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값 논란은 어떻게 시작됐나
‘178벌의 옷과 207개의 액세서리.’ 일부 네티즌이 언론에 보도된 사진을 근거로 찾아낸 문재인 대통령 배우자 김정숙 여사의 공개 석상 속 옷과 액세서리의 규모다. 옷은 코트 24벌, 롱 재킷 30벌, 원피스 34벌, 투피스 49벌, 바지 슈트 27벌, 블라우스와 셔츠 14벌 등 총 178벌, 액세서리는 한복 노리개 51개, 스카프·머플러 33개, 목걸이 29개, 반지 21개, 브로치 29개, 팔찌 19개, 가방 25개 등 207개다. 김정숙 여사의 옷 정보를 공유하는 SNS 계정도 생겼다. 김정숙 여사의 개인 소장품부터 저렴한 것은 수만원, 비싼 것은 수백만원 상당으로 추정되는 옷과 액세서리 정보가 올라와 있다.
네티즌이 김정숙 여사가 착용한 의상·액세서리와 외관이 비슷한 제품을 찾아내게 된 것은 청와대 예산 공개를 요구하는 시민 단체의 소송에서 비롯됐다. 시민 단체 한국납세자연맹은 2018년 6월 ‘김정숙 여사의 의상·액세서리·구두 등 품위 유지를 위한 의전 비용과 관련된 정부의 예산편성 금액 및 지출 실적’ 등을 요구하는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국가 안보 등 민감 사항이 포함돼 국가 중대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툼은 재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3월 10일, 서울행정법원은 “청와대 주장은 비공개 사유가 될 수 없다”며 공개를 결정했지만 청와대는 곧바로 항소했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다. 임기가 끝나면 관련 자료는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지정된다.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국민경제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기록물은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정해지는데 최장 15년, 사생활 관련 기록물의 경우 30년 동안 비공개 대상이 된다.
문재인 정부가 ‘비용 숨기기’를 한다고 생각한 네티즌은 김정숙 여사의 옷과 액세서리 가격을 하나씩 모아 추론해나가기 시작했다. 명품 제품이 진품일 경우 의상비만 수십억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는 추론도 제기됐다. 청와대 청원 글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떳떳하면 공개하라”며 ‘청와대 의상·구두 등 특활비 공개를 원한다’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김정숙 여사가 공개 석상에서 반지 속 진주알을 황급히 숨기는 모습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기도 했다. 해당 영상은 2020년 연말, 문재인 대통령이 국내 나눔 단체를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한 자리였다. 문 대통령 내외는 구세군 모금함에 성금을 냈는데, 이때 김정숙 여사는 진주 반지를 낀 채로 성금을 내다가 황급하게 진주알이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도록 돌리는 모습이 찍혔다.
이처럼 김정숙 여사의 의상과 비용을 놓고 논란이 확대되자 청와대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지난 3월 29일 청와대는 김정숙 여사가 공식 행사 의상 구입은 사비로 부담했으며, 특수활동비(특활비, 세금)는 사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브리핑을 통해 “임기 중 대통령 배우자로서 의류 구입 목적 특활비 등은 국가 예산을 편성해 사용한 적 없고, 사비로 부담했다”면서도 “(해외) 순방 의전과 국제 행사 등으로 지원받은 의상은 기증하거나 반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 간 정상회담, 국빈 해외 방문, 외빈 초청 행사 등 공식 활동 수행 시 국가원수 및 영부인으로서 외교 활동을 위한 의전 비용은 행사 부대 비용으로 엄격한 내부 절차에 따라 필요 최소한의 수준에서 예산을 일부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인 샤넬과 까르띠에의 옷과 액세서리와 관련해 추가적인 의혹이 제기됐다. 김정숙 여사가 2억원이 넘는 까르띠에의 표범 무늬 브로치를 한 사진과 해외 순방 때 입은 샤넬 재킷 사진이 시작이었다. 까르띠에 브로치의 경우 ‘진품’이면 수억원의 세금을 유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샤넬 재킷의 경우 2018년 프랑스 해외 순방 때 착용하고 기증했다는 재킷이 당시 입었던 옷과 달라 김정숙 여사의 옷장에 보관 중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해프닝이었다. 김 여사의 표범 무늬 브로치는 까르띠에 제품이 아닌 단순히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이었고, 샤넬 재킷은 샤넬이 김정숙 여사에게 한글이 새겨진 재킷을 빌려줬고 순방 후 이를 반납했다고 한다. 샤넬 측은 “반납받은 후 국립한글박물관 요청에 따라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기증했다”며 착용했던 재킷은 샤넬에서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 특채’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김정숙 여사가 단골 디자이너의 딸인 프랑스 국적자 A씨를 의상 및 의전 담당 6급 행정 요원 계약직으로 뽑은 사실이 알려진 것. 국가공무원법 제26조 등에 따르면 외국 국적자나 복수 국적자는 국가의 존립과 헌법 기본 질서 유지를 위한 국가 안보 분야,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 이익을 해하게 되는 보안·기밀 분야 등에 임용이 제한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여러 기관을 통해 이미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결론을 받았다”며 “A씨가 경력 등을 감안했을 때 매우 적은 급여를 받고 일해왔다”고 해명했다.
경찰 수사? “공개 안 되고 끝날 가능성”
해외 순방 때 의복부터 채용까지, 김정숙 여사에게 지원된 세금 비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을까? 강제수사를 강행할 경우 가능하다. 김정숙 여사의 의전 비용 논란에 대한 고발 사건은 현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돼 있다.
청와대에서 “모든 비용은 사비로 부담했다”고 해명하자 일부 네티즌이 “사비로 부담했다면 영수증 등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청와대는 “공개할 생각은 없다”고 거부한 상황. 시민 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김정숙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교사, 업무상 횡령 혐의 등으로 경찰청에 고발 조치했다.
하지만 강제수사를 통해 김정숙 여사의 옷장 속 규모와 금액이 공개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일단 문 대통령 임기가 5월 9일 끝나면 해당 기록은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지정된다. 해당 기록물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통해 확보할 수는 있지만, 윤석열 정부가 이를 강행할 경우 ‘전 대통령 망신 주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는 개인 의견이라는 점을 전제로 “네티즌이 이를 문제 삼고 지적하는 여론이 있다는 점, 그 배경에는 세금 유용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있다는 점을 잘 안다”면서도 “이를 경찰 등 수사기관을 동원해 확인하는 게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논란을 고려해 청와대의 예산 운영 시스템을 손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예산에는 공식적으로 대통령 외에 가족의 의상을 구입하는 예산은 없다. 공적인 목적으로 참석하는 행사의 경우 외교부 예산으로 영부인의 옷을 구입하거나 제작할 수 있는 정도다. 그 외에 통상적인 일정의 경우 영부인이 자비로 구입한 옷이나 원래 가지고 있던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해야 한다.
앞선 관계자는 “아예 새로운 기준을 정해 영부인에 대한 지원 규모 등을 공개하는 게 적절하고 여러 번 같은 옷을 입는 게 당연해지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며 “김정숙 여사 의복비 논란은 청와대 예산을 더 엄격하게 사용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