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이 여름을 버티던 때가 있었다. 에어컨이 흔하지 않던 어린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혼자 자취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에어컨 구입비도 부담스럽고, 전기세 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라고 싶지 않았다. 에어컨 1대가 선풍기 30대의 에너지를 쓴다는 그 옛날의 공익광고가 준 충격도 꽤 컸다. 생활비도 아끼고 에너지 절약도 할 수 있으니 나에게 더위는 참아야 하는 거였다. 열대야를 이기는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고, 선풍기를 틀고, 창문을 활짝 열고 잤다. 너무 더워 잠을 잘 수 없는 날에는 일어나 다시 샤워했다. 함께 사는 강아지는 비교적 시원한 타일 바닥을 찾아 현관에서 배를 깔고 자곤 했다. 그래도 못 견디게 더우면 강아지를 데리고 밤 산책을 했다. 열대야가 오면 실내보다 실외가 더 시원하니 그게 최선이었다. 고궁 옆에서 살던 때인데 밤에 걸으면 더 운치가 있었다. 열대야로 전기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 정전되는 바람에 온 동네가 어두컴컴하던 날도 있었다. 선풍기마저 사용할 수 없던 그날 밤에도 강아지와 산책했다. 그날은 에어컨이 있든 없든 이웃 모두가 거리로 나와 돗자리를 깔고 앉아 부채질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나는 강아지와 편의점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웃과 함께 겪는 더위라서 그런지 그날 밤은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결혼 후에도 한동안 에어컨 없이 버텼다. 하지만 어느 여름부터 한계를 느꼈다. 강아지는 땀띠가 났고, 남편은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미안해졌다. 결국 안방에 에어컨을 설치했고 그 후로 나는 열대야는 잘 모르고 산다. 다만 에어컨 온도를 높였다 낮췄다, 에어컨을 껐다 켰다 반복하느라 잠을 조금 설친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여보, 나 추워”, “여보, 나 더워” 하면서 에어컨 리모컨을 찾았다. 나에게 열대야는 이제 숨 막히게 더운 밤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과 적정 온도를 타협해야 하는 밤이다. 머잖아 성능 좋은 최신형 컨버터블 에어컨으로 바꾸고 이 고민마저 완전히 해결할지도 모르겠다.
외부는 40℃ 이상으로 올라가도 어디를 가나 에어컨으로 시원한 두바이가 생각난다. 사막 위에 지어진 휘황찬란한 도시는 역설적으로 춥기까지 했다. 환경을 극복한 눈부신 문명이 경이롭기도 하고 신기루 같은 안락함이 한편으론 불안했다. 사막인데 이렇게 시원해도 되는 걸까? 두바이의 모든 실내는 시원하지만 건설 노동자처럼 외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위협적인 더위 속에서 소금을 먹으면서 일한다고 했다.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요즘, 열대야를 모를 만큼 나는 이렇게 시원해도 되는 걸까? 열대야를 이겨낼 수 있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자연에, 더위를 견디고 있을 누군가에게 덜 미안할 텐데.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 언니에게서 영상 메시지 하나가 왔다. “시원한 물소리 들어봐.” 딸과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영상에서 맑은 계곡물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상을 반복해 봤다. 아무래도 지혜는 자연 속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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