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대실하고 쉴까? 기념일인데 모텔 말고 호텔 가자” 11주년을 맞은 커플의 대화다. 장기간 연애를 이어온 커플을 연기하는 이 콩트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 유튜브 채널 <숏박스>의 ‘장기연애’ 이야기다. 음식점에 마주 앉은 한 커플이 각자 스마트폰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이어간다. 언뜻 보기엔 약간의 애정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긴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단단한 의리가 느껴진다. 곧 생리를 시작할 거 같다는 여자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가방을 열어 생리대와 생리통 완화약을 꺼내는 남자친구, 10주년 기념일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친구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웃어 보이는 여자친구의 모습은 무뚝뚝하지만 다정하다. 해당 콘텐츠는 말 그대로 ‘떡상’했다. 조회 수 620만을 넘긴 것은 물론 모든 시리즈가 SNS상에 확산하면서 재미있다고 입소문을 탔다. 네티즌은 “알고 보면 익숙한 게 진짜 행복이더라”, “권태기인 줄 알았는데 다 챙겨주네”, “설렘이 없지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반응한다.
유튜브 채널 <숏박스>는 코미디언 김원훈, 조진세, 엄지윤이 이끌고 있다. 각각 KBS 30기, 31기, 32기 공채 출신이다. KBS 간판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이후 유튜브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영상의 기획과 편집부터 출연까지 김원훈과 조진세가 직접 도맡고 있으며, 홍일점인 객원 멤버 엄지윤이 영상 출연으로 힘을 보탠다. 이들의 의기투합은 회의 도중 이뤄진 상황극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대박 콘텐츠인 ‘장기연애’ 시리즈가 탄생했고, 채널을 개설한 지 반년 만에 유튜브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하면서 대세 반열에 올랐다.
인기 비결은 공감을 자아내는 디테일이다. 친구, 남매, 연인, 직장 상사 등 일반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일화를 콘텐츠에 녹여낸다. ‘장기연애’ 시리즈 이외에도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경차를 사기 위해 딜러를 만났다가 꾐에 넘어가 수억대 람보르기니를 구입한 일화, 현실 남매 등 일상에 밀접한 소재를 콘텐츠화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상황에 유머를 한 스푼 더한 것이 <숏박스>의 매력이다.
지난해를 뜨겁게 달군 ‘카페 사장 최준’, ‘매드몬스터’, ‘한사랑 산악회’, ‘재벌 3세 이호창’의 바통을 이어 받은 <숏박스>. 오로지 콘텐츠 완성도로 승부를 본다. 자극적인 요소 없이도 성공적인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 것이다.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는 게 <숏박스>의 목표다.
N차 관람을 부르는 <숏박스> 콘텐츠 4
-
‘장기연애’ 편
11년 차 커플의 일상을 그린다. 겉으론 무심해 보이지만 오가는 대화 속에 다정함이 묻어난다.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관전 포인트.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배달시키는 개인플레이를 이어가면서도 떡볶이에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중국 당면 추가를 빼놓지 않는 섬세함,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여자친구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지기까지 군말 없이 셔터를 누르는 남자친구의 모습에서 이 커플이 장수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
‘헌팅’ 편
술집을 찾은 두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성들을 발견하고 헌팅을 시도 한다. “(여성들이 앉은 테이블에) 가기만 하면 100%인데…”라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뽐내지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여성들의 미모를 확인하고자 화장실에 가는 척 연기하는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다.
-
‘미용실’ 편
마감이 임박한 시간에 미용실을 찾은 남자와 디자이너, 미용실 스태프의 현실 고증이 돋보이는 콘텐츠다. 손님이 원하는 머리 사진을 보여주자 “이렇게 안 돼요”라고 말을 자르는 디자이너는 흡사 “이 머리는 고데기예요”라는 미용실 단골 멘트를 연상케 한다. 스타일링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 손님은 밖에 나서자마자 모자를 눌러쓴다.
-
‘찐남매’ 편
서로를 향한 디스전이 이어진다. 비속어를 섞지 않으면 한 문장도 완성되지 않는다. 여느 남매와 다를 바 없다. 민낯에 머리를 질끈 묶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누나, 그런 누나를 향해 인상을 찌푸리는 남동생의 이야기다. 서로를 헐뜯지만 다정함은 잃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충전하던 남동생은 배터리가 7% 남았다는 누나의 말에 조용히 충전기를 양보하고 샤워 순서를 두고 전쟁을 벌이다가도 누나가 먼저 씻을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