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20살을 지나서부터 등산의 매력에 빠졌다. 짬이 날 때마다 외국의 하얀 산으로 가서 고산병에 몸져눕거나 유명 트레일을 걸으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곤 했다. 1년 전쯤부터 암벽등반에 심취해 지방 산행을 즐겼다. 지난주에 설악산에서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고 돌아온 후 오랜만에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을 찾았다. 역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모두 한 번씩 가봤던 곳들이지만 꽤 시간이 흘러 다시 가니 또 느낌이 새로웠다. 산은 사람이 다녀야 산이고, 사람을 너그럽게 받아주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시끄러운 클럽보단 산에 가고파”(‘고백’의 가사 중)라던 힙합 듀오 ‘다이나믹 듀오’처럼 MZ세대에게 등산은 힙한 문화가 됐다. 더 이상 중년 남성만의 취미가 아닌 것이다. 꿀 같은 주말이 마무리되는 일요일, 북한산 백운대에 늘어선 행렬의 8할은 젊은이였다. 북한산성으로 들어가는 구파발 정류장에도, 우이동의 도선사 입구에도, 족두리봉을 거쳐 비봉에도 젊음의 양기가 그득했다. 산 풍경이 이런 적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북한산은 젊은이들로 만원이었다. 이런 현상에는 뜻밖에도 ‘코로나 특수’가 작용했다. 실내 모임이 어려워지자 젊은이들이 헬스클럽 대신 도시에서 가까운 산을 찾으면서 2021년 상반기 도심권 국립공원 탐방객 수가 지난해 대비 약 20% 상승했다. 등산하는 2030이 늘면서 매출 상위 4개 아웃도어 브랜드는 올 1~4월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30% 이상 늘었다. 등산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초보 등산러 맞춤 TIP
등산이 유행이라고 무턱대고 산에 올라선 안 된다. 몇 가지 기본 사항을 숙지해야 불현듯 발생하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1 기능성을 찾아라
뽀송뽀송한 이불과 부드러운 속옷의 재질로 순면만 한 것이 없지만 등산에서는 예외다. 땀으로 흠뻑 젖은 면 티셔츠에서 풍기는 악취는 로션과 샴푸, 향수로 만든 향긋한 내음을 단숨에 날려버릴 만한 위력을 지녔다. 목화솜으로 만든 면은 단위면적당 수분 함유량이 높아 땀을 잔뜩 머금기 때문. 또 빠르게 마르지 않아 저체온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젖은 옷이 등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불쾌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등산할 때는 폴리에스터라는 화학섬유로 만든 옷을 입어야 한다. 면보다 가벼운 건 둘째로 치더라도 땀이 빨리 마른다. 우리가 흔히 ‘기능성’ 티셔츠라고 부르는 옷이 대부분 이 폴리에스터 소재로 만들어진다. 더 나은 기능을 위해 폴리에스터에 양모와 같은 천연섬유를 섞어 신소재를 개발하기도 하지만 일반인이 기능성의 차이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일단 면 소재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2 신발과 배낭은 셀프
등산화는 등산의 기본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최적의 효과를 내는 만능 등산화는 없다. 사람마다 얼굴이 천차만별이듯 족형도 제각기 다른 데다 등산 마니아라 할지라도 수많은 종류의 등산화를 다 경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등산화를 처음 신는 사람이라면 발목을 잡아주는 디자인의 등산화를 추천한다. 흔히 목이 올라오는 등산화를 무거울 중(重)자를 써서 중등산화라고 한다. 특히 하산길이나 돌이 많은 너덜지대에서 발목이 접질리는 것을 막아준다. 중장거리 산행에 적합한 중등산화와 함께 가벼운 산행과 여름철 산행용으로 목이 없는 경등산화를 준비해 산행 성격에 맞게 사용하면 좋다.
사실 백화점이나 매장에서 몇 분 신어보고 내 발에 알맞은 등산화인지 알 수는 없다. 만약 어떤 등산화를 사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일단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등산화를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예쁜 등산화를 신다 보면 점차 기능성을 따지게 된다. 선 디자인, 후 기능인 셈이다. 그런데 만약 기능성부터 따져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투박한 등산화를 신었다고 치자. 싫증이 나서 금방 새로운 등산화를 찾고, 기능보다는 디자인만 보다가 허탕을 칠 수 있다. 어차피 초보자가 체감하는 등산화의 기능성은 피차일반이라서 웬만한 등산화는 컨버스나 스니커즈보다 훨씬 편안한 착용감을 보장한다.
배낭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신체 조건이 다르기에 정답이란 없다. 경험에 의하면 자루처럼 윗부분을 조이고, 헤드(뚜껑)를 덮는 형태가 여러모로 편리하다. 또한 허리 벨트가 골반 약간 위에서 허리를 감싸고 등판이 등에 밀착돼야 거북이 등딱지처럼 내 몸과 하나 된 듯한 착용감을 맛볼 수 있다.
