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2PM 멤버이자 배우 이준호(33세)는 10여 년 전 SBS 예능 <강심장>에 출연했을 당시 ‘인기는 계절’이라는 발언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닉쿤, 옥택연 등 다른 멤버들에 비해 활동이 다소 적은 것이 조바심이 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시 그는 21살이었다. “사계절이 흘러가듯이 각자가 각기 다른 시기에 주목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 계절은 조금 늦게 올 뿐이라 믿고 있다.”
그랬던 그가 아이돌 14년 차에 드디어 ‘자신의 계절’을 맞이했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하 <옷소매>)으로 ‘2021 MBC 연기대상’에서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거머쥔 것이다. 인생 연기라는 호평과 함께 뭘 해도 잘 풀린 행보로 ‘준호 코인’이라는 수식어까지 생겼다.
<옷소매>는 왕세손 ‘이산’(이준호 분)과 궁녀 ‘성덕임’(이세영 분)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로 강미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마지막 회가 시청률 17.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순간 최고 시청률 19.4%를 기록하며, 지난 2018년 10.5%를 기록한 <내 뒤에 테리우스> 이후 3년여 만의 MBC 두 자릿수 시청률 드라마다. MBC의 자존심을 지켜줬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극 중 이준호는 정조 이산 역을 맡았다. 이산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로 비애를 겪으면서, 자신을 위로해주는 덕임(의빈 성씨)과 애틋한 사랑을 보여줬다.
편견? 연기 잘하면 문제 될 게 없다
먼저 드라마 종영 소감부터 말해달라.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운을 느끼는 중이다. 이제야 여유가 생겨 드라마의 공식 영상들이 있는 온라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팬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게 된다. 과거에 언급한 ‘준호의 계절’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긴 시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고, 이렇게 큰 사랑을 받게 돼서 기쁘다.
이번 작품으로 MBC 드라마의 자존심을 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찬이다.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감사드린다. 멋진 이야기를 끝까지 힘 있게 끌어주셨다. 실질적으로 자존심을 세운 건 감독님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큰 상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이나 댓글이 있나?
역시 그 인물처럼 보인다고 하는 댓글인 것 같다. 행복하다. 그렇게 보이려고 오랜 시간 노력하고 준비하지 않았나. 내게는 극찬이다.
‘정조’의 세대교체와 함께 정조의 계보를 새로 썼다는 평가도 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다양한 책을 통해 공부해도 그 사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인물을 표현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책을 통해 접한 건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선이었다.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했고, 배민 정신으로 나라를 통치하면서도 스스로와 궁인들에게 엄격했던, 그러나 또 궁인들을 살갑게 챙겼던 왕이라는 정도였다. 내 성격과 닮아 있는 부분을 찾으려 노력했다. 청년부터 결혼 후, 중년까지 연기해야 했기에 눈빛과 말투, 걸음걸이, 말의 속도로 차이를 주려고 했고, 말년의 정조를 표현할 땐 온몸의 힘을 뺐다.
로맨스 사극이 주는 설렘의 크기가 일반 로맨스보다 더 큰 것 같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급하지 않다는 점! 주인공들의 동작 하나하나부터 마음을 표현하기까지의 시간이 길어서인지 연기하면서도 그 느낌이 강렬했다. 상대의 얼굴에 손을 댈 수 없었던 마음 또한 소중히 생각되더라. 실제로 로맨스 치고는 스킨십이 적었지 않나.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모습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더 애타게 만드는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궁금하다.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힘이 있는 대본을 선택한다. 개인적으로 tvN 드라마 <자백>이 그랬다. 앞으로도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사극을 다시 할지는 모르겠지만 <옷소매>도 대본이 주는 힘이 굉장했다. 재미있고 빠르게 읽혀 내려가서 마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대역인 이세영 씨와 연말 연기대상에서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연기하면서 정말 편안했다. 초반에 촬영장에서 ‘베스트커플상’만은 한번 타보자고 농담했는데 진짜 결실이 이뤄져 행복했다. 흔한 말로 케미가 잘 맞았구나, 많은 분이 사랑해주셨구나 느껴졌다.
옥택연 씨나 황찬성 씨 등 연기를 병행하는 2PM 멤버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사실 평소에는 세세하게 안부를 묻거나 연기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단체 카톡방이 있는데, ‘파이팅해라’ ‘끝나고 보자’ 식의 간단한 얘기 위주로 하는 편이다.
촬영하면서 멤버들이 보낸 커피 차와 함께 서로 주고받은 문구들이 재미있어서 화제가 됐다. 2PM이 다 같이 무대에 설 계획이 있나?
마음도 계획도 늘 있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쉽게 약속할 수가 없다. 최대한 빨리 좋은 노래, 좋은 퍼포먼스로 나오겠다.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됐을 때 보여주고 싶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은 편견과 싸워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 배우 인생 9년을 되돌아보면 어땠는지 궁금하다.
사실 나는 편견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결국 연기를 잘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프레임과 편견을 의식하지 않고, 앞으로도 잘해내고 싶다.
올해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나?
촬영하면서 운동을 못 해서 근육이 줄었다. 잃어버린 근육을 되찾고 싶다.(웃음) 일적으로는 글쎄, 잘 모르겠다. 이산을 비워낸 뒤에야 다음 단계를 깊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공식 스케줄은 팬 미팅이다. 이준호라는 사람과 편안하게 호흡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덧붙이자면 지난해 너무 큰 사랑을 받았고, 이제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열심히 해왔다. ‘코인’이란 말을 해주셨는데 좋은 말이면서도 무섭기도 하다. 좋은 ‘와인’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