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어디선가 큐브를 이리저리 만지면 손에 자극이 돼서 좋다는 말을 들었다. 왠지 두뇌에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고 주안이에게 큐브를 사줬다. 처음 구입할 땐 정육면체 모든 면의 색이 같았는데 주안이가 갖고 놀다 보니 색이 다 섞였다. 주안이는 나에게 6개 면의 색을 모두 맞춰달라고 했다. 한쪽 면의 색만 맞출 수 있었던 나는 주안이가 잠든 후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고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큐브를 맞춰놓을 수 있었다. 한동안 큐브를 갖고 놀았고 그 후 한참 동안 기억 속에서 잊혔는데, 최근 주안이가 다시 큐브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어느 날 주안이가 유튜브 영상을 집중해서 보고 있길래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라고 물었다. 주안이는 "큐브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떨 때는 쉽게 맞춰지는데 또 어떨 때는 잘 맞춰지지 않아"라며 큐브 맞추기를 연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밥을 먹을 때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 할머니·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도 주안이의 손에는 항상 큐브가 들려 있었다. 혼자서 큐브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막히면, 유튜브에서 자신이 막힌 부분을 검색해 찾아 돌려보고 다시 맞춰보면서 큐브 공식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주안이가 함께 밥을 먹는 나한테 큐브를 섞어달라고 하면서 다시 맞추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을 재어달라고 했다. 눈빛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밥을 다 먹고 하라고 했을 텐데 그동안 해온 아들의 노력을 알기에 나도 숟가락을 내려놓고 휴대폰 스톱워치를 켰다. 주안이는 큐브를 휙휙 돌리고 잠시 고민했다가 다시 휙휙 돌렸다. 중간에 고비가 온 듯한 모습이 보였지만 그래도 결국 성공했다.
시간은 2분 30여 초. 엄마도 나도 주안이도 모두 놀랐다. 처음으로 기록 재기에 도전했는데 생각보다 빠른 시간이었고, 첫 도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중간에 몇 번 머뭇거린 것만 아니었으면 더 빠르게 성공했을 거라며 안타까워하는 주안이를 보면서 우리 부부는 "굉장한 것을 했어"라고 칭찬했다. 안타까워했지만 주안이도 꽤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그 뒤로 점점 큐브 맞추기에 성공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속도도 더 빨라졌다. 주안이는 반복적으로 연습하니까 큐브 맞추기 공식이 완전히 이해된 것 같다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서 큐브를 맞추고 있다. 도통 큐브 공식이 이해되지 않는 아빠에게 "아빠, 이것 좀 봐봐. 이건 이런 공식이야!"라면서 "왼왼위오왼위아"라고 외계어 같은 공식을 시전하고 할 일을 하러 갔다. 분명 잘난 척이다.
그리고 아빠는 한쪽 면만 맞추고 주안이는 다 맞추는 시합을 하자며 자신 있게 도전장을 내밀고 가뿐히 나를 이겼다. 주안이는 이제 큐브를 다 맞추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듯하다. 그러면서 유튜브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큐브 세계 대회에서 1등 하는 영상을 찾아보면서 굉장히 뿌듯해했다.
주안이는 "저렇게 빠르게 할 순 없을 것 같지만 (영상 속) 형처럼 큐브를 빨리 맞출 수 있게 수련할 거야"라면서 하루 종일 큐브를 손에서 놓지 않고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한편으론 아들이 참 신기하면서도 든든하다. 우리 아버지도 나를 보면서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있었을까? 내 또래 부모들도 이런 기분을 느끼면서 아들딸을 키우며 살고 있겠지?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