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음식 칼국수도 10% 올랐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주부 김 모 씨는 최근 마트에서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20kg짜리 쌀 한 포대와 돼지고기 두 팩을 카트에 담았다가 깜짝 놀라고 만 것이다. 쌀과 돼지고기만 샀을 뿐인데 10만원이 훌쩍 넘는 걸 보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결국 돼지고기를 제자리에 올려놓고 쌀만 사서 돌아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OECD 38개 회원국의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2%로, 1988년 9월(9.3%)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대를 넘어섰는데, 이는 2008년 8월 5.6%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요즘 주부들 사이에선 ‘마트 출입 금지’가 일상이 됐다. 얼마 전까지 1만원이면 살 수 있었던 상품이 불과 며칠 사이에 1만 500원이 됐고, 이 몇백원이 쌓여 한 달 가계 지출이 몇십만원가량 늘어나기 때문이다. 동네 마트를 한 바퀴만 돌아도 20만원이 훌쩍 넘는 현실이 부담스러운 주부들이 아예 마트를 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꼭 필요한 소비를 제외하고 허리띠를 졸라매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생활 물가뿐일까? 석유류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했을 때 34.8% 상승했고, 전기·가스·수도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9.6% 올랐다. 서비스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5%, 집세는 2.0%, 공공서비스는 0.7%, 개인 서비스는 5.1% 올랐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직장인의 볼멘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6월 12일 오후 3시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리터당 2068.07원으로 전날에 비해 3.48원 올랐다. 경유 평균 판매 가격도 리터당 2067.4원으로 전날과 비교해 3.87원 상승했다. 자고 일어나면 올라 있는 기름값 때문에 “오늘 주유하는 게 제일 싸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도로 위 차량 수가 현저히 줄었다.
심지어 가스 요금도 오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가스공사는 다음 달부터 주택용과 일반용 가스 요금의 원료비 정산단가를 MJ(가스 사용 열량 단위)당 0.67원 인상된 1.90원으로 올린다고 밝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국제 가스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가스 요금 인상은 예견된 일이다. 정산단가 인상은 오는 10월에 1.90원에서 2.30원으로 한 차례 더 단행될 예정이다. 이와 동시에 전기 요금도 오른다.
밀 가격은 1년 전보다 50% 이상 급등했는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최대 곡물 수출 터미널 중 하나를 파괴한 뒤 하루에만 밀 가격이 4% 올랐다. 밀과 옥수수 등 식량 가격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다음 차례는 쌀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도 울렸다. 실제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주 발표한 5월 식량 가격 지수에 따르면 국제 쌀값은 이미 5개월 연속 상승해 1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렇듯 가계경제가 위협받게 되면서 오죽하면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점심’과 ‘물가 상승’을 조합해 ‘런치플레이션’이라고 칭한다. 1만원 한 장으로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 쉽지 않아 생겨난 말이다. 실제로 밀가루 가격이 상승하면서 냉면 한 그릇에 만원이 넘는다. 직장인의 단골 점심 메뉴인 칼국수도 10%가량 올랐다. 식사 후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1만원 이상을 소비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는 직장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식재료를 따로 사지 않고 냉장고 냉동실에 숨어 있는 갖은 식재료를 꺼내 요리해 먹는다는 의미에서 ‘냉장고 파먹기’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나의 식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공유한 영상은 업로드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값비싼 음식을 먹으며 ‘플렉스’를 인증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미국발 인플레이션의 공포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40여 년 만에 역대급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여파를 꼽을 수 있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상승하고 있는데, 이 여파가 결국 국제시장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제 유가 등 에너지 가격 급등세가 꼽히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가격 상승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1년 전에 비해 에너지 가격은 34.6%나 증가했다. 전쟁으로 인해 석유 수입이 어려워졌고, 석유를 기반으로 운영하는공장들의 가동이 어려워졌는데 이는 곧 원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소비자 판매가도 인상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인 상품군은 고기다. 미국산 LA갈비의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뛰었다. 한우가 미국산 소고기보다 싼 실정이다. 수입육 유통 전문 브랜드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원자재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고깃값이 상승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수입이 더 어려워졌다. 싼 고기는커녕 팔 고기조차 없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최대 식료품 공급업체와 레스토랑들이 비용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린다. 미라클휩, 맥스웰하우스 커피 등을 유통하는 크래프트하인즈와 맥도날드, 미국 최대 육가공업체 타이슨푸드, 스팸 제조사로 알려진 호멜푸드 등이다. 역사상 최대 인플레이션을 맞은 미국의 가격 인상 단행은 결국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지만 생활 물가를 잡을 수 있는 카드는 마땅치 않다. 정부는 소비자 부담 경감을 위해 유류세 인하를 상한 폭인 30%까지 시행하고 있지만 세금 인하 폭에 비해 국제 유가 상승 폭이 더 크다 보니 효과를 체감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추가적으로 유류세 탄력 세율을 조정한다면 실질적인 인하 폭을 37%까지 늘릴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의 봉쇄 조치 등 다양한 국제 정세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적용이 쉽지는 않다.
세계의 각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고민거리인 물가 상승 해결은 푸틴과 유가에 달렸다고 말한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과 인식에 비판적인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현 상황보다 물가가 더 올라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동과 유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물가하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잠잠해지고, 그로 인해 유가가 안정되면 자연스럽게 물가 역시 안정세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가운 소식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월 ‘석유 왕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 지도자의 만남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생활비 아끼는 TIP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구매하라.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엄연히 다르다. 유통기한은 상품이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는 기한을 말하고, 소비기한은 식품을 섭취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소비 최종 기한을 말한다. 요구르트는 유통기한 경과 후 10일까지 먹을 수 있다. 달걀은 25일, 액상 커피는 30일, 우유는 45일, 두부는 90일, 라면은 8개월까지 먹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저렴하게 판매되는 유통기한 임박 식품을 구입하는 것도 지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을 활용하라.
지역사랑상품권은 10% 캐시백이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연말에는 소득공제를 30% 이상 받을 수 있다. 사용처에 따라 추가 캐시백을 해주는 지역도 있으니 잘만 활용하면 이익이 배가된다. 서울은 구별로 나뉘어 있고, 다른 지역들은 시와 군별로 나뉘어 있으니 잘 확인하자.
중고 거래를 이용하라.
‘중고나라’, ‘당근마켓’과 같은 중고 거래 앱을 적극 활용하면 생활비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전자 기기는 물론 식료품, 의류, 가전제품 등 생활용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편의점을 통해 택배를 보내고 받을 수 있는 ‘반값택배’를 활용하면 중고거래 시 발생하는 택배비까지 아낄 수 있다. 기존의 택배비보다 반값 이상 저렴하다. 단, 의약품과 같은 판매 허가가 필요한 제품의 직거래는 불법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알뜰폰을 사용하라.
한 달의 고정 지출 중에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 바로 통신 요금이다. 단말기 할부금, 부가 사용료 등을 합하면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알뜰폰 요금제로 바꾸면 평소에 내던 통신 요금의 절반가량을 아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