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 명배우 김윤석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영화 <미성년>(2019)으로 연출자로 변신했던 그가 3년 만에 배우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해외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영화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영화다. 김윤석은 극 중 한국의 UN 가입을 위해 소말리아에서 외교 총력전을 펼치는 한신성 대사로 분했다. 위기의 순간에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인정 넘치는 인물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책임지는 리더로서 역할을 자처한다.
‘흥행 보증수표’ 조인성도 함께 출연한다. 조인성은 한국 대사관을 관리 겸 지원하고자 파견된 안기부 출신의 정보 요원 강대진 참사관으로 변신했다. 그 외에도 허준호, 구교환, 김소진, 정만식, 김재화, 박경혜까지 개성과 매력, 연기력을 겸비한 대한민국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해 스크린을 신선하게 채운다.
김윤석과 조인성은 <모가디슈>로 첫 호흡을 맞췄다. 김윤석은 조인성에 대해 “선후배를 떠나 친구이자 동료 같은 배우”라고 말했고, 조인성은 김윤석에 대해 “김윤석 선배와 연기할 수 있는 기회는 내 연기 인생의 분기점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제작진도 화려하다. 류승완 감독을 필두로 해외 로케이션을 성공적으로 소화했던 영화 <베를린> 제작진이 다시 모여 확장된 2021년 해외 도시 프로젝트를 완성해냈다.
영화 <모가디슈>의 압도적이고 이국적인 스케일을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는 단연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진행된 100% 로케이션이다. 김윤석은 “모로코의 이국적인 경치와 문화 등 모든 것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소말리아를 그대로 재현한 모로코의 공간에 감탄을 자아냈다.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김윤석을 만났다.
모든 것이 배움이었다
현재 예매율 1위다. 소감은 어떤가? 기분이 좋지만 알다시피 모두 힘든 시기다. 조금씩 양보해 이 시즌에 <모가디슈>를 개봉해야겠다는 데 마음을 모았다. 더운 날에 좋은 영화를 보여드린다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입소문이 날 정도로 만족스러운 영화이길 바란다.
인정이 넘치는 대사로 분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나? 가장 흥미로웠던 건 남다른 능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의 탈출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사라고 하지만 우유부단한 모습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하는 시나리오가 흥미로웠다. 히어로가 아닌 일반인의 모습이 나한테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한 나라의 ‘대사’라는 직함 말고는 평범한 캐릭터다. 어쩌면 육체적인 파워와 능력은 일반인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그게 특징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영어 대사 같은 경우엔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기에 살았던 캐릭터라 참고서로 배운 영어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영어 발음을 굴리지 않고 독학으로 배워낸 영어를 구사하려는 데 신경 썼다.
100% 해외 현지 촬영인 데다 스케일도 크다. 이번 영화가 어떤 의미로 남았나? 2019년 10월 말에 가서 2020년 2월 중순까지 4개월간 올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한 커트도 국내에서 찍은 게 없다. 그 4개월 동안 온전히 그 속에서 살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 오히려 캐릭터에 이입이 잘됐다. 또 낯선 외국 배우들과 어울려 합을 맞춘 것도 잊지 못할 기억이다. 해외여행을 못하는 지금 상황에선 아름다운 추억이 된 것 같다.
많은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주연배우의 만족도가 궁금하다. 100% 만족한다는 건 거짓말이다. 어떤 작품도 완벽하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영상화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준비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영화계에 새 지평을 연 거 같아 뿌듯하다.
<모가디슈>는 즐거움의 영역에서도 출중하지만 그 이상의 여운도 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 작업에 동참하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류승완 감독과 꼭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두어 번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 스케줄이 맞지 않아 어긋났다. 두어 번 스케줄이 안 맞아 인연이 안 닿으면 다시 시나리오를 주는 게 참 어렵다. 그런데 류승완 감독이 시나리오를 줬고, 읽자마자 ‘이게 가능해?’ ‘말이 돼?’ 등등의 물음부터 시작됐다. 감탄할 만큼 준비를 철저하게 한 것 같다.
촬영하는 동안 류승완 감독이 김윤석 배우의 연기에 매일 감탄했다고 전해 들었다. 감독과의 호흡도 궁금하다. 류승완 감독을 보면서 ‘저 사람은 신발을 안 벗고 살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24시간 영화 속에 있는 사람이다. 현장에서 직접 모든 걸 점검하고 체크한다. 책상에 앉아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벌판에 뛰어나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이 참 흐뭇했고, 정말 좋았다. 현장에서 디테일적인 부분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한 식구라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스케일만큼이나 캐릭터도 다양하다.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조인성, 허준호 씨와 처음 호흡을 맞췄다. 서로 앙상블을 이루면서 나서야 할 때와 바라봐야 할 때의 조절을 스스로 했다. 이 영화의 최고 매력인 거 같다.
조인성 배우와 첫 호흡이었다. 조인성 배우는 김윤석 배우와 함께하면서 의외성이 도출됐다고 했는데, 어땠나? 사석에서 본 적은 있지만 작품에선 처음이었다. 영화 <비열한 거리>를 보고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조인성 배우가 합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나보다 적은 나이임에도 절제력과 담백한 모습이 연기에 잘 묻어나는 배우다.
