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을 저지른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세)와 내연남 조현수(30세)가 경찰에 붙잡혔다. 두 사람이 잠적한 지 4개월, 지명수배 17일 만이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4월 16일 오후 12시 25분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모 오피스텔에서 두 사람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까지 자기 명의의 신용카드와 휴대전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이은해 아버지의 설득으로 자수 의사를 밝혀 경찰이 검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은해와 조현수는 2019년 6월 이 씨의 남편 윤 모씨(당시 39세)를 경기도 가평군의 한 계곡에서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윤 씨 앞으로 가입된 8억원대 보험금을 수령할 목적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두 사람이 받는 혐의는 살인과 2건의 살인미수,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등 총 4건이다.
총 세 번의 살인 시도
이은해와 남편 윤 씨는 2012년부터 관계를 맺어왔다. 그리고 2017년 3월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를 통해 법적 부부가 됐다. 같은 해 8월 이은해는 윤 씨와 혼인신고를 한 지 5개월 만에 자신을 보험금 수령자로 지정한 남편 명의의 생명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생명보험 상품 4개, 손해보험 상품 2개 등 총 8억대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 상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2월 이은해는 강원도 양양 소재의 한 펜션에서 복어 피와 정소 등을 섞은 음식을 남편 윤 씨에게 먹였다. 그러나 치사량 미달로 이은해의 살인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당시 이은해는 “복어 피(독)를 이만큼 넣었는데 왜 안 죽지”라는 내용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내연남 조현수에게 보냈다. 같은 해 5월 이은해는 경기도 용인 소재의 한 낚시터에서 수영을 하지 못하는 윤 씨를 고의로 물에 빠뜨렸다. 그러나 윤 씨의 지인에게 발각돼 가까스로 윤 씨가 물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두 번째 살인 시도도 미수에 그친다. 한 달 뒤인 6월 30일 이은해는 자신의 지인들과 함께 떠난 경기도 가평 소재의 계곡에서 윤 씨에게 4m 높이의 절벽 다이빙을 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한 매체가 공개한 사망 당일 계곡 영상에 따르면, 당시 윤 씨는 불안한 듯 “그만하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은해와 조현수가 치밀한 살인 계획을 벌이던 때, 윤 씨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는 사망 전까지 16년간 대기업에 다녔으며, 6,000만원 상당의 연봉을 받았다. 윤 씨의 직장 동료에 따르면 3년 전 윤 씨는 3억원의 여윳돈을 모았으며, 유족 등은 윤 씨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이 총 6억~7억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윤 씨는 이은해와 혼인신고를 한 지 1년 만에 개인회생을 신청할 만큼 금전적 어려움을 겪었다. 생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지인에게 1만원을 빌리고, 찢어진 신발을 신고 다니는 등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살펴보면 이은해가 윤 씨의 월급과 자산을 관리한 데 이어 윤 씨의 명의를 이용해 억대의 자금을 유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은해는 남편 윤 씨 가족 명의 카드로 이른바 ‘카드깡’을 해 남편 계좌 등에서 2억원의 돈을 빼냈다. 또 윤 씨의 계좌에서 이은해의 교통범칙금과 주차위반 과태료가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신속하지 못했던 수사… 유족의 분통
2019년 당시 사건은 단순 익사로 마무리됐다. 사고 발생지 관할인 경기 가평경찰서는 지인과 목격자들의 진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가 익사인 점을 종합해 타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유족은 피의자로 이은해를 지목하고 휴대전화를 조사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은해는 사건이 종결된 지 한 달 만에 보험회사에 윤 씨의 사망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거절당한다. 이후 이은해는 SBS 시사·교양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그알>)에 보험사가 보험금을 주기 싫어 트집을 잡는다고 제보했다. 이은해의 주장을 의심한 <그알> 제작진은 2020년 10월 ‘가평계곡 익사 사건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 두 달 뒤인 2020년 12월, 경기 일산 서부경찰서에서 사건 재수사가 진행됐다. 이때 두 차례 시도했던 살인미수도 수사에 포함됐다. 2012년 12월 일산 서부경찰서는 이들을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불구속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에서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 사건은 다시 이은해와 조현수의 거주지인 인천지검으로 인계됐다. 그리고 2021년 2월부터 11월까지 세 번의 현장검증, 관련자 조사, 주거지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들이 수집됐다. “복어 피를 이만큼 넣었는데 왜 안 죽지?”라는 내용의 메시지도 이때 발견된 것. 궁지에 몰린 이은해와 조현수는 종적을 감췄고, 지명수배 끝에 검거됐다.
사건의 내막이 알려지기까지 걸린 시간 2년 10개월. 초기 수사의 미흡함과 신속하지 못했던 검거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년 전 의정부지검에서 사건을 단순변사로 종결했던 안미현 검사는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올려 유족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안 검사는 자신의 SNS에 “저의 무능함으로 인해 피해자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묻힐 뻔했다”며 “계곡 살인 사건 관련해 경찰의 내사 종결 의견에 대해 의견대로 내사 종결을 지휘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당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진술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서류에 매몰돼 경찰의 내사 종결 의견대로 처리하라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고 말았다”며 “피해자분과 유족분들께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을 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결혼만 몇 번째?” 잇따른 이은해 과거 폭로
이은해의 만행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이 씨의 과거를 폭로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해 SNS에서 확산하는 주장을 종합하면, 이은해는 윤 씨 외에 다른 남성들과 수차례 결혼한 이력이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된 ‘이은해 2016년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이은해로 추정되는 인물이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사진이 첨부됐다. 사진과 함께 결혼식 직후 이은해에게 동거남이 있다는 사실이 발각돼 파혼했다는 내용의 글이 담겼다. 앞서 2015년 11월 다른 남성과도 결혼식 직후 파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이은해와 결혼식을 올린 남성의 친구라고 주장한 글쓴이는 “제 친구는 결혼을 원했지만 친구나 가족들이 보기에는 이 씨에게 수상한 점이 많았다”며 “이 씨 부모님이 바쁘다는 핑계로 상견례도 못 하고 결혼식까지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랑 측이 사설탐정 같은 사람을 고용해 알아본 결과 신부 측 부모님과 하객들이 거의 다 대행 아르바이트였다”며 “신랑 측에서 파혼을 진행하게 됐고, 제 친구는 아직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2011년 1월 이은해가 딸을 출산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한편 살인·살인미수·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를 받는 이은해와 조현수는 체포 3일 만인 4월 19일 검찰에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