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함께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시간을 자주 갖기로 했다. 가족과 대화하거나 식사하면서도 스마트 기기를 손에서 놓지 않거나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스마트 기기에 시선이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주안이가 4학년이 되는 시기이기도 해 공부 습관에 변화를 줘야겠다 생각했고, 같이 앉아 공부하고 휴식하고 노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돼 노력해보기로 약속했다.
아내가 인터넷에서 주안이의 수준에 맞는 수학과 영어 문제를 찾아 함께 풀기로 했다. 주안이는 영어는 엄마와, 수학은 나와 함께 풀었다. 오후 7시에 시작했던 우리 가족의 스터디 프로젝트는 오후 9시 20분이 넘어서야 끝났다. 생각보다 더 집중했고, 2~3문제 풀 때마다 칭찬하고 감동하는 시간도 가지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주안이가 문제를 푸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머릿속으로 함께 풀었는데, 주안이의 방식이 나와 다르지만 탁월하고 신기해 감탄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배웠던 계산법과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계산법이 달랐다. 오히려 주안이는 내가 하는 셈법을 신기해했다.
주안이가 공부할 때 옆에서 지켜보는 것보다 주안이 스스로 하도록 하고, 또 엄마와 아빠는 각자 공부하거나 독서 시간을 갖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후 우리 가족은 함께 앉아 공부하는 시간을 자주 갖고 있다. 이 시간은 주안이뿐만 아니라 나한테도 좋은 변화로 다가왔다. 조금 귀찮거나 미뤄왔던 것들을 능동적으로 하게 됐고, 좋은 기운이 가족 사이에 퍼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주안이도 처음 시작할 때만 “조금만 쉬었다가 하면 어떨까?”라고 말할 뿐이지 막상 시작하면 자신이 할 일을 다 할 때까지 집중한다. 꽤 자주 우리 부부보다 더 오랫동안 앉아 있는다. 연필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책에 집중하고 중얼중얼거리면서 공책에 뭔가를 쓰고, 다른 책도 찾아본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예전에 아버지께서 “고민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건지 아니?”라고 물으셨던 게 생각났다. 당시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이젠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아무 걱정도 고민도 없이 공부만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도 주안이에게 “주안아! 지금 이렇게 고민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건지 아니?”라고 물었다. 주안이는 “아빠, 응”이라고 답하더니 할 일을 한다. 자기 생각을 친절하게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던 어린이의 느낌이 아니라, 할 말은 있지만 꾹 참고 ‘아빠의 이야기에 동의해드릴게요’라는 속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어느새 주안이가 이만큼 자랐구나 싶었다. 아들과 시작한 가족의 새로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이 계획을 잘 지키며 이어가고 싶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