허준호 배우와의 브로맨스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내게는 선배님인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진 않는다. 사석에서는 형이라고 부른다.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달리 내가 보는 허준호 배우는 늘 웃고 있다. 말수는 적지만 웃으며 뒤에서 지긋이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실제 그런 모습들이 극 중 캐릭터와 잘 맞는 것 같다. 절제력 있는 모습이 닮아 있다.
<모가디슈>에서 다른 캐릭터를 맡을 수 있다면 탐나는 배역은? 아무래도 나이대를 미뤄본다면, 허준호 배우 역을 해도 재미있을 거 같다.(웃음)
지금까지 유아인, 주지훈, 조인성 같은 좋은 배우들과 연기 호흡을 자주 맞췄다. 반대로 생각하면 배우들이 김윤석을 만나면 연기의 최대치를 뽑아내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조인성 배우가 ‘의외성’이라고 표현한 것 아닌가 싶다. 내가 상대 배우에게 제시하는 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파보자는 메시지를 서로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캐릭터 대 캐릭터로 집중하자는 기운들이 좋은 효과를 발휘하면 더 깊게 파고들고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각 배우의 이전 모습과 다른 모습이 나온다. 나 또한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를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놓치고 있던 부분을 가치 있게
바라보는 것, 그런 시나리오는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어서 좋다.
“류승완 감독은 24시간 영화 속에 있는 사람”
해외 올 로케이션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는데, 가장 힘들었던 건 뭔가? 촬영하면서 모든 스태프가 삼겹살 얘기를 많이 했다. 너무 먹고 싶더라.(웃음) 다행히 나는 어떤 나라를 가든 로컬 음식을 먹어보는 모험을 즐긴다. 돼지고기만 없지 양고기, 소고기, 생선이 있어서 괜찮았다. 훌륭하고 좋은 현지 음식을 많이 먹었다. 또 촬영장에 우리나라 밥차가 와서 한 끼는 김치와 국이 나오는 식사를 했다. 지금 이 코로나19 시국을 생각하면 소박했던 그때의 시간이 참 그립다.
남북 외교관과 협력·대립은 자칫하면 식상하거나 감성적 전개가 될 수도 있는 설정이다. 어떻게 접근했나? 1991년은 내가 대학생이었던 때다. 그 당시는 해외여행 자유화(1989년 1월 1일)가 실시된 지 얼마 안 됐고, 남북 간 대화도 없던 상황이었다. 살벌한 냉전 시대에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남북이 비무장인 모습으로 만나, 살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 매력적이었다. 관객들도 공감했으면 좋겠다.
신예 구교환 배우가 상업영화계에 들어와 조금씩 지형을 확장하고 있다. 선배 배우로서 어떤 조언을 했는지 궁금하다. ‘자신을 믿어라’, ‘너의 능력을 믿어라’라는 말을 해줬다. 개인적으로 구교환이라는 배우를 좋아한다. 그 배우 안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모습이 숨어 있다. 그 모습들을 촬영 내내 보는데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결국 현실화돼 놀란 장면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모로코에서 소말리아계 흑인 수백 명을 캐스팅한다고? 사람들을 모으는 작업이 가능할까 싶었다. 외국인이 모두 각자 그 나라의 언어를 썼다. 영어를 연습해 대사를 해야 하고, 현장에서 지휘할 때는 영어를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로 전달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걸 해내더라.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도전을 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 공감대 형성이다. 옆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상황 역시 현실적으로 표현해내려고 노력했다.
영화 <미성년>(2019)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감독의 시선으로 <모가디슈>의 연출 중 인상적인 부분은 어떤 것인가? 모든 것이 배움이었다. 알다시피 글을 쓰는 건 혼자서 몇 년이 걸려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글을 형상화·영상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과 능력이 합쳐져 만들어진다. 감독이 총지휘를 하고 모든 스태프가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야 한다. 그 과정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움이었다.
감독으로 작품을 연출한 이후 연기할 때 달라진 점도 있나? 어찌 됐든 연기자는 작품을 만날 때마다 발전해야 한다. 그걸 놓치면 퇴보하는 것이다. <모가디슈>를 찍고 느꼈던 결핍을 앞으로 채워가겠다. 감독 데뷔 후 온전히 배우로 현장에 돌아왔을 때 느낀 점은, 배우가 훨씬 편하다는 것이다. 내가 맡은 역할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해봤다.(웃음) 그만큼 감독 일이 보통이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얻는 성취감이 엄청나다. 둘 다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보겠다.
김윤석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관객이 많다. 머리에 쥐가 나게 고민하고 있지만 계획하고 있는 건 없다.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드라마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작품에 진출하는 배우가 많다. 아직까지 극장 영화를 고수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극장에서 봐야 할 작품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가 비대해지면 균형감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
연기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배우다. 무게감은 없나? 언제나 있다. 그것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은 작품과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굳이 따지면 작품이다.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시나리오를 볼 때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이야기도 좋지만 우리가 아는 이야기를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놓치고 있던 부분을 가치 있게 바라보는 것, 그런 시나리오는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어서 더 좋다.
연기 인생 30년이 넘었다. 특히 <모가디슈>는 30년 전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소회를 듣고 싶다. 30년이나 됐나?(웃음) <모가디슈>는 88 서울올림픽, 그 뒤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20대였고, 그 시대 어른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 시대는 격변도 많았다. 그래서 <모가디슈>의 배경이 되는 소말리아의 일이 낯설지 않다. 지금 내 나이가 돼 돌아봤을 때, 지금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