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드라마업계는 신선한 소재와 과감한 전개로 시청자들의 구미를 자극한 OTT가 장악했다. 0%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었던 지상파 드라마를 살린 것은 사극이었다. 가장 화제를 모은 드라마는 1월 1일 종영한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이하 <옷소매>)이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17.4%(닐슨코리아 기준)로, MBC 드라마가 6년 만에 시청률 15%의 벽을 넘은 것. 드라마 <이산>으로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정조·의빈의 로맨스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밀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선보여 ‘신 정조-의빈 로맨스’를 완성했다는 평을 받았다. 전역 후 복귀작으로 <옷소매>를 선택했던 이준호는 섬세한 연기로 배우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하고, 특유의 남성미로 ‘우리집 신드롬’을 패러디한 ‘우리궁 신드롬’이라는 유행어를 양산하며 ‘N차 전성기’를 맞았다.
KBS는 쌍둥이로 태어나 여아라는 이유로 버려졌던 아이가 오라비이자 세손의 죽음으로 남장을 해 세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연모>가 흥행하자 원칙주의 감찰 ‘남영’(유승호 분)과 생계형 밀주꾼 ‘강로서’(이혜리 분)의 로맨스를 그린 <꽃 피면 달 생각하고>를 후속작으로 편성해 사극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사극 장인’으로 통하는 유승호와 맡는 캐릭터마다 완벽한 소화력을 보여준다는 평가의 이혜리가 의기투합해 MZ세대의 사극 ‘입덕’을 유발하고 있다.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을 세운 사극의 특징은 ‘퓨전 사극’이라는 점이다. 퓨전 사극은 정사로 기록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정통 사극과 달리, 시대극을 표방하지만 다양한 스토리와 장르로 변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나 인물 관계가 스토리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MZ세대와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또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주인공 캐릭터도 주목할 만하다. <옷소매>의 ‘성덕임’(이세영 분)은 왕을 연모하면서도 “스스로를 잃을까 두렵다”며 후궁이 되길 거절하고 왕에게 직언을 하며 조력자 역할을 한다. 또 tvN <어서와 조이>의 ‘김조이’(김혜윤 분)는 원하지 않는 결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혼을 결심했다.
정통 사극도 부활했다. 5년 만에 돌아온 KBS의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은 강력한 서사를 지닌 이방원의 모습을 조명해 정통 사극에 목마른 시청자를 겨냥했다. 첫 방송부터 시청률 8.7%를 기록하며 KBS 대하 사극 전성기를 재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외 각 방송사에서 올해 사극 방영을 예정하고 있다. 이준과 장혁이 만난 KBS <붉은 단심>, 박형식과 전소니가 활약할 tvN <청춘이여 월담하라>가 전파를 탈 전망이다. 또 김혜수가 tvN <슈룹>의 출연을 검토한다는 소식도 전해지며 당분간 드라마업계의 사극 열풍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레전드 퓨전 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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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홍천기>
<성균관 스캔들> <해를 품은 달>의 원작자인 정은궐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신령한 힘을 가진 여화공 ‘홍천기’(김유정 분)와 하늘의 별자리를 읽는 붉은 눈의 남자 ‘하람’(안효섭 분)의 운명적인 로맨스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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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백일의 낭군님>
조선시대 노처녀 ‘홍심’(남지현 분)을 만난 노총각 왕세자 ‘이율’(도경수 분)의 로맨스극. 금수저 끝판왕이었던 이율이 하루아침에 백성들 사이에 섞여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남정네’가 돼 벌이는 사건사고가 재미를 유발한다. 순천 낙안읍성, 용인 대장금파크, 남원 광한루원, 문경새재, 안성 팜랜드 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촬영한 아름다운 영상미를 느끼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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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신입사관 구해령>
조선의 첫 문제적 여사 ‘구해령’(신세경 분)과 반전 모태 솔로 왕자 ‘이림’(차은우 분)의 로맨스 드라마. 집안에서 정해준 정혼자와의 혼롓날 족두리를 쓴 채 여사 별시장으로 내달려 여사가 된 구해령의 주체적인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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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철인왕후>
청와대 셰프 ‘장봉환’(최진혁 분)의 영혼이 조선시대 왕비 ‘김소용’(신혜선 분)의 몸에 깃들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만렙 쇼윈도 부부로 거듭나는 소용과 철종(김정현 분)의 ‘꽁냥꽁냥’ 로맨스가 보는 이들의 흥미를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