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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치맛바람

남성복에 치맛바람이 불고 있다. 이런 경향은 단순히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앞으로 남성복 매장에서 더 마음에 드는 치마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On December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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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남성용 스커트를 선보여온 톰 브라운의 2021 F/W 컬렉션.

지속적으로 남성용 스커트를 선보여온 톰 브라운의 2021 F/W 컬렉션.

  • 지속적으로 남성용 스커트를 선보여온 톰 브라운의 2021 F/W 컬렉션. 지속적으로 남성용 스커트를 선보여온 톰 브라운의 2021 F/W 컬렉션.
  • 톰 브라운의 카디건과 화이트 롱스커트를 입은 농구 선수 러셀 웨스트브룩. 톰 브라운의 카디건과 화이트 롱스커트를 입은 농구 선수 러셀 웨스트브룩.
  • Louis VuittonLouis Vuitton
  • 이번 시즌에는 셀린느도 맨즈 컬렉션에서 머트를 선보였다.이번 시즌에는 셀린느도 맨즈 컬렉션에서 머트를 선보였다.
  • Louis VuittonLouis Vuitton

필자는 여자지만 치마를 잘 입지 않고 보이시하거나 매니시한 옷을 즐겨 입는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렇다. 당장 눈길을 끄는 장식보다는 소재나 패턴 등 기본에 충실한 남성복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치마를 차려입으면 어쩐지 중년 여성은 어때야 한다는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는 기분이 들어 갑갑함을 느낀다. 물론 개인적인 기분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왜 바지만 입고 다니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내키는 대로 입을 ‘자유’가 있고, 여자가 바지를 입는 건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100여 년 전에 태어났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1920년대에 여자들이 처음으로 바지를 입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소란이 야기됐다. 바지를 즐겨 입는 여성은 사회에서 위협적인 존재로 치부됐다. 인간이 얼마나 관습에 굴복하는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젠더리스(Genderless)’, ‘젠더뉴트럴(Gender-neutral)’,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젠더인클루시브(Gender-inclusive)’, ‘젠더프리(Gender-free)’…. 모두 전통적인 남녀의 경계를 허무는 트렌드를 뜻하는 용어다. 최근에는 ‘King’과 ‘Queen’을 합친 ‘Kueeng’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용어가 다양한 만큼 문화·예술 전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고 성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교양 같은 느낌이다. 예를 들면 스웨덴은 이미 2012년부터 ‘그(He)’와 ‘그녀(She)’ 대신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신규 대명사 ‘Hen’을 사용했고, 영국은 2017년부터 대중교통 안내 방송에 ‘신사 숙녀(Ladies and Gentleman)’ 대신 ‘여러분(Everyone)’을 사용했다. 이런 경향은 사회 곳곳과 문화 각 분야에 스며들고 진화해 이제는 남자들도 원한다면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치마를 입을 수 있다는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왜 굳이 남자가 치마를 입어야 하나? “편하기 때문에 원피스를 입어요. 꽃무늬 원피스보다 편안한 옷은 세상에 없어요.” 스타일 아이콘이자 그룹 <너바나>의 리드 싱어였던 커트 코베인은 1991년부터 뮤직비디오와 무대에 종종 원피스를 입고 나왔는데, 자신이 ‘여성용이라고 규정된’ 옷을 입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쿨하게 설명했다. 2021년 봄, 뮤지션이자 배우인 키드 커디는 선구자 커트 코베인을 오마주하며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3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현재 남성용 치마는 어떤 이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존재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미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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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F/W 로에베 맨즈 컬렉션에서 선보인 남성용 스커트.

