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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같은 온도로 나를 맞아주는 곳

언제나 같은 온도로 나를 맞아주는 곳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이 웃었고, 또 울었다.

On November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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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동네 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우리 동네, 경기 의왕시 내손동의 언덕배기엔 매해 겨울이면 유달리 찬 바람이 분다. 그해 겨울도 그랬다. 나는 엄마와 손을 맞잡고 서로의 온기를 나눴다. 깜깜한 밤,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가로등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엄마는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성탄절 의식을 전부 치렀다고 생각했겠지만, 내겐 아니었다. 치킨, 치킨을 먹는 의식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우린 ‘팀스치킨’이라는 정갈한 글자가 적힌 간판을 향해 다가갔다.

허름한 간판, 색지에 손 글씨로 반듯하게 써 내려간 수제 메뉴판, 오래된 테이블과 짝이 맞지 않는 의자, 세월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가게 주인까지. 어렸던 내겐 모든 게 낯설었다. 손때가 묻은 앞치마를 두른 사장님이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주방에서 한걸음에 나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쳐다보곤 언제 이렇게 자랐냐며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치킨을 기다리면서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이 가게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동네를 굳건하게 지킨 역사가 깊은 곳이었다. 엄마가 나를 배 속에 품고 있던 시기에도 이 가게의 치킨을 먹었다고 했다. 지금에야 레트로나 노포가 트렌드지만, 그땐 오래된 가게 특유의 분위기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팀스치킨과의 첫 만남은 그랬다.

팀스치킨을 다시 찾게 된 건 그로부터 6년 뒤인 21살 겨울이었다. 술이 고픈 밤이었고 동네 친구와 연락을 나눈 지 5분 만에 약속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만남이 순조롭기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동네의 모든 술집 문이 닫혀 있었고, 선택지는 팀스치킨뿐이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온기가 피부에 닿았다. 6년 전에 느꼈던 것과 같았다. 온기뿐이었을까. 동네의 낡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새것으로 단장하는 동안 이곳의 시간은 멈춰 있던 듯했다. 사장님은 단번에 내 얼굴을 알아보고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고는 언제 이렇게 자라서 어른이 됐냐며 그때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향수란 게 이런 걸까? 온갖 경계심을 풀었다. 팀스치킨과의 두 번째 만남은 참으로 진했다.

스며들듯 가까워진 그곳과의 인연은 한동안 이어졌다. 동네 친구와의 만남은 물론 청승맞게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을 때도 나는 팀스치킨에 갔다. 대학생 신분으로, 취업 준비생 신분으로, 직장인 신분으로 조금씩 자라나는 내 모습을 팀스치킨은 알고 있을 테다. 그곳에서 나는 많이 웃었고, 그만큼 울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팀스치킨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내가 살던 동네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최근에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동네를 구석구석 살폈다. 그런데 팀스치킨이 있는 구역은 그대로인 게 아닌가. 모든 게 변해도 영영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가닿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고마웠다. 올겨울엔 팀스치킨에서 많이 웃어야겠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11월호
2022년 11월호
에디터
김연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