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학습', '언어능력', '자율학습 훈련' 필수
유정임(이하 유) 고교학점제는 자신의 진로나 흥미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는 취지는 좋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죠?
김동영(이하 '김') 맞아요, 아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찾고 거기에 필요한 공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바람직한데 취지만큼 잘 실행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인거죠. 이 제도가 정말 실현되겠냐고 학부모들이 질문을 많이 하는데요, 그것과는 별개로 일단 우리는 대비를 해야 하니까요. 결국 '학생이 선택하는 시간표'가 성적을 좌우하는 핵심 키워드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실 사교육 쪽은 이미 고교학점제에 대한 대비를 상당부분 진행하고 있어요. 고교학점제를 고려해 교재도 개발 중이고, 현재 초등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교에 입학했을 때 선택해야 할 과목 중 심화 과목들의 기초 수업도 이미 실시하고 있어요.
유 심화 과목의 기초 수업을 벌써부터 하고 있다는 건 심화가 그만큼 중요해진다는 의미인가요? 그렇다면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어떻게 해야 우수한 성적을 얻을 수 있을까요?
김 여러 견해가 있지만 저의 관점에서 몇 가지를 정리해보죠. 우선 심화학습에 대한 요구가 분명히 생겨날 겁니다. 고등학교에 가서 선택과목을 심화해 공부해야 대학 입시에 변별력을 갖게 되겠죠. 그 심화 학습을 소화하려면 일찌감치 기본기를 갖춰야하는데 그 기본기가 바로 언어능력입니다.
유 무슨 의미인가요?
김 여기서 말하는 언어능력이란 글을 읽으며 의미를 파악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핵심을 인지하고 그 말을 다시 재풀이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국어 학습에 대한 능력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초등 6학년이 고 3이 됐을 때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느냐는 초등 고학년의 언어능력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교육이라는 게 '콘텐츠'의 이해가 핵심인 것은 변함없습니다. 어떻게 가르치느냐, 어느 시기에 어떻게 접합시키느냐가 관건이죠.
유 요즘은 초등학교 5·6학년이 어마어마한 양의 공부를 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수학을 초등 때 끝내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아이가 영재냐고 물으면 대다수의 부모가 웃습니다. 말 그대로 유행병 같은 거니까요.
김 다들 하니까 하는 거고, 거기다가 사교육권에서도 선행학습을 조장하죠. 흔히 선행이라는 게 어지간하면 1년 교과를 3개월이면 끝냅니다. 집중적으로 가르치니까요. 그런데 중학교 1학년 아이를 초등학교 6학년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과정으로 끌고 와서 심화 내용으로 리뷰하면 50%밖에 이해 못 해요. 그냥 무작정 선행만 한 거예요. 소위 진도만 뺀 거죠.
유 고교학점제는 문·이과 통합 속에서 선택과목을 제대로 공부했는지 알기 위해 반드시 심화가 필요한데, 어느 만큼의 심화가 필요한지도 궁금해요.
김 현재는 선행학습을 자신의 학년보다 1년 정도 진도를 앞서서 공부하면 충분해요. 그런데 고교학점제가 실시된다면 그것보다 좀 더 빠른 선행이 필요하죠. 현재 1년 과정을 선행했다면 앞으로는 1.5~2년 과정 정도요. 그래야 고등학교에 가서 문·이과 통합 과목을 공부하거나 개인이 선택한 과목의 심화 수업에 무리가 없을 겁니다.
유 결국 해야 할 공부가 더 많아진다는 의미네요?
김 그렇진 않아요. 지금은 모든 과목을 다 해야 하지만 고교학점제는 자기가 선택한 과목만 '심화'하면 되니까요. 선택과 집중의 문제죠. 고교학점제는 자신이 뭘 선택하든지 간에 전체적으로 40점만 넘으면 졸업할 수 있어요. 어느 정도 기본만 갖추면 된다는 거죠. 'SKY ◯◯과'라고 못 박아서 가려면 40점으로는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고루고루 공부했다는 의미이기에 세컨드 라인의 대학은 부담 없이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반대로 최고의 대학과 과를 가려고 한다면 그 진로의 선택과목을 심화해야 하고, 그 심화의 베이스를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때는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과학 잡지를 열심히 읽었고 중학교 2학년 때 고등 심화를 위해 물리1 수업을 선행했다면, 고등학교에 입학해 물리 1·2를 선택할 때 큰 거부감은 없다는 거죠. 지금처럼 너나없이 모든 과목을 공부하는 일은 줄어듭니다.
유 심화의 기초를 공부하기 위한 언어능력, 즉 국어 공부를 따로 공부하는 초등생도 많나요?
