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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의 품격

밴드 ‘자우림’의 김윤아가 3년 만에 11번째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다. 팬데믹이 일상을 뒤집어놓은 엉망진창의 순간에 그녀는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On November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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숄더 커팅 디테일로 포인트를 준 블랙 니트 카디건 유즈.

톨스토이는 예술의 목적을 사람과 사회의 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예술일수록 그 힘이 막강한데, 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 전파력이 크고 빠르다. 그 때문에 음악은 선동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고 때로는 다수에게 용기와 인내, 위로를 주는 동반자가 되기도 했다. 밴드 ‘자우림’의 음악에는 위로와 치유가 있다.

1997년 ‘헤이 헤이 헤이’로 데뷔한 이후 ‘매직 카펫 라이드’ ‘일탈’ ‘하하하쏭’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으로 25년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자우림은 11월 26일 정규 앨범 11집 <영원한 사랑>으로 또 한 번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질 예정이다. 그 중심에는 대체 불가능한 감성과 매력적인 음색으로 ‘무대 위의 교주’로 불리는 김윤아가 있다.

“지난해 1월 발매를 목표로 만들었던 음악을 이제 공개하게 됐어요. 어두운 분위기의 곡이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발매를 미뤘거든요. 음악적 분위기는 어둡지만 메시지는 희망적이에요. 살아간다는 것과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과 인생은 한 번뿐이니 오늘을 후회하지 말고 살자는 내용을 담았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인 김윤아의 음악엔 시나 수필의 한 구절처럼 서정적 감정이 녹아 있다.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스물다섯, 스물하나’)”와 같이 김윤아는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들을 아름답게 음악에 녹여낸다. 그녀는 모든 순간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 음악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경험하는 모든 일이 음악의 영감이 돼요.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면 영감은 어디에나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는 음악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에요.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일들이에요. 성공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 등 모든 것이 결국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찾기 위해 생겨나는 것들이죠.”

김윤아는 오랫동안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건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앨범 한 장을 만들 때마다 힘들지만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과정이 즐겁다. 마음대로 쉬이 되지 않는 퍼즐을 맞추고 나면 그동안의 수면 부족과 피로 누적 등 고통스러웠던 과정이 말끔히 잊힌다고.

“하나의 앨범은 구성도를 그려서 하나씩 쌓아가는 과정이에요. 그런데 결과물을 보면 대다수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구성도와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또 그 결과물이 괜찮을 때가 있어요. 처음 의도와 다르게 새로운 퍼즐이 완성돼도 결과물이 좋기만 하다면 완연한 만족감을 느껴요. 그게 음악 활동을 계속하는 묘미인 것 같아요.”

김윤아는 사람들이 자우림의 음악을 듣고 다양한 해석을 하길 바란다. 어떤 예술이든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그를 보는 재미가 있단다. 특히 나와 대중이 통했다는 느낌이 드는 반응을 볼 때 기분이 좋다고.

“예전에 어떤 분이 ‘내 마음속 문장들을 가사로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나의 마음을 그분이 알고 이해했다는 생각에 소름 끼치게 좋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음악은 소통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또 음악을 하면서 저 역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치유돼요. 어떨 땐 노래를 만들고 공연하면서 제 생각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운이 좋아서 가수가 됐는데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어서 매일 감사해요.”

김윤아는 자우림 데뷔 앨범부터 꾸준히 사회문제를 노래에 담았다. 1집에선 ‘바이올런트 바이올렛’에서 아동 학대 사건을, 2집에선 ‘낙화’로 학교 폭력을 이야기했다. 4집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에서는 미국 9·11 테러가, 8집 ‘EV1’에서는 환경문제가 소재였다. 또 9집에선 ‘디어 마더’를 통해 지나친 교육열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우리의 현실과 밀접한 소재를 주제로 삼기 때문일까? 마음이 지쳤을 때 그녀의 노래를 듣고 힘을 얻었고,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이 상당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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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무드의 벨티드 테일러드 베스트·롱스커트 모두 가브리엘리, 레더 소재가 믹스매치된 뉴스보이 캡 브라운햇, 청키한 아웃솔 디자인의 메리제인 슈즈 블랑수블랑, 루스 삭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자우림의 노래는 ‘내 마음속 문장들을 가사로 옮겨놓은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나와 그분의 마음이 통했다는 느낌이 들어 소름 끼치게 좋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음악은 소통하는 예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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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예쁘게 피트되는 랩 디자인의 저지 원피스 레트흐 드 레뚜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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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넥 디자인의 하프 슬리브 니트 톱 미스지컬렉션, 넉넉한 실루엣의 데님 팬츠 아에르, 블랙 웨스턴 부츠 블랑수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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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넥 디자인의 하프 슬리브 니트 톱 미스지컬렉션, 넉넉한 실루엣의 데님 팬츠 아에르, 블랙 웨스턴 부츠 블랑수블랑.


20대의 저는 삶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음악을 하면서 행복과 즐거움을 알고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됐어요. 되돌아보면 음악이 지금의 저를 살아 있게 만든 거죠. 음악이 없었다면 어쩌면 저는 쓸모없는 인간이 됐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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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롱 원피스·펀칭 디테일의 아이보리 하이넥 니트 풀오버·패딩 워머 모두 미스지컬렉션.

“자우림의 공연장엔 20대 여성이 많이 오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는 분들이 눈에 띄었어요. 처음엔 제가 무엇을 잘못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각박한 세상을 사는 게 힘들어서 눈물이 났던 거예요.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시대잖아요. 20대가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에요.”