3 물은 과하다 싶을 만큼 챙기자
운동생리학에 따르면 일상적인 활동에서 하루에 필요한 물의 양은 0.75~1L인 데 반해, 장시간 걷는 산행에서는 2~4L의 물이 필요하다. 더 정확히는 1시간에 체중 1kg당 평균적으로 약 5g의 탈수가 일어난다고 한다. 체중이 60kg인 사람이 6시간에 걸쳐 산행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1.8L의 탈수가 일어나는 것이다. 생각 이상으로 상당한 양의 수분이 손실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물을 적게 챙겨 와서 남의 물을 마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물론 달라고 하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하는 산악 환경에서는 냉정하지 않을 때 사고가 발생하곤 하며, 작은 산행에서의 사소한 습관이 큰 산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물의 양을 조절해가며 마시는 것은 등산에서 중요한 기술이다. 한 번 마실 때 효과적으로 마셔야 하며, 목이 탄다고 해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기보다 입안을 물로 헹궈가며 오물오물 마시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이런 걱정을 하지 않도록 충분한 양의 물을 챙기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물 마시는 습관을 잘 알지 못하는 초보자는 ‘이만큼 필요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챙기는 것이 좋다. 물만큼은 부족한 것보다 과한 것이 낫다. 남으면 버리면 그만이다! 다회용 물통에 물을 얼려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얼음물은 생명수 그 자체다.
물을 충분히 챙겼다면 작은 이온음료를 챙기는 것을 추천한다. 물과 이온음료 사이에 주객전도가 일어나면 안 되지만, 물로는 ‘2% 부족할 때’ 달짝지근한 이온음료를 한 모금 마시면 에너지가 생긴다.
더불어 오렌지, 배, 사과, 자두, 복숭아 같은 과일을 챙기면 좋다. 냉장고 한편에서 썩어가는 시들시들한 과일일지라도 산에 가져가서 한입 베어 물면 힘이 솟아난다. 저명한 모 원로 산악인은 ‘등산은 결국 의식주의 이동’이라고 말했다. 최대한 가벼운 것도 좋지만 초보자라면 이것저것 챙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4 3단 레이어링 시스템
레이어링 스타일은 등산할 때도 유용하다. 얇은 옷을 여러 벌 준비해서 상황에 맞게 수시로 꺼내 입고 벗는 것이 중요하다. 베이스레이어·인슐레이터·플리스·소프트셸· 하드셸 등 외국에서 들어온 용어를 익히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한 달에 한 번 서울의 낮은 산에 갈까 말까 한 초보 등산객이 이해하기엔 어려울뿐더러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스타일을 갖춰야만 산에 오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원리를 알고, 현재 가진 옷을 활용해도 괜찮다.
쉽게 말해 속옷·보온 옷·겉옷, 이렇게 3개를 챙기면 된다. 속옷은 땀을 흡수하고, 보온 옷은 몸을 따뜻하게 하며, 겉옷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선선한 가을에는 폴리에스터 소재로 만든 기능성 티셔츠 위에 폴리에스터와 면이 혼용된 보온 옷을 입고, 바람막이와 패딩 점퍼를 챙기면 좋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비상시를 대비해 가벼운 겉옷을 하나 챙기는 것이 좋다. 실용성을 떠나 심리적으로 안정되기 때문이다.
바람막이와 다운재킷(패딩)은 휴식할 때 입어야 한다. 걸으면 몸에 열이 발생하므로 출발할 때는 약간 추울 정도로 입고, 멈춰서 휴식할 때 겉옷을 입는 것이 좋다. 전국 등산학교 교재인 <등산>에는 “움직일 땐 벗고, 멈추면 입어라”라고 쓰여 있다. 굳이 값비싼 등산복을 살 필요는 없다. 등산복은 비싸고 좋은 것을 사는 것보다 잘 입는 것이 중요하다.
NEW 등산 문화
지속 가능한 소비
소비를 통해 신념을 표출하는 MZ세대는 제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착한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그들은 품질이나 가격만 보지 않고, 그것이 얼마나 윤리적이고 공정한지를 따진다. 이런 흐름에 따라 등산용품을 구매할 때도 친환경 메시지를 담은 아웃도어 브랜드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크루 문화
강한 소속감으로 똘똘 뭉친 산악회가 아닌 공통의 취향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크루(crew)가 대세다. 등산을 엄연한 행복의 수단으로 여기는 이들이 모여 장거리 트레일을 떠나는 것이 트렌드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 우리나라의 ‘백두대간’ 등 장거리 트레일이 젊은 세대가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플로깅 문화
젊은 세대의 등산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친환경이다. 특히 ‘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 ‘plocka upp’과 영어 단어 ‘jogging’의 합성어인 플로깅(Plogging)이 대세다. 쓰레기를 주우며 산에 오르는 것으로, 다른 말로는 클린 하이킹이라고도 한다. 번외 편으로 ‘줍다’와 ‘조깅’을 합친 ‘줍깅’, ‘쓰레기’와 ‘트레킹’을 합친 ‘쓰레킹’이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