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현장, 기자가 직접 가봤다
깔끔한 블랙 슈트에 보타이를 맨 김신영이 무대에 올랐다. 김신영 체제의 KBS1 <전국노래자랑>의 포문이 열렸다. 지난 9월 17일 경기도 하남시 미사경정공원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하남시 편> 녹화 현장에 인파가 몰렸다.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김신영의 등장을 기다렸다. 고 송해를 잇는 후임 MC로 김신영이 발탁된 데 대한 뜨거운 관심이 느껴졌다. 당초 강수 확률 70%라는 기상예보가 있었으나 녹화 시간이 다가올수록 날이 맑아졌다.
KBS 간판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은 1950년대 라이브 노래자랑을 거쳐 1980년 11월 9일 첫 정규 편성이 됐다. 초대 MC 가수 고 이한필을 시작으로 코미디언 이상용, 아나운서 고광수·최선규 등을 거쳐 1988년 5월부터 2022년 6월까지 34년간 단일 프로그램 사상 최장수 MC로 송해가 진행을 맡았다. 4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은 여전히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 지난 6월 8일 송해가 별세하면서 후임 MC로 여러 명의 후보가 언급됐으나, KBS는 올해 데뷔 20년 차인 희극인 김신영을 선택했다. 프로그램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김신영이 적임자라는 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이날 김신영은 특별한 방식으로 등장했다. 오프닝에 앞서 가수 양희은이 노래를 부른 뒤 직접 김신영을 소개했다. 박수와 함께 당찬 발걸음으로 무대에 오른 김신영은 양희은과 함께 ‘행복의 나라’를 불렀다. 김신영은 환호와 인파에 감정이 북받친 듯 연신 눈물을 훔쳤다. 노래를 마친 뒤 양희은은 관객들에게 김신영을 향한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녀는 “우리 신영이를 잘 보듬어달라. 신영이는 잘하려고만 하지 말고, 편안하게 진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신영은 관객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국민 프로그램의 MC를 맡게 된 영광과 감사의 표현이었다. 모두가 기다려왔던 오프닝 멘트가 공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실로폰 소리와 함께 김신영이 “전국~”을 외쳤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목소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렁찼다. 관객들은 “노래자랑~”으로 김신영의 구호에 화답했다.
김신영을 응원하기 위해 특급 게스트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가수 양희은을 시작으로 김신영의 소속사 대표인 코미디언 송은이, 가수 에일리·박현빈·나비·박서진, 그룹 브레이브걸스 등이 신나는 공연으로 김신영에게 힘을 실었다. 이날 게스트들은 참가자들처럼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 뒤 심사위원의 평가를 받았다. 특히 송은이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다며 소속사 식구이자 희극인 후배 김신영을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허리 숙여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김신영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참가자들이 순서대로 무대에 올랐다. 김신영은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지 않는 순간에도 참가자들의 무대를 꾸미는 데 힘을 보탰다. 참가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호응을 하는가 하면, 그들이 준비한 무대에 본인이 더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프로그램의 묘미인 참가자들과의 인터뷰도 그녀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김신영과 합동 퍼포먼스를 요청하는 참가자와는 흔쾌히 즉석 무대를 선보였다.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김신영이 진행을 맡은 <전국노래자랑> 본방송은 10월 16일부터 방송된다.
‘새싹 MC’ 김신영의 각오
KBS1 <전국노래자랑-하남시 편>의 녹화가 진행된 날이었다.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신영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과연 김신영다웠다.
<전국노래자랑>의 새 MC로 발탁된 소감이 궁금해요.
대한민국의 자랑인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돼 영광이에요. <전국노래자랑>은 제게 특별한 프로그램이에요. 매주 할머니의 어깨너머로 지켜봤고, 본방송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7살 때 아버지와 출연했던 적도 있어요. 훌륭한 분들과 함께 MC 후보로 오른 것 자체가 영광인데 저를 예쁘게 봐주시고 진행을 맡겨주셔서 감사해요. 살아 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웃음)
앞서 대구에서 첫 녹화를 마쳤어요(김신영은 지난 9월 3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코오롱야외음악당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서 첫 진행을 선보였다).
