에게 올 한 해는 어떻게 기억될까요?
미혼 황보라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은 해, 그리고 새로운 가정을 만든 해예요. 찬란한 한 해였어요. 결혼은 개인적인 경사지만, 많은 분의 축하를 받으면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단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받은 마음을 그대로 돌려드리며 살 거예요. 나아가 인생에서 한 번쯤은 연기로 1등을 해보는 게 꿈이에요. 아직 이루고 싶은 게 많아요. 마흔이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웃음)
황보라의 맑고 큰 두 눈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땐 두 눈에 눈물이 자주 차올랐고, 연기 이야기를 할 땐 더 밝게 빛이 났다. 황보라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