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에도 트렌드가 있다. 한동안 꾸밈없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관찰 예능이 유행이었다면 최근엔 상담 예능이 대세다. 가장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은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이하 <금쪽같은 내 새끼>)다. 육아의 중심에 있는 부모뿐만 아니라 3040 싱글 남녀, ‘러브 마이셀프’가 중요한 Z세대로 통하는 1020세대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성별과 세대를 뛰어넘는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그 중심엔 ‘국민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가 있다.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9년간 SBS 시사·교양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이하 <우아달>)에서 육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부모들의 이정표가 됐던 오은영 박사. 약 6년 만에 돌아온 그의 육아 처방전의 파급력은 이전과 달랐다.
<우아달>에서는 “문제 아이는 없다. 양육에 문제가 있을 뿐”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의자’ 등 새로운 훈육 방식을 알렸다면,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는 공감이 중심이 되는 소통 방식에 대해 다룬다.
오은영 박사의 금쪽 처방은 유아·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위로가 됐다. 이에 오은영 박사는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이하 <금쪽 상담소>)를 통해 어른들의 생채기 난 마음을 보듬기로 했다. 가수 에일리, 배우 이태성을 시작으로 그룹 ‘AOA’ 출신 가수 초아, 배우 최진실의 아들이자 가수로 활동 중인 지플랫, 그룹 ‘2NE1’ 출신 가수 산다라박·공민지, 가수 김준수, 배우 송선미·남성진, 수학 영역 일타강사 정승제까지 내로라하는 유명인이 <금쪽 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상담자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청자 역시 “잘하고 있다” “힘들 땐 힘들어해도 괜찮다”는 오은영 박사의 말에 위로받았다. 그녀가 원했던 반응이었다.
“<금쪽 상담소>는 애프터서비스 프로그램이에요. <우아달>을 보고 자라 2030세대가 된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죠. 그 기저에는 그 친구들이 저와 상담을 한 뒤 스스로를 이해하고,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고 서로 잘 지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오은영 박사는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생각으로 2030세대의 어려움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지적했다. 물론 좌절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 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상처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이 힘든 시기가 있고, 역설적이게도 그 경험이 인생에 도움을 주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힘든 시기에 느끼는 감정을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는 과정도 필요해요. 제가 진정성을 갖고 누군가의 마음속 상처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젊은 세대에게 보여주고 상대방이 속마음을 이야기할 때 어떤 태도로 대하고 경청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오은영 박사는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오은영 박사에게 SOS를 요청했던 <금쪽 상담소>의 출연자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상담자 중 대다수가 오은영 박사에게 “집에 돌아가서 잠을 푹 잤다”라고 말한다는 것. 한 사람의 마음속 응어리가 풀렸다는 의미일 테다.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다룰 땐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하지만 제가 특별해서 누군가를 위로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면 가능해요. 서로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며 존중하는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어요. 저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어린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면 어른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어요.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스스로 단단해질 수 있죠. 어른이 돼도 마음이 힘들 때가 있지만, 그 힘듦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 모두에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커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카메라 앞에 선 이유
오은영 박사는 방송 출연 외에도 2년에 한 번씩 도서를 출간하고, 일간지 3곳에 육아 칼럼을 쓰고 있다. 또 2020년 5월 4일부터 1년 동안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육아회화 오디오클립 ‘오은영 박사의 글로만 읽어서는 잘 안 되는 육아 듣기’를 하루에 1개씩 게재했다. 코로나19로 집에서 육아하는 부모들을 위해 오은영 박사 스스로 나서 기획한 일이었다. 그녀는 “오디오클립을 녹음하면서 정말 힘들었어요”라며 웃었지만 모두가 힘든 시기에,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오은영 박사를 보고 누군가는 방송 출연 대신 환자 1명을 더 진료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송 출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환자 1명당 진료 시간이 1~2시간이라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환자 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또 진료 특성상 한번 인연을 맺은 환자와 오랜 인연을 이어가기 때문에 진료 환자가 누적되면서 새로운 환자를 수용하기 힘들어진다. 그녀가 더 많은 환자를 만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던 중 오은영 박사는 아주대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할 때 아동학대 중앙기구를 만들어 아동학대에 대한 개념을 알리고, 1996년 우리나라 최초로 보건소에 어린이 정신건강센터를 설립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식을 개선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SBS <우아달>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앞서 EBS <생방송 60분 부모>에서도 활약 중인 상태였다. 상업방송사인 SBS와 교육방송사인 EBS를 중심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결정한 일이었다.
“방송 출연은 대중에게 도움이 되자는 교육적 의미로 시작했어요. 많은 이들이 제게 해결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데 그보다 인식을 개선하는 게 더 중요해요. <우아달>을 통해 양육 방식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올바른 양육 태도를 가진 건 아니죠. 일부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녀에게 잘못된 양육 방식을 고수하기도 해요. 체벌로 훈육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죠. 그런데 체벌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에요. 단지 원하는 결과를 빠르게 얻고 싶은 부모의 욕심일 뿐이죠. 저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하는 자녀를 올바른 방식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우아달>이 처음 방송됐던 2005년부터 오은영 박사는 “체벌하면 안 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자녀를 양육할 때 체벌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녀는 힘이 닿는 데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오은영 박사는 여전히 체벌을 양육의 방식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당신이 아이를 때리고 싶은 게 아니에요. 체벌을 내려놓으면 아이를 잘못 키울까 봐 두려운 거예요. 체벌하지 않아도 아이를 바르게 키울 수 있어요.”