고향인 대구에서 시작해 의미가 남달랐어요. 오프닝 멘트로 “전국~”을 외치자마자 울컥했어요. 관객들이 “노래자랑”으로 화답할 땐 온몸에 전율이 일었죠. 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실로폰 소리와 오프닝 음악은 전 국민에게 태교 음악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 귀한 자리를 제게 맡겨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첫 녹화를 마치고 아쉬움이 있었어요. 머리가 하얘져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못했어요. 현장에 찾아온 지인이 현장 촬영 영상을 보내줬는데 대기실에 앉아 다 같이 시청하면서 모두가 눈물을 흘렸어요.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어요.
대구 녹화에서 어린아이에게 용돈을 주는 등 퍼포먼스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사전 리허설 때 어린아이를 발견했어요. 조카에게 용돈을 주고 싶은 이모의 마음으로 지갑을 열었는데 5만원이 들어 있었어요. 1만원짜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웃음) 퍼포먼스를 준비하진 않았어요. 단지 무대에 오르기 전 참가자들이 많이 긴장할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가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장난치면 괜찮아질 거 같았어요. 그래서 참가자와 함께 논다는 마음으로 진행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어르신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조카들이 있다 보니 전 연령대와 편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김상미 CP(책임프로듀서)가 김신영의 첫 녹화 후기를 전했다. 김 cp는 혹여나 무대에 선 김신영이 작아 보일까 봐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신영의 진행을 바라보며 이 같은 생각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단다. 김 CP는 “김신영이 실신할까 봐 걱정될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진행을 이어갔다”며 “리액션을 크게 하니까 관객들도 쉽게 받아들이고 함께 무대에 젖어들더라”고 설명했다.
출연 확정 전화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감사하고 또 감사했어요. 올해 데뷔 20년 차인 저에게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맡겨주시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언론 매체에 기사가 속보로 올라오더라고요.(웃음) 앞으로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만큼 제가 더 잘해야겠죠.
주변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가족들은 저와 같은 마음으로 기뻐하고 있어요. 최근 KBS2 <연중 라이브>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 김의철 KBS 사장님께서 찾아오셨는데, 우리 가족들에게 엄청난 자랑거리예요. 요즘은 축하 속에 지내고 있어요. 방송국 복도를 걸을 때마다 축하 인사를 받고 저는 감사 인사로 화답해요.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예전에는 주민들과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최근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이웃 간 정이 깊어졌어요.(웃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김신영이 출연료를 낮추고 방송에 합류했다는 이야기가 확산되고 있어요.
온라인상에 제가 평소에 받는 출연료가 언급되고 있더라고요. 저도 몰랐던 액수던데요?(웃음) 사실 출연료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에요. <전국노래자랑> MC라면 무조건 해야죠. 주는 대로 받겠습니다.(웃음)
송해 선생님께선 생전에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방송을 하셨어요.
그 마음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린 마음으로 참가자를 대했던 송해 선생님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겠습니다.
MBC every1 예능 <주간 아이돌>, KBS WORLD 예능 <WE K-POP> 등 아이돌 프로그램 진행 경력이 있어요.
<전국노래자랑>과는 다른 결의 프로그램이죠. K-팝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느낀 건 풋풋함이에요. 그런 면에 있어선 <전국노래자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음악의 장르와 춤의 결이 다를 뿐 정서는 같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 음악 앞에서 모두가 행복해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프로그램 특성상 전국 각지에서 촬영이 이어지는데, 스케줄 관리는 어떻게 할 예정인가요?
지금까지 라디오 스케줄을 중심으로 다른 방송 일정을 정했어요. 그런데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측에서 <전국노래자랑> 녹화 일정을 고려해주겠다고 했어요. 라디오 제작진 모두가 한마음으로 저를 지지해주고 있어요. 앞으론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와 <전국노래자랑> 위주로 방송 활동을 하게 될 거 같아요. 덧붙여 체력 관리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하루에 운동 3시간, 삼시 세끼 식단 관리 등 건강에 있어선 누구보다 자신 있어요.(웃음)
악단과의 케미가 프로그램의 큰 재미예요. 어떻게 호흡을 맞춰갈지 궁금해요.
