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하면 떠오르는 뻔한 캐릭터들이 있다. 부패한 정치인, 정치인이 되려는 검사, 그 검사와 상부상조하는 기업인과 언론. 만일 내가 패러디 영화를 만든다면 제목은 <아수라 대 더 킹>으로 하겠다. <아수라>(2016)의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 분)와 <더 킹>(2016)의 정치 검사 ‘한강식’(정우성 분)이 대선에서 붙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먼저 인물 소개. <아수라>의 안남시장 박성배는 부동산 비리, 마약 거래, 살인 등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 이 캐릭터가 독특한 건 정치가인지 조폭인지 분간 안 가는 폭력성 때문이다. 보통 정치인 캐릭터가 권모술수를 부리고 남 이용하는 건 잘해도 제 손에 피 묻히지 않는 지능범 스타일인데 <아수라>의 박성배는 경찰, 검찰, 조폭 등 등장인물을 통틀어 가장 살기등등하다. 이 영화가 컬트로 자리 잡은 건 광기와 잔혹성이 폭발하는 후반부 때문이다. 일은 꼬이고,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경찰과 검찰이 시장을 노린다. 앞길을 가로막는 건 다 때려 부숴야 속이 시원한 그는 눈이 뒤집히고 만다. 그 결과 수십 명의 사람이 뒤엉켜 죽이고 죽는 유혈이 낭자한 액션 신이 펼쳐진다. 정치인이니 검찰이니 경찰이니 하는 신분은 무의미해진다. 기득권과 공권력을 향한 “뒤에서 나쁜 짓 할 거면 계급장 떼고 막 나가든가”라는 역정, ‘세상이 다 같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다’는 재난 영화 애호가의 심리 같은 것들이 창작 과정에 발동한 것 같다. 말 그대로 아수라다.
<더 킹>의 전략부 검사 한강식은 ‘킹 메이커’다. 정확히는 ‘킹(왕)’을 만들기보다 맘에 안 드는 놈, 나한테 득이 안 될 놈을 제거하는 데 능하다. 각계 인사들의 비리 정보를 수집해놨다가 필요하면 스토리를 짜서 터뜨리는 식이다. 대통령은 기간제 선출직일 뿐이지만 자신은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니 왕보다 낫다고 그는 진심으로 믿는 듯하다. 한강식은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역사야. 이 나라고.” 검찰 카르텔의 중심에 군림하면서 돈 있고 힘 있고 나한테 득이 되는 인물의 죄는 철저히 덮어준다. 그걸로 비자금을 만들고 아내 명의로 빼돌리는 알뜰함도 잊지 않는다.
<아수라 대 더 킹>의 결말이라면 역시 저세상 결말로 유명한 <아수라>를 따라야 한다. 장애물은 닥치는 대로 밀어버리는 불도저와 공작 전문가가 국회에서 만나 서로 약 올리는 과정에 온갖 정치인의 비리가 폭로되고 다들 욱해서 몸싸움을 벌이다가 전멸해 새 정치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전체 관람가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면 거짓말 못 하는 저주에 걸린 <정직한 후보>의 ‘주상숙’(라미란 분)이 등장해 “솔직히 내 당, 네 당을 떠나서 너희 다 나빠!”라고 소리치는 결말도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절대 현실 정치에서 영감받은 글이 아니다. 아무렴,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그런데 우연히도 쓰고 보니 선거철이라 <더 킹>의 교훈적 대사로 글을 맺는다. “내가 당선되었냐고? 그건 나도 궁금하다. 왜냐하면 그건 당신(유권자)이 결정할 일이니까. 당신이 이 세상의 왕이니까.”
긴장감 100%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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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운범’(설경구 분)과 존재도 이름도 숨겨진 선거 전략가 ‘창대’(이선균 분)가 치열한 선거판에 뛰어들며 시작되는 드라마. 제70회 칸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불한당>을 연출한 변성현 감독과 제작진이 의기투합해 감각적인 미장센을 보여준다.
1월 개봉. -
<특송>
성공률 100%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박소담 분)가 예기치 못한 배송 사고에 휘말리면서 깡패로 투잡을 뛰는 극악무도한 경찰 ‘경필’(송새벽 분)과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인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일촉즉발의 긴장감으로 아드레날린을 선사한다고. 1월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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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도깨비 깃발>
차별화된 스토리와 압도적 규모의 액션,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두 번째 시리즈다. 강하늘, 한효주, 이광수, 권상우, 채수빈, 오세훈 등이 출연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 보물의 주인이 되기 위해 바다로 모인 해적들의 스펙터클한 모험을 그린다. 1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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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출처 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으며 독보적인 검거 실적을 자랑하는 광수대 에이스 ‘강윤’(조진웅 분)과 그를 비밀리에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된 원칙주의자 경찰 ‘민재’(최우식 분)의 위험한 수사를 그린다. 감시하는 경찰과 감시당하는 경찰 사이의 쫀쫀한 긴장감이 관전 포인트. 1월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