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우리는 주안이의 봄방학 일주일 동안 어디를 다녀올 수 있을지 회의를 거듭했다. 세 식구가 서로 가고 싶은 곳, 좋아하는 곳, 떠오르는 곳 등을 말하며 회의한 끝에 목적지가 결정됐다. 바로 제주도! 그 뒤에도 숙소와 타고 다닐 자동차, 방문할 장소와 맛집 등 계획해야 할 것이 산더미 같았다. 첫 번째로 각자 좋아하는 것을 찾은 뒤 하나씩 덜어내는 작업을 했다. 가장 기본인 숙소를 정할 때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여행지로 제주의 인기가 높아서인지 우리 가족이 만장일치로 숙소를 정해도 만실인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는 타고 다닐 자동차. 처음엔 렌터카를 알아봤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면 우리 자동차를 탁송으로 제주도로 보내는 것과 렌터카 비용이 비슷해 우리는 자동차를 제주도로 보내기로 했다. 짐을 차에 잔뜩 실어 보내고 가벼운 몸으로 비행기를 타러 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은 방문할 장소였다. 가보고 싶은 곳, 체험하고 싶은 곳, 경치가 좋은 곳 등이 너무 많았다. 결국 여행 전에 다 정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예전부터 우리 가족이 제주도에 가면 항상 방문했던 식당 리스트를 뽑아 동선을 정리했다. 그런데 맛있는 조식과 석식이 제공되는 곳으로 숙소가 결정되면서 맛집 역시 상황에 따라 결정하기로 했다. 제주도로 떠나기 이틀 전, 각자 짐을 챙겨 자동차에 실었다. 차에 짐을 실어 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가져가고 싶은 짐을 마음껏 챙길 수 있었다.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주안이는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오랜만에 공항에 왔는데 많이 변한 것 같아”라며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주안아! 여긴 김포공항이고 그땐 인천국제공항이었어”라고 알려주자 주안이는 “아, 어쩐지.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고 생각했지. 오랜만에 와서 그런 줄 알았네!”라며 살짝 쑥스러워했지만 여행에 대한 기대로 설레는 표정이었다.
우리 가족은 일주일 동안 스누피가든을 가고, 미디어 아트 관람을 하고, 카트를 타고 서바이벌 게임과 사격도 했다. 또 감귤 따기 체험을 하고, 사탕을 만드는 수업을 받았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즐기고 누렸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과 석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맛집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고, 체험하는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 여행을 다녀오고 일상을 보내던 중 주안이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제주 여행이 해외여행이나 다른 여행보다 더 기억에 남고 즐거웠어.” 이유인즉슨 이랬다. 부모님이 데리고 가는 곳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결정하고 즐길 수 있었던 여행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고. 실제로 이번 제주 여행은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웃고 대화했던 여행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부 역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