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정도가 지나치면 모자란 것과 같다고 했다. 약속에 파묻힌 내 삶이 그렇다.
2021년은 만남으로 채운 한 해였다. 책상 서랍에 두둑하게 쌓인 명함을 볼 때면 어찌 됐든 잘 살아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어디 일뿐일까? 만나자는 말로 그쳤던 지인들과의 약속도 틈틈이 지켰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동창과 눈물의 재회를 했고, 6년 전 배낭여행에서 알게 된 귀한 인연과 추억을 소환했다. 심지어 학창 시절에 겸상 한 번 해본 적 없던 대학 후배도 만났다. 온갖 사람을 다 만난다고 SNS에 전시하자 곳곳에서 연락이 왔고 예스맨의 마음으로 모든 약속을 수락했다. 친구들은 ‘알고 보니 슈퍼 인싸’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애인은 일과 약속을 병행하는 나의 체력에 연일 감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MBTI(성격유형 지표)에서 높은 점수로 I(Introversion, 내향)형을 진단받은 인간이다. 내면을 돌보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과부하에 걸리고 만다는 그 유형. 남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확했다. 사람과 사랑, 행복과 활기를 찾았지만 때때로 헛헛한 기분에 사로잡혔으니까 말이다. 대체로 삼킬 수 있는 정도의 공허함을 느꼈지만 때때로 마음이 센티하다 못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약속 장소에서 실컷 웃어놓고 집으로 가는 길에 눈물을 훔치는 하극상까지 벌어졌다. 어딘가 모르게 단단히 고장이 난 게 분명했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헤아려봤다. 매달 잡지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기를 반복하고, 마감으로부터 자유로운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출퇴근 시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길어진 고민에 비해 답은 심플했다. 이제는 자의로 혼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착각 버리기다. 약속이 없으면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착각 말이다. 누군가 내 곁을 떠나서 혼자가 된 게 아니라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시간을 만든 거란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귀하게 얻은 나의 시간만큼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기로 했다. 채우기 위해 애쓰는 건 일로도 충분하다는 자가 진단을 내렸다. 일종의 자유 선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남들에겐 한도 없는 친절을 베풀면서 자신에겐 냉철하고 엄격했던 지난날에 충분히 미안함을 가지기로 했다. 닥치는 대로 타인을 만나면서 왜 나와 만날 시간은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다소 진부한 문장을 이토록 뼈아프게 느꼈던 적이 없다. ‘프로참석러’를 자처했던 나는 이제 ‘약간의 불참러’가 되겠다. 그럼에도 섭섭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열 번의 약속에서 선보였던 텐션을 한 번에 몰아넣겠다. 이전보다 튼튼하고 맑은 마음으로 돌아오리라. 기대하시라!
의식의 흐름대로
나는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기로 정했다.
존경해 마지않는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강하되, 그러나 그 삶을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아주 떠나지는 못한 채, 그러나 수시로 떠나 수시로 되돌아오는 것일진대,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한 번 물으면 어느새 비가 내리고,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두 번 물으면 어느새 눈이 내리고, 그사이로 빠르게 혹은 느릿느릿 캘린더가 한 장씩 넘어가버리고….”(<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떠나면서 되돌아오면서’ 중)
인생이 그렇다. 그렇게 가버린다. 진짜 가버렸다. 2022년이란다. 지난해는 집구석에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마스크에 숨 막혀한 기억밖에 없는데 어느덧 한 살을 지긋이 잡숫고, 새해를 맞았다. 세상에나.
문득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다. 참 열심히도 살았다. 방송사에서 인증한 ‘특종의 여왕’이라는, 하등 인생에 필요 없는 훈장까지 달았으나…. 솔직히 뭘 그리 열심히 살았나 싶다. 그래도 위안해보면 이후 내 인생에서 또 어떤 것에 이렇게 미칠 수 있을까? 물음표다.
‘2022년 계획’을 에디터 스토리에 쓰라는 ‘통보’를 받았다. 없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녀석이라는 걸 안 뒤로는 내 삶에서 계획 따위 없다. 바람이 있다면 그저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푸르르게 건강하게 말이다. 그러려면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태어난 김에 사는 (존경해 마지않는) 기안84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살아야 한다. 하고 싶은 거 하며 말이다. 그렇게 나는 2022년을 ‘본능에 충실한 삶’, ‘정신 건강을 챙기는 해’로 정했다.
내 정신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연 자연이다. 내가 한강을 좋아하고, 요가를 좋아하고, 동남아의 강줄기 옆 카페와 유럽의 시골 마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연 때문이다. 정신이 피폐해졌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자연으로 들어간다. 지난해엔 여행을 가지 못했다. 사방팔방에서 나를 흔들어댈 때면 집착하듯 한강을 걸었고 요가를 했다. 아, 나마스테.
내가 하노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곳 사람들은 자연과 어우러져 살기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을 안다. 자연 아래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걸 잘 안다. 강 옆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청춘 커플들을 보면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노이는 아침이 활기차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싸리비로 집 앞을 쓸고, 카페 주인은 모닝커피를 내린다. 강은 여전히 졸졸 흐른다. 새소리와 싸리비의 컬래버레이션 소리는 어쩜 그렇게 낭만적일까? 이런 자연은 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나의 정신을 다독여준다. 그런 자연이 사무치게, 절실하게 그리운 요즘이다.
올해는 더욱더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 정신 건강에 그만한 게 어디 있으랴. 하고 싶은 거 ‘그냥’ 한번 해보고, 하기 싫은 거 ‘그냥’ 한번 안 해볼란다. 그럼에도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기에. 지금이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