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랜드>를 보며 낭만적인 가을을 고대해본다.
영화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계절이 관람 당시의 계절과 맞아떨어질 때 더욱 몰입감이 높아진다. 영화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아무래도 온도와 날씨이지 않을까? 여름에는 단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과 짙은 녹음 등 여름의 정취만을 온전히 담아 후덥지근한 여름날에 보지 않으면 반칙이다. 주인공인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가 따사로운 햇빛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이탈리아의 한 마을을 자유분방하게 누비는 장면을 보면 마치 나도 ‘엘리오’와 함께 거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서운 집중력이 발휘된다.
무더위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여름과 가을 사이, 여지없이 찾는 영화가 한 편 있다. 약속이 없는 주말 밤, 방의 조명을 은은하게 조절하고 이날을 위해 준비해둔 맥주 한 캔을 냉장고에서 꺼내 온 뒤 노트북 앞에 자리 잡는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에 접속해 평소 즐겨 보는 예능과 드라마를 뒤로하고 플레이하는 것은 바로 영화 <라라랜드>다. 실제로 이 영화는 겨울에 개봉했고, 영화의 배경도 가을 풍경만 담은 영화는 아니다. LA의 풍경을 계절별로 담아냈는데 겨울을 시작으로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로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영화 분위기 때문에 가을의 선선한 밤공기와 합이 잘 맞는 영화 중 하나로 꼽고 싶다. <라라랜드> 하면 겨울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몇 년 전 어느 가을밤, 여의도 한강공원을 방문했는데 우연히 야외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는 곳을 지나쳤다. 날마다 다른 영화를 거대한 빔 프로젝터 화면으로 감상하는 이벤트였는데, 그날은 <라라랜드>가 상영 중이었다. 여의도의 야경과 한강 풍경, 그리고 선선한 밤공기와 <라라랜드>라니. 도무지 지나칠 수 없어 귀가하려던 계획을 바꿔 잔디밭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아 끝까지 관람했다. 주변이 어수선했지만 어둡고 조용한 극장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인상 깊게 남았다. 특히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으로 널리 알려진 장면인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나올 때는 화면 뒤에 펼쳐진 여의도 빌딩 숲의 불빛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마치 나도 <라라랜드>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해 선선하고 낭만적인 가을, 특히 낮이 아닌 밤에 이 영화를 찾게 된다. 단순히 영화 미장센만 좋아서는 여러 번 감상하기 어려운데, 보면 볼수록 내용을 곱씹게 되는 스토리까지 완벽하다. 전체적인 내용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과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 분)의 사랑 이야기지만, 주인공들의 꿈을 이루는 성장기이기도 하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영화 속 열정적인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얼른 가을이 와서 어느새 딱딱하게 굳은 내 마음과 감성을 말랑하게 풀어줄 <라라랜드> 속으로 흠뻑 빠져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