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선 저녁 식사에 손님을 초대해 식사하는 경우 짧게는 4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 이상 걸린다. 보통 저녁 식사 초대 시간은 오후 8시. 집에 어린아이가 있거나 그다음 날이 평일이라면 오후 7시나 7시 30분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초대 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도착한다. 혹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지 못했을까 봐 배려하는 것이다.
초대 손님이 도착하면 집주인은 손님의 옷과 가방을 정리해주고, '아페로(apéro)'를 시작한다. 아페로는 식욕을 돋우기 위해 식사 전에 마시는 술인 아페리티프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테라스나 거실 공간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아페로에는 감자칩, 땅콩, 말린 소시지, 방울토마토 같은 다양한 핑거푸드와 가벼운 주류(화이트 와인이나 맥주)를 내놓는다. 이때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사람은 최대한 적게 먹으면서 대화를 길게 이어가려고 한다. 아페로가 비워지면 집주인이 "테이블로 가시죠"라고 신호를 준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는데, 전식(entré)을 따로 먹기도 하고, 바로 본식(plat)을 시작하기도 한다.
프랑스식 식사에서 가장 중요한 예절은 먹는 것보다 대화에 전념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프랑스 식사 중에는 느림의 미학이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긴 식사 시간 동안 과식하고 싶지 않다면 더욱 중요하다. 괜히 할 말이 없어서 빨리 접시를 비워버리면 바로 집주인이 더 먹겠냐며 음식을 권한다. 와인 잔도 비우면 어느새 다시 채워준다.
본식까지 마치면 프랑스인에게 가장 중요한 단계들이 남아 있다. 하나는 치즈 플레이트를 돌리는 순간이고, 그다음은 디저트다. 치즈는 3~4가지를 준비하고, 간단한 샐러드와 빵을 곁들인다. 보통은 한 번 조금씩 잘라서 덜어 먹고 난 다음, 두세 번 더 먹기 때문에 치즈 먹는 시간도 30분 이상 걸린다. 치즈를 다 먹고 나면 디저트 시간이다. 디저트가 마무리될 즈음 집주인은 커피나 차를 권한다. 아니면 손님의 취향에 따라 디제스티프라고 하는 독한 술을 권하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단계를 마무리하고 나면 새벽 2시가 훌쩍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눴는데도 "이제 슬슬 가지" 하며 슬그머니 일어서면서 끝없이 대화를 나눈다. 초대 손님이 "이제 가야겠네" 하면 집주인은 초대 손님의 옷과 가방을 갖다주며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또 꺼낸다. 그러면 옷을 입고 가방을 메는 동안 또 한참 이야기한다. 그렇게 또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며 아주 천천히, 현관 쪽으로 한 걸음씩 떼어놓는다. 마침내 현관문이 열리고, 그 문을 나와 길가에 설 때까지도 대화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 그러고 나서야 작별 인사를 나눈다.
더욱더 재밌는 것은 그렇게 정겹게 식사를 마치고 난 사이라도 초대 손님들끼리, 또 집주인들끼리 서로에 대한 애정 어린 담화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 프랑스 사람의 입은 먹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말하기 위해 있는 것만 같다.
글쓴이 송민주
4년째 파리에 거주하는 문화 애호가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책을 번역했으며,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등을 제작하고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