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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레이디의 패션 정치

재미있는 질문을 하나 하겠다. ‘만약 당신이 퍼스트레이디가 된다면, 어떤 옷을 어떻게 입겠는가?’전 퍼스트레이디부터 현재 A+ 모범 답안을 적어가고 있는 질 바이든의 패션까지 살펴보며 나만의 답안을 작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On October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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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정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과 달리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만큼 패션 산업은 물론 더 나아가 문화까지 미치는 영향력의 강도와 깊이가 남다르다. 전담 스타일리스트와 미용사까지 있으니 아무리 패션 센스가 없어도 멋지게 꾸미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럼에도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에 대한 평가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8년 동안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는 역대급 좋은 예다. ‘미셸 오바마 효과(Michelle Obama effect)’라는 경제 분야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일례로 미셸 오바마는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공식 석상에 총 189회 등장했는데 이는 약 3조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2009년에 미셸 오바마가 유럽 순방에서 입었던 삭스, 제이크루 등의 브랜드는 일주일 만에 주가가 약 16% 올랐으니 3조원이라는 수치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셸 오바마의 패션은 예쁘고 멋지게 보이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미셸 오바마는 패션이 실어 보내는 비언어적 메시지에 집중했다. 이민자 출신의 신인 디자이너나 성소수자 디자이너의 옷을 입어 ‘평등’의 가치를 얘기했고, 다른 퍼스트레이디들은 입지 않았던 중저가 브랜드의 옷을 입으며 ‘소통’하고자 했다. 화려한 색, 과감한 프린트, 대담한 액세서리 등은 ‘여성’의 힘과 당당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임기 초반에는 퍼스트레이디가 공식 석상에서 민소매 옷을 입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한 이들도 있었지만 이내 팔근육이 멋지다는 식으로 여론이 뒤집혔다. 이처럼 미셸 오바마는 오바마 정권 내내 성공적인 패션 외교를 펼쳤다.

반면 멜라니아 트럼프는 모델이었던 이력이 무색하게 패션으로 각종 구설에 오르는 오점을 남겼다. 2017년에는 텍사스주 허리케인 피해 현장에 가면서 15cm 하이힐을 신어서, 2018년에는 텍사스 접경 지역의 이민자 아동 수용 시설을 방문하면서 ‘나는 정말 상관 안 해, 너는?(I REALLY DON'T CARE, DO U?)’이라는 문구가 적힌 재킷을 입고 나타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백악관 크리스마스 장식을 공개하는 영상에서는 <겨울왕국>을 연상케 하는 멋진 화이트 코트를 입었는데, 누가 봐도 꽤나 힘을 싣고 좋은 반응을 기대했을 야심 찬 아웃핏은 “크리스마스의 온정과 환대하는 마음을 보여주고자 제작한 영상에서 멜라니아 트럼프는 차가움과 무관심을 물씬 풍긴다”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계속되는 논란에 멜라니아 트럼프는 ‘내가 무엇을 입는가보다 무엇을 하는지를 봐달라’고 호소했지만 대중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멜라니아 트럼프는 사람들이 퍼스트레이디에게 원하는 것은 패션모델처럼 멋있는 모습이 아니라는 걸 독하게 증명하고 백악관을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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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정권 내내 성공적인 패션 외교를 펼친 미셸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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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의 정책을 지지하는 전략적인 패션 외교로 주목받는 질 바이든. 때로는 반전이 있는 패션으로 친근함을 어필한다.

이제 46대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과 새로운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의 시대다. 질 바이든은 퍼스트레이디 패션의 좋은 예가 될 잠재력이 이미 충분했다. 우선 질 바이든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세컨드레이디로서 대중 앞에 섰던 경력자다. 당시 미셸 오바마를 측근에서 지켜보며 패션을 통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지 퍼스트레이디의 성공하는 패션 공식을 습득해왔다.

