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하는 꽃놀이를 가본 적이 없다. 흥미가 없을뿐더러 인파에 파묻히는 건 상상만으로도 지친다. 이따금씩 생각나는 여의도 한강공원도 봄에는 찾지 않는다. 사람들 속에서 어떤 것도 느낄 자신이 없어서다. 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결코 아니다. 거리를 거닐다가 꽃집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긴다. 가장 좋아하는 선물도 꽃이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야기하자면 봄은 로맨틱한 계절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길가에 핀 꽃을 바라보며 기분을 전환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좀처럼 가시지 않을 것 같았던 추위가 꺾였다. 앙상했던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푸른 잎이 돋아날 준비를 한다. 곧 꽃이 피어나겠지.
사람 많은 곳이 질색인 나에게 나름의 꽃구경 법(?)이 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게 그것이다. 차창 너머로 흩날리는 벚꽃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안락하다. 나를 못살게 굴던 크고 작은 고민이 별게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봄의 힘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 봄철 꽃 명소는 수인분당선 정자역 버스정류장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자역에서 미금역으로 가는 방향의 정류장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자역 3번과 4번 출구 사이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n번의 봄을 이곳에서 느꼈다. 학교로 향하는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치는 짧은 순간에 봄의 기운을 만끽했다. 그 시절, 나에게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였다. 벚꽃이 가장 예쁠 때는 책 속에 얼굴을 파묻어야 했고 중간고사가 끝나면 꽃잎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학계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정자역 버스정류장이 있어 매해
꽃구경을 거르지 않았다. 시험 기간이라는 고문 속에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 마법에 걸려도, 정자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들리면 안간힘을 다해 눈을 떴다. 그만큼 아름답고 풍성한 벚꽃나무를 본 적이 없다.
예찬하고 있지만 한 번도 버스에서 내려 만끽하진 않았다. 매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속도로 피고 지기를 반복하니까. 차창 너머로 느꼈던 감상을 그대로 두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나만 아는 벚꽃 명소’라는 에디터 칼럼의 주제를 듣자마자 이곳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통학 버스에 몸을 실어볼까 생각했다. 결론은 기억에 남겨두기로 했지만 말이다. (지금에 비해) 소박하고 순수했던 대학생 시절의 감성과 지금의 감성이 일치하지 않을까 봐 조금은 겁이 난다. 꼬박꼬박 한 살씩 먹어가면서 머리가 덩달아 커진 게 이유라면 이유다. 이제는 애써 찾아가지 않으면 볼 일이 없는 벚꽃나무지만, 매해 봄이 오면 그곳에서 느꼈던 황홀감이 생각난다. 언제든 다시 열어봐도 좋은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