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사진은 2분 이상 바라볼 수 있는 사진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은 사연이 읽히는 사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오랜 시간 발길이 머물게 하는 사진을 ‘온 세상을 담은 작품’이라고 명명했다. 브레송은 연출된 상업사진이 성행했던 1930년대에 한 손에 쥐어지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찰나의 순간을 기록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은 브레송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출간 7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이다. 브레송이 약 20년 동안 세계를 누비며 촬영한 사진으로 구성됐다. 또 생전 인터뷰 영상과 작품 해설이 기록된 영상물을 통해 브레송의 사진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만의 특별함이 있다. 미술계 거장 앙리 마티스가 커버를 그린 <결정적 순간>의 초판, 출판 당시 편집자들과 주고받은 브레송의 자필 편지를 만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1931년 브레송이 처음으로 구입한 카메라이자 오랜 시간 그의 눈이 돼준 라이카의 실물을 공개해 가치가 높은 전시로 평가된다. 실제로 본 그의 카메라에는 세월이 묻어났다. 그럼에도 굵은 흠집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브레송이 카메라를 얼마나 소중하게 다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닳고 닳은 스트랩을 보면서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카메라 스트랩을 손목에 휘감고 다녔을 브레송의 생전 모습을 상상해봤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처음으로 마주하는 작품은 ‘프랑스 마르세유 프리도 거리(1932)’다. 길가 양쪽에 줄지어 선 앙상한 나무들과 셔터가 눌리는 순간 뒤돌아서는 신사의 모습이 담긴 작품이다. 남성이 쓴 중절모와 뒤로 도는 순간 대칭을 맞춰 펼쳐지는 망토, 손에 쥐고 있는 우산까지 완벽한 구도를 자랑한다. 이 작품에는 브레송의 사진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어린 시절 그림을 배웠던 브레송은 스승이 강조한 ‘구도’를 자연스럽게 작품의 중요 요소로 여겼는데, 사진을 찍으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전시는 유럽, 멕시코, 미국, 인도, 중국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각국의 사람들, 풍경, 건축물 등 당대의 향수가 느껴지는 생생한 순간이 시간별로 배치됐다.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간디의 장례식,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하기 직전의 상황과 같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을 브레송의 시선으로 해석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한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은 오는 10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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