2021 F/W 로에베 맨즈 컬렉션에서 선보인 남성용 스커트.

  • 2021 F/W 로에베 맨즈 컬렉션에서 선보인 남성용 스커트.2021 F/W 로에베 맨즈 컬렉션에서 선보인 남성용 스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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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 스타일스는 성별에 대한 경계를 가장 빠르게 허문 젠지(GenZ)세대의 대표 주자다. 해리 스타일스는 성별에 대한 경계를 가장 빠르게 허문 젠지(GenZ)세대의 대표 주자다.
  • 해리스 리드(Harris Reed)의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2020년 12월 미국 <보그>의 표지 모델을 장식한 해리 스타일스.해리스 리드(Harris Reed)의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2020년 12월 미국 <보그>의 표지 모델을 장식한 해리 스타일스.
  • TV 프로그램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뮤지션 겸 배우 키드 커디. TV 프로그램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뮤지션 겸 배우 키드 커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경계를 가장 빠르게 허문 이들은 역시 젠지(GenZ) 세대다. 1995년 이후 출생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라난 이들은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세대보다 다양성과 남과 다른 개성을 중요시한다. 가수 겸 배우 해리 스타일스가 좋은 예다. 해리 스타일스는 영국 신예 디자이너 해리스 리드의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2020년 12월 미국 <보그>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미국 <보그> 역사상 최초의 남자 표지 모델이었다.

이미 1980년대에 치마를 입고 남녀 성별의 경계를 허문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세상을 전복하고 싶은 ‘악동’이었다면, 젠지 세대인 키드 커디나 해리 스타일스를 비롯해 현재의 패션 아이콘인 포스트 말론, 영블러드, 릴 나스 엑스 등이 치마를 입는 것은 조금 더 개인 취향에 가까워 보인다. 키가 2m 안팎인 NBA 농구 선수들 사이에서도 치마가 유행한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평소에도 옷 잘 입기로 유명한 유타 재즈의 가드 조던 클락슨은 체크 스커트에 나이키 덩크 슈즈를 믹스매치하고, 워싱턴 위저즈의 가드인 러셀 웨스트브룩은 톰 브라운의 카디건과 화이트 롱스커트를 입은 ‘퇴근 룩’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LA 클리퍼스의 포워드 세르지 이바카는 2019년에 치마를 입고 톰 브라운 쇼에 참석하기도!

치마를 입어보고 싶은 남성의 선택지는 꽤 넓어졌다. 우선 명칭부터 새롭게 생겼다. 남성용 스커트는 ‘머트(Mirt, Man+Skirt)’라고 부르고, 길이가 아주 짧은 것은 ‘스코트(Skort, Shorts+Skirt)’라고 한다. 2021 F/W 시즌 트렌드는 무릎 길이의 미디부터 좀 더 긴 맥시 길이의 플리츠 스타일이다. 머트를 쇼핑하고 싶다면 지속적으로 남성용 스커트를 선보여온 톰 브라운이 1순위다. 키드 커디가 <SNL>에서 입은 꽃무늬 원피스는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오프화이트 제품이었고, 버질 아블로가 아티스틱 디렉터로 몸담고 있는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에서도 랩스커트나 타탄체크 킬트 스커트 등 다양한 머트를 선보이고 있다. 루이 비통 코리아에서도 바잉해 국내 매장에서도 구입 가능하다.

이 밖에도 버버리, 셀린느, 로에베에서 머트 쇼핑이 가능하며, 조금 더 스트리트로 내려오면 뉴욕의 대표적 젠더프리 브랜드인 더 플루이드 프로젝트, 아베크롬비앤피치, 마크 제이콥스의 폴리섹슈얼 캡슐 컬렉션인 헤븐 등에서 다양한 머트와 스코트를 만나볼 수 있다. 남성용 스커트 트렌드는 2022 S/S 시즌으로 계속 이어진다. 프라다 맨즈 2022 S/S 컬렉션에는 여자라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짧은 마이크로 미니 스코트가 대거 등장했다. 사실은 핫팬츠 위에 같은 색 천을 덧댄 것이지만 남성들이 숨겨온 각선미를 맘껏 뽐낼 수 있는 아이템이다.

‘남성답다’, ‘남성답지 못하다’, ‘여성스럽다’, ‘여성스럽지 않다’ 등 수많은 고정관념은 누가 규정한 것인가? 다양성과 개인의 자유에 위배되는 세상의 모든 고정관념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고 있다. 남성이 치마를 입는 것은 더 이상 성 소수자의 특이한 행동이 아니며, 성별에 맞는 드레스 코드나 규칙을 규정하는 것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다시 질문을 해본다. 플라워 프린트, 시폰 소재, 레이스, 러플로 장식된 옷과 스커트는 남성의 옷장에 있어야 할까, 여성의 옷장에 있어야 할까? 

CREDIT INFO
에디터
정소나
명수진(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쇼비트, 인스타그램
2021년 12월호
2021년 12월호
에디터
정소나
명수진(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쇼비트,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