질 바이든이 지금까지 보여준 패션 정치는 무척 영리했다. 2020년 9월, 델라웨어주 예비선거에 참여한 질 바이든은 옆면에 ‘VOTE(투표)’라고 쓰인 부츠를 신어 지지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메시지 전달 방식도 힙(hip)했고, 70세가 넘는 나이에 스튜어트 와이즈만이라는 젊은 브랜드를 선택한 것도 탁월했다. 아마도 많은 나이가 단점이었던 조 바이든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뒤집은 작은 사건이 아니었을까? 또한 스튜어트 와이즈만 부츠는 이후 24시간 동안 웹 페이지의 페이지뷰가 488% 증가했고 대부분 사이즈가 품절됐다는 후문이다.

질 바이든이 대통령 후보 토론에 참석했을 때 착용한 짙은 그린 컬러의 원피스는 우르과이 이민자 출신 미국 디자이너 가브리엘라 허스트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2015년에 론칭한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재료가 수급되고 제작되는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재활용 및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며,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지속 가능한 럭셔리’ 브랜드다. 브랜드 설명만으로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 전날 코로나19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에는 보라색 원피스와 코트를 입고 참석했다.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보라색이 된다는 점에서 분열된 미국을 통합하겠다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담았다. 대통령 취임식 당일 저녁에는 가브리엘라 허스트가 디자인한 크림색 원피스와 코트를 입었다. 원피스에는 미국 주와 영토를 상징하는 51개의 꽃을 자수로 새겨 통합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했다.

질 바이든은 이후에도 파격적인 패션 정치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입었던 옷을 또 입는다는 점이 가장 이례적이다. 역대 퍼스트레이디들은 같은 옷을 입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는 점에서, 또 전담 스타일리스트가 있는데 굳이 입었던 옷을 또 입는다는 점에서 색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무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을 하는 등 친환경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적절할 뿐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큰 가치를 두고 중고품 쇼핑에 진심인 요즘의 MZ세대에게도 어필할 만한 선택이다.

질 바이든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당일에 입은 가브리엘라 허스트의 자수 원피스를 대통령 취임식 후 열린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또다시 입었다. 컬러는 화이트에서 블랙으로 바뀌었지만 소재를 재활용한 것이었다. 디자이너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취임식에 입은 원피스를 한 번 더 사용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질 바이든의 원피스는 이미 있던 원단을 활용해 만들었다”라고 밝히며 “새로운 것이 늘 더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후에도 질 바이든은 패션을 ‘재활용’하고 있다. 대선 승리 후 대국민 연설 때 입었던 옷을 G7 개막 리셉션에서 다시 한번 입었고, 영국 콘월에서 열린 미·영 정상회담에서는 등 뒤에 ‘LOVE’라는 글자가 새겨진 쟈딕앤볼테르의 개인 소장 재킷을 입었다. 이 재킷은 질 바이든이 2019년부터 종종 착용해오던 것이다. 도쿄 올림픽 때 일본을 방문한 3일 동안은 아예 미국 대표팀 공식 유니폼인 랄프 로렌의 재킷 이외에는 모두 이전에 입었던 옷을 또 입었다.

친환경을 지향하는 도쿄 올림픽 기조에 매우 적절한 패션 외교의 일환이었다. 이처럼 질 바이든은 퍼스트레이디로서 매우 전략적으로 패션을 완성해가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반전이 있는 패션을 보여주며 인간적인 매력을 동시에 어필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소를 방문한 뒤 백악관으로 돌아오면서는 가죽 스커트에 섹시한 꽃무늬 망사 스타킹을 신은 매력적인 70대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머리를 일명 ‘곱창밴드’로 불리는 헤어 액세서리, 스크런치(scrunchie)로 질끈 묶고 조 바이든에게 줄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사는 모습으로 퍼스트레이디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친근감을 주기도 했다.

역대 최초로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이기도 한 질 바이든. 그녀의 퍼스트레이디 패션이 가장 남다른 점은 기존의 틀과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실행하는 것 아닐까?

CREDIT INFO
에디터
정소나
명수진(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미셸 오바마·질 바이든 인스타그램
2021년 10월호
2021년 10월호
에디터
정소나
명수진(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미셸 오바마·질 바이든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