김윤아는 경쟁이 당연시되는 지금의 사회는 자신이 20대를 보냈던 시절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자신의 20대를 엉망진창으로 살았다고 설명했다.

“저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일이 잘 안 되면 어때? 죽어버리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되돌아보면 음악이 저를 살아 있게 했어요. 음악이 없었다면 저는 쓸모없는 인간이 됐을 거 같아요. 음악을 하면서 행복과 즐거움을 알고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됐거든요. 그런 면에서 음악은 김윤아의 구성 요소라고 볼 수 있죠.”

그녀의 음악엔 죽음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죽지 않기 위함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니 살아 있는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원초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녀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8집 앨범 준비 당시 면역력 저하로 바이러스에 감염돼 안면마비와 청각신경 마비를 겪으면서다. 살림과 일을 병행하면서 앨범에 담길 20곡을 준비하며 무리했던 것이 원인이다. 당시 그녀는 얼굴의 반이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가 증폭돼 들려 은퇴를 고민했다.

“뇌신경 마비 때문에 고생하고 나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어요. 우리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이후 9집 앨범을 만들었는데 음악 작업 방식도 바꾸게 됐어요. 자우림은 곡을 만든 사람이 프로듀싱도 맡아요. 이전엔 제가 만든 곡이어도 다른 멤버들의 표현 방식을 존중했는데 이젠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프로듀싱하려고 해요. 다음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발레의 아름다움

김윤아에게 뮤즈를 꼽아달라고 하자 “아름다운 여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녀가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형용사는 외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케이트장을 은빛으로 수놓는 김연아 선수의 공연과 같이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보면서 만족감을 얻는다.

“아름다움을 느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저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리프레시돼요. 살다 보니 스스로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하더라고요. 저는 운동을 빼먹지 않고 하려 해요. 체력이 유지돼야 정신력도 유지되거든요. 저의 친절함과 평정심은 운동을 하면서 유지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오랫동안 필라테스를 해왔다. 다이어트보다는 척추측만증과 목 디스크로 인한 통증을 막기 위한 자세 교정의 목적이 더 컸다. 그러다 필라테스 지도자의 권유로 발레에 발을 들여놓았다. 재활 목적으로 시작한 발레의 매력에 빠져 일주일에 3번씩 발레 교습소를 찾는 우등생이 됐다. 최근 앨범을 준비하며 발레를 하지 못해 몸이 찌뿌둥하다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발레의 매력을 설명했다. 


뇌신경 마비를 앓고 나서 삶의 태도가 바뀌었어요.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다음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발레 동작이나 의상들이 어색해서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이젠 발레를 좋아하게 됐어요. 발레를 하면서 건강해졌고 정신력이 조금 더 강해졌거든요. 또 발레라는 장르를 이해하면서 세상이 더 넓어진 기분이에요. 무대 위 무용수가 왜 그 동작을 하는지, 그 동작이 왜 아름다운지 이해하니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예술의 범위가 커져서 좋아요.”

김윤아는 기혼 여성들이 자신만의 취미를 가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엄마로 사는 기혼 여성들에게 나만의 공간, 나만의 취미를 통해 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김윤아는 지난 2006년 치과의사 김형규 씨와 결혼해 이듬해인 2007년 아들을 낳았다. 결혼 후 15년간 김윤아·김형규 부부는 연예계를 대표하는 잉꼬부부로 통하고 있다. 1995년 KMTV(현 Mnet)에서 방송인으로 데뷔해 2003년 그룹 ‘킹조’로 앨범을 낸 적 있는 김형규 씨는 현재 자우림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김윤아는 남편과 함께 일하는 셈이다.

“남편은 일주일에 두 번은 치과의사로 출근하고, 그 외에 자우림의 매니지먼트 일을 보면서 집안일도 맡고 있어요. 남편과 함께 일해서 좋은 점은 신뢰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남편은 항상 자우림의 입장에서 생각해주거든요. 조금 불편한 점은 가능한 한 많은 활동을 하길 바란다는 것?(웃음) 다 자우림을 아끼는 마음에서 출발한 행동이란 걸 알아서 고맙지만 한편으론 인간 김윤아의 삶을 지키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밖에서는 지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우림의 김윤아지만, 집에서는 김윤아 역시 여느 여성들처럼 아내이자 엄마다. 천성적으로 다정함을 타고난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그녀에게 아들을 어떤 어른으로 키우고 싶냐고 묻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기만 할 수 있는 기능을 익히도록 돕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자녀가 세상의 부품이 되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상적인 이야기라 실천이 쉽진 않겠지만 부모로서 최대한 도와주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아이가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도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거든요. 아들도 즐거운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만들면서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김윤아의 또렷한 눈빛과 상냥한 미소가 사진을 찍은 것처럼 머릿속에 남았다. 사막 속의 오아시스처럼 고갈되지 않는 그녀의 에너지가 전해진 느낌이다. 늘 든든한 김윤아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CREDIT INFO
에디터
정소나(패션), 김지은(인터뷰)
사진
김외밀
스타일링
오영주(오쌩)
헤어
김주희
메이크업
김활란(뮤제네프)
2021년 12월호
2021년 12월호
에디터
정소나(패션), 김지은(인터뷰)
사진
김외밀
스타일링
오영주(오쌩)
헤어
김주희
메이크업
김활란(뮤제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