김 사교육이 뜨거운 곳에서는 현재 초등 고학년의 국어 심화학습이 많이 이뤄지고 있어요. 이는 바른 언어생활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국어' 학습이죠. 대치동이나 목동에서 잘나가는 학원에 물으면 예전처럼 독서 논술이 아니고 그냥 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이 많다고 해요. 책을 읽으며 문장을 분석하고 주제를 찾는 수업이요. 이는 수학 문제 10개 푸는 것보다 나중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국어가 안 되면 나중에 고등학교에 입학해 수학 지문을 파악하는 것도 힘들 수 있어요.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초등 고학년에 미리 국어 학습을 해놓으면 나중에 한결 도움이 되죠.
유 국어는 그렇다 치고 수학은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나요?
김 요즘 중학교 1학년이 되면 자유학기제를 하는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때 본격적인 준비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중학교 1학년이야말로 본격적으로 수학을 해야 하는 때라는 거죠. 국어 언어능력이 확실하게 심어진 아이라면, 초등에 수학 공부도 어느 정도 했을 것이니 중학교 1학년에 본격적으로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는 겁니다. 결국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어야 문장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고, 이러한 국어 수업은 심화학습을 위한 기저 수업이 되는 겁니다. 덧붙이자면 지금은 과학고나 영재교에서만 어마어마한 양의 수학을 공부하지만, 이제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일반고를 가더라도 좀 더 심화된 수학 수업을 해내야 한다는 거죠.
유 결론적으로 초등 고학년에 언어능력을 키우는 국어 수업의 기초를 다지고, 중학교 1학년에 수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중학교 2·3학년에는 고등학교 때 선택할 진로 연관 심화 과목의 기본 수업을 시작해라, 이렇게 정리가 되네요. 이것 외에 또 뭐가 필요할까요?
중학교 때 진로 결정 유리
김 '자율학습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교학점제가 이뤄지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데요, 아이마다 각자의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는데 중간중간 비는 공강 시간을 어떻게 스스로 컨트롤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김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온종일 수업을 다 같이 듣는 시스템이죠.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도 종이 울리면 그 자리에서 수업을 듣지만, 고교학점제에서는 강압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없어요. 자신이 선택한 과목만 들으면 되니까요. 심지어 우리 학교엔 개설이 안 돼 있지만 옆 학교엔 개설된 과목을 들을 수도 있어요. 그럼 옆 학교로 이동해야 하고, 수업이 없는 비는 시간이 생기기도 하죠. 결국 자기주도학습이 훈련돼 있지 않으면 그 시간이 완전히 날아간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일주일에 하루이틀 정도는 스스로 시간표를 만들어 공부하는 방법을 연습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해요. 옥죄인 상황이 아니라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상황, 이것도 연습해야 한다는 거죠.
유 현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이면 한창 친구들과 놀고 싶고 게임하고 싶을 때인데 스스로 공부하는 자율성이라…,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김 그리고 진로 설정을 빨리 하는 것이 매우 유리할 수 있어요. 중학교 때 진로를 결정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단순하게 대입 결과를 잘 만들어보고자 한다면 늦어도 중학교 2학년이나 3학년 때는 진로에 대한 설정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등학교에 가서 선택과목을 결정할 때도 훨씬 수월할 거예요. 나중에 진로를 바꾸면 어쩌냐고 물으신다면, 오히려 그럴까 봐 미리 중학교 때 설정해보라는 거예요. 중학교 때 심화 학습의 기초를 공부해봐야만 고등학교에 가서 다른 걸 선택할 수도 있다고 보면 어떨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물리2를 선택하고 고등학교 3학년에 가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면 그야말로 이도 저도 안 되지만, 차라리 중학교 때 미리 해보고 안 맞다 싶으면 빨리 진로를 바꾸는 거죠. 조금 빠른 진로 선택이야말로 현실적인 성적을 얻고자 하는 면에서는 더 유리합니다.
유 자신의 진로에 따른 심화 과목의 선택이라는 취지는 좋습니다만, 과열된 사교육의 선행이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지 솔직히 걱정되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분명 좋은 취지의 제도 변화인 만큼 긍정적인 면을 잘 고려한다면 선진적인 교육정책임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렇게 되려면 교육 당국의 면밀한 준비가 필요해 보이긴 하네요.
고교학점제란?
학생이 공통과목을 이수한 후 자신의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이수해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하는 제도다. 학교의 수업·학사 운영이 '단위'에서 '학점'으로 전환되며, 학업 성취율과 과목 출석률에 따라 졸업이 결정된다.
김동영
(주)다선교육 대표
더학원 입시 연구소 대표
전 (주)타임교육 학원 사업 본부장
전 (주)타임 출판 대표
전 시사저널 교육 주간
전 링구아포럼 출판 고문
유정임
(주)뉴스1부산경남 대표
청소년어린이영화제 BIKY 이사
<상위 1프로 워킹맘> 저자
전 부산경남대표방송 KNN 프로듀서
전 부산영어방송 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