송해 선생님과 악단이 오랜 기간 쌓아온 케미스트리가 있어서 제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됐어요. 그런데 첫 녹화 당시 악단장과 악단원, 심사위원들까지 저를 박수로 맞이해주셨어요. 곧 술 한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하며 자양강장제를 건네주셨어요. 여러 명의 삼촌이 생긴 기분이에요. 제가 첫 녹화 오프닝 때 사색이 되는 모습을 본 심사위원이 앞에서 긴장하지 말라고 손짓을 해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제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도 있을 텐데, 김신영만의 대처법이 있나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실수를 하게 돼요. 그래서 실수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아요. 첫 녹화 때 참가자들에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말씀드렸어요. 저는 다 받아줄 자신이 있거든요.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 또한 <전국노래자랑>만의 재미라고 생각해요. 송해 선생님께선 생전에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방송을 이어나가셨어요. 그 마음을 가장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린 마음으로 참가자를 대했던 송해 선생님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김신영이 이끌어갈 <전국노래자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프로그램의 전통을 잘 이어가는 게 가장 큰 숙제예요. <전국노래자랑>은 42년이 된 나무예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무를 잘라내 제 방식대로 바꿔선 안 되죠. 저는 그 나무 옆에 자라나는 또 다른 나무이고 싶어요. 언젠가는 42년이 된 나무만큼 자라겠죠?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의 진행을 처음 맡았을 때 전임자의 타이틀이 5년 정도 따라다녔어요. 전임 DJ였던 정선희 선배님이 진행을 잘해주셔서 후임인 제가 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걸렸죠. 후임자로서 견뎌야 할 무게라고 생각해요. <전국노래자랑>도 마찬가지로 항상 배우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 성실하게 임하다 보면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요?
끝으로 앞으로의 각오를 전해주세요.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요. 대구에서 진행된 첫 녹화에서 “일요일의 막내딸, 김신영입니다”라고 인사를 드렸어요. 일요일의 남자였던 송해 선생님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였는데, 일요일의 여자까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집안의 막내처럼 서툴지만, 키우는 재미가 있는 그런 존재이고 싶어요. 저를 키운다는 마음으로 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서만큼은 하고 싶은 말, 치고 싶은 장난 전부 다 하셔도 돼요. 저는 무엇이든 받아주고 함께 놀 준비가 돼 있어요.
김신영이 발탁된 이유
송해의 뒤를 이을 만한 인물을 발굴하는 건 KBS 전체의 고민이었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가장 많이 언급된 이는 송해의 고향 후배 이상벽이다. 송해가 생전에 마음으로 정한 후임이라고 종종 말한 바 있다. 이 밖에 이택림, 이상용, 임백천, 이수근이 유력한 후보로 올랐다.
하지만 KBS의 결정은 김신영이었다. 이를 두고 KBS가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2003년 데뷔, 올해 20년 차 희극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신영은 소위 ‘못하는 게 없는’ 베테랑 희극인으로 꼽힌다. SBS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 출연 때부터 김신영이 선보인 생활 연기는 그녀의 뛰어난 관찰력을 자랑한다. 둘째 이모, 세신사, 식당 아주머니 등 그녀가 흉내 내는 캐릭터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김신영은 전국 팔도를 순회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어울려야 하는 <전국노래자랑> MC에 필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김신영은 올해 10년째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의 DJ로 활약 중이다.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은 물론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까지 뛰어나다. 또한 김신영은 영화 <헤어질 결심>을 통해 정극에 도전했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호평이 이어졌다. 김신영이 영화에 합류하게 된 배경엔 감독 박찬욱의 적극적인 러브콜이 큰 역할을 했다. 박찬욱은 평소 김신영의 관찰력을 보고 ‘천재’라고 표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