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아옌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의 친척인 살바도르 아옌데를 언급 안 할 수 없다. 1973년 남미 최초로 선거를 통해 들어선 사회주의 정당 대표로, 수탈당하는 서민을 대변하는 대통령이 된 살바도르 아옌데는 미국이 후원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재임 3년 만에 목숨을 잃었다. 친아버지가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촌이었던 이사벨 아옌데 또한 독재 정부의 감시 아래 놓였다가 베네수엘라로 망명했다. 그러나 이사벨 아옌데는 친부에 대한 기억이 없다. 페루 주재 칠레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외교관인 아버지 토마스 아옌데는 이사벨이 3살 때 가족을 버리고 행방불명된다. 어머니인 도냐 판치타는 결혼 무효를 선언하고 세 아이를 데리고 칠레로 돌아와 친정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외교관인 라몬 우이도브로와 재혼한다. 덕분에 이사벨은 볼리비아와 베이루트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성장한다.
이사벨 아옌데가 군부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는 단순히 살바도르 아옌데의 친척이어서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적극적인 저항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옌데 정권이 들어섰다가 쿠데타로 뒤집어지고 억압이 자행됐던 시간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쿠데타 이후로도 그는 15개월 동안 칠레에 머물면서 군부에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망명을 도왔다. 결국 그 또한 베네수엘라로 망명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망명한 이후 그는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하게 된다. 1930년대부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난 1973년까지의 근대사를 한 집안, 사대에 걸친 역사 속에 담아낸 첫 소설 <영혼의 집>이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오히려 망명지에 있었던 덕분에 “시간적·지리적인 거리가 있었기에 억압의 사슬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폭력의 순환을 끊어내는 일은 잊을 수는 없지만 용서할 수는 있다는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영혼의 집>은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보낸 편지를 토대로 쓰여졌다.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완벽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이 작품 이후,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사회제도 및 억압의 역사를 담은 사실주의와 환상적·신화적 요소가 함께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가로 자리를 굳힌다. 그는 페미니즘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들은 힘든 삶의 무게에 질식하거나 순종하지 않고, 제 나름의 방법으로 강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여성들은 결국 세상을 구원한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여성에게서 발견한다. 그는 식물인간이 된 딸에게 쓴 편지를 토대로 한 소설 <파울라>의 성공 이후, 그 수익으로 ‘이사벨 아옌데 재단’을 만들었다. 이 재단은 여성과 소녀들의 자립을 지원한다. 그는 세상의 변화는 여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현존하는 스페인어권 출신 작가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판매한 작가로 꼽히는 이사벨 아옌데. 그가 쓴 20여 권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돼 6,500만 권 이상이 팔렸으며, 그중 두 편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하버드대를 비롯해 14개국에 있는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고, 15개 나라에서 50개가 넘는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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