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이가 손꼽아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아들에게 방학을 맞아 가고 싶은 여행지를 물었다. 주안이는 약간의 고민도 없이 제주도를 꼽았다. 올봄에 다녀왔던 제주도 여행이 좋은 추억으로 남은 눈치였다. 주안이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봄과는 다른 여행 일정을 짰다. 아내가 스케줄을 마치고 뒤늦게 합류하는 여행이기에 주안이와 단둘이 할 수 있는 놀거리를 중심으로 정보를 모았다. 워터파크, 골프장, 반딧불이 관광을 하기로 결정했고, 여행의 재미를 더해줄 음식으로는 대왕갈치, 제주흑돼지를 골랐다. 이번 여행만의 특별함은 따로 있었다. 비행기가 아니라 인천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는 것! 주안이와 나는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다.
출발 당일, 짐을 차에 모두 싣고 집에서 아내와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출발지인 인천항으로 향했다. 항구로 향하는 길, 주안이는 우리를 제주도로 데려다줄 배의 정보를 읊었다. 이름부터 역사, 이전에 일어났던 안타까운 사고까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정보라고 했다. 우리는 안전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주안이는 배가 보다 안전한 바닷길로 돌아간다는 정보를 내게 알려줬다. 또 제주도까지 17시간이 걸린다는 것부터 배 안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시설, 저녁 식사와 아침 시간대까지 줄줄 외웠다. 흥미롭게 듣고만 있었는데, 배에 탑승하고 보니 굉장히 중요한 정보였다. 주안이가 배 내부에 있는 편의점 이용 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을 환히 꿰고 있지 않았더라면 시행착오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주안이 덕분에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객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음료수와 과자를 먹었고, 선상에 올라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았다.
드디어 제주도에 도착했다. 시간이 이른 탓에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거의 없었다. 주안이는 상황을 파악한 뒤 “아빠! 우리 여행 왔으니까 맛있는 라면을 먹자”고 말했다. 라면은 주안이가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아빠로서 여행의 첫 끼니를 라면으로 해결하는 게 내심 아쉬웠다.
이번 여행의 첫 일정은 워터파크였다. 놀이 기구와 워터슬라이드를 좋아하지 않는 주안이 덕분에(?)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우리만의 물놀이를 즐겼다. 튜브를 타고 파도 풀에 들어가고 잠수놀이도 했다. 워터파크 다음은 오락실! 우리는 인형 뽑기, 펌프 등 다양한 오락기 앞에서 땀이 날 정도로 집중했다. 알찬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주안이와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아봤다. 대뜸 주안이는 “오늘 아빠랑 놀아서 재미있었지만, 엄마랑 셋이 있을 때가 더 좋은 거 같다”고 말했다. 아내가 물놀이를 즐기지 않아서 앞당겨 워터파크에 다녀온 것인데, 주안이는 마음 한편으로 엄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들이 훌쩍 자란 느낌이었다. 이어 주안이는 “내일 엄마가 오면 더 재미있게 놀자”고 덧붙였다. 새삼 아들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주안이를 보면서 나도 그만큼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되돌아봤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