주위에서는 하루 24시간을 쪼개 쓰는 오은영 박사에게 “돈도 벌지 못하는 일을 왜 해요?”라고 묻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는 세상엔 돈을 버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양육 방식의 인식 개선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대장암 의심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결심했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 거예요.”
오은영 박사는 한 어린아이를 이해해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개인, 가정, 사회, 국가의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시청하면서 나의 자녀를 이해하는 동시에 타인의 자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어린아이가 울면 시끄럽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는 이유를 궁금해 하는 여유가 생기길 바란다.
“어린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면 어른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어요.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스스로 단단해질 수 있죠. 어른이 돼도 마음이 힘들 때가 있지만, 그 힘듦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 모두에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커졌으면 좋겠어요.”
세상엔 내게 영향을 주는 많은 자극과 정보가 있어요. 우리는 자극과 정보를 취사선택할 줄 알아야 해요. 그들이 주는 생채기에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두면 안 돼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에요. 나를 소중하게 여겨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요.
행복하기 위한 방법? 러브 마이셀프!
오은영 박사의 활약으로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졌다. 신체가 아닌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역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해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오은영 박사는 어딘가 불편한 상황이 2주 이상 지속될 땐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울한 감정이 2주 이상 지속될 때, 잠을 자지 못해 낮에 조는 상황이 2주 이상 이어질 때, 의학기술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신체의 고통이 2주 이상 계속될 때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생기면 전문가를 찾아야 해요. 사람이 살다 보면 염증이 생기거나 발목을 접질릴 수 있듯이 마음이 아플 수도 있어요. 사람의 됨됨이가 부족하거나 마음이 약해서 우울하거나 불안한 게 아니에요. 편도염에 걸렸다고 해서 됨됨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전문가를 만나기 전 나의 상태를 파악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스스로 자주 떠올리는 기억이 중요하다. 어떤 기억을 떠올렸을 때 느꼈던 감정을 기록하고, 현재 상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자주 하는 말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령 어떤 일을 했을 때 “내가 잘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가 그렇지, 뭐. 내가 잘하는 게 있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자주 사용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기록하는 것이 좋다. 휴대폰 메모장에 적거나 녹음 기능을 사용하면 파악하기 쉽다.
“내 생각엔 맞음과 틀림이 없으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솔직하게 기록하는 게 좋아요. 같은 상황이 반복됐을 때 내가 어떻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지 파악하고 왜 그러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현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요.”
또 오은영 박사는 애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애착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 많은 이들과 애착을 형성할 필요는 없다. 2~5명과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고 우호적인 관계로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영유아기엔 부모와, 청소년기엔 친구와, 결혼하면 배우자와, 부모가 되면 자녀와 밀접한 애착 관계가 형성되는 식이다.
“인간관계는 양궁의 과녁과 비슷해요. 가운데는 내 자신이고, 중요도가 낮아질수록 정중앙에서 멀어지죠. 모든 인간이 2~5명과 강력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데 그들과 잘 지내는 게 중요해요. 그들 외의 사람은 ‘기타’의 존재일 뿐이에요. 내면의 나와 잘 지내고 가까운 2~5명과 잘 지내며 안정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그 외의 사람과도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주도권은 내가 갖고 있다는 것이에요. 스스로 내 인생을 어떻게 꾸릴지 생각하며 살아야 해요.”
만약 애착 관계의 사람과 사이에 문제가 있을 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애착 관계의 사람들과 불통되기 시작하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부관계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저 사람은 정말 나와 안 맞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각자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부모 아래에서 다른 양육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 간에 “말이 안 통해”라는 말을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그럴땐 상담을 통해 관계 개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나 전문 상담가가 해결책을 주진 못하지만 갈등을 겪는 사람 간의 대화가 부정적인 경험으로 남지 않게 도와줄 수 있어요. 중재자의 역할을 하며 그들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아가 상대의 마음을 보는 과정을 도와주는 거예요.”
오은영 박사는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태어난 순간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 매일 아침 ‘내가 중요해’라고 되뇌며 스스로를 보호하며 살라고 덧붙였다.
“세상에는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많은 자극과 정보가 있는데 어느 누구도 자극과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우리는 타인이 주는 자극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그들이 주는 생채기에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두면 안 돼요. 내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생각을 흘리는 법을 연습해야 하죠.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은 그 사람의 것이니까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에요. 이 점을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어요.”
오은영 박사는 <금쪽 상담소>를 통해 <우아달>을 보고 자란 세대를 다시 만나 “이제는 어른이 된 ‘금쪽이’들에게 오은영 박사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는 것. 오은영의 매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