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와 주고받는 비밀 메시지
“잘 잤어? 좋은 하루 보내.” 내가 사랑하는 연예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대면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타격이 불가피해진 엔터테인먼트업계가 새로운 수익 모델을 내놓았는데, 바로 ‘유료 비대면 소통’이다.
과거 팬 미팅, 콘서트 등 공식 일정에서 만나던 때보다 밀접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 SNS 라이브 방송과 비슷해 보이지만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사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나에게만 보내주는 메시지에 팬들은 환호하고, 이로 인해 큰 수익을 얻어가는 엔터테인먼트업계는 기회를 잡아 사업을 더욱 확장하고 나섰다.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디어유’가 출시한 유료 팬덤 플랫폼 ‘리슨’의 성장세가 동종 업계 전반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리슨 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버블’의 인기가 뜨거운데, 이용자가 구독 신청을 한 아티스트로부터 문자, 사진, 음성 메시지 등을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버블의 성공 비결은 ‘일대일’로 주고받는 느낌의 긴밀한 소통이다. 팬들의 메시지를 읽은 셀렙이 재량으로 선별해 답장을 보내는데, 이때 팬들에게 개별 메시지로 답장이 전송돼 마치 단둘이 연결된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사용자가 설정한 닉네임을 부르며 메시지를 보내 형식적인 답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말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로 아티스트의 디스코드(채팅방)에는 라이브 방송의 실시간 댓글처럼 ‘일대다 소통’ 형식으로 메시지가 전송된다. 그래도 일반 채팅처럼 실시간으로 전송되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추면 ‘최애’ 연예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팬들의 선택을 받는다.
버블뿐만 아니라 매달 좋아하는 연예인의 자필 편지와 포토 카드를 받을 수 있는 ‘디어 유 레터’도 인기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룹 ‘레드벨벳’ 멤버 웬디로부터 자필 편지를 받았다는 후기가 올라오면서 눈길을 끌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유료 팬덤 플랫폼을 출범하며 아티스트와 이용자의 친밀한 소통을 위해 디지털 서비스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한 포부만큼이나 팬들의 반응이 뜨거운 상황이다.
스타와 팬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일부를 기부하는 새로운 개념의 팬덤 플랫폼도 등장했다. 바로 기부 플랫폼 ‘셀러비’다. 연예인과 팬이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SNS 공간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익 기부라는 선한 의미를 더했다.
셀러비는 셀렙이 특정 팬을 위해 생일 축하, 취업 축하 등 영상 메시지를 제작한 뒤 이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신청자가 셀렙에게 사연을 보내 동영상 제작을 의뢰하고, 이를 본 셀렙이 사연을 선택해 영상을 녹화해주는 것이다. 제작 비용은 3만원 이상이며 신청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제작 비용으로 벌어들인 수익에서 수수료를 제외하고 남은 수익 중 얼마를 기부할지는 셀렙이 정한다.
셀러비코리아에 따르면 제작비 대비 기부금 비율은 50%에 달한다고. 현재 셀러비에는 모델 겸 배우 배정남, 이유비, 배슬기, 그룹 ‘소녀시대’ 써니, ‘슈퍼주니어’ 김희철, ‘레인보우’ 조현영, 산다라박, 래퍼 이영지, 개그맨 박성광 등 다수의 셀렙이 참여하고 있다. 셀러비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베트남, 홍콩 등 해외 진출을 계획하며 사업을 확장할 전망이다.
이 밖에도 그룹 ‘아이즈원’은 활동 종료 전까지 팬들에게 정기적으로 프라이빗 메일을 보내주는 서비스를 운영했다.
소통할 수 있어 좋아 vs 팬의 순수한 마음 이용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좋아하는 셀렙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는가 하면 소통이 유료로 소비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늘어가는 유료 플랫폼으로 인해 자칫 팬클럽 문화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만 팬덤에 소속된다는 일종의 무력감과 소외감이 따르는 것. 자의에 의해 이뤄졌던 셀렙과 아티스트 간의 소통에 재화가 개입되면서 의무감이 바탕이 되는 대화가 오간다는 지적과 함께 아이돌을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진다.
환불 규정이 모호하다는 것도 유료 팬덤 플랫폼이 직면한 문제다. 버블의 경우 지난 5월 환불 규정을 발표했지만, 이마저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버블에 따르면 구독 신청 30일 이내에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받지 못할 경우 환불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30일 이내에 1건이라도 메시지를 수신받았다면 환불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통 빈도가 아티스트의 재량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에서 환불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셀렙이 활동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멤버십 환불에 대한 규정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고 있다. 지난 5월 갑작스럽게 해체 소식을 전한 그룹 ‘여자친구’의 ‘팬클럽 가입비’ 환불 과정에서 벌어진 잡음 탓이다. 여자친구의 소속사 쏘스뮤직은 해체 소식을 알린 후 팬들이 팬클럽에 가입할 때 냈던 돈을 유료 팬덤 플랫폼 ‘위버스’의 온라인 캐시로 환불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팬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해체했는데 어디에 캐시를 사용하라는 것이냐”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항의가 거세지자 공식 입장을 통해 현금 환불을 약속했지만 비판은 여전하다.
지난 2017년 출범해 매해 적자를 냈던 디어유는 2020년 2월 버블을 론칭한 후 지난 1분기 기준 매출 89억원, 영업이익 32억원을 거둬 흑자 전환했다.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자 디어유는 이용자 유입을 위한 아티스트 늘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모회사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사업은 현재 JYP엔터테인먼트, FNC엔터테인먼트,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브랜뉴뮤직, 미스틱스토리 등 국내 15개 엔터테인먼트사까지 확장했고, 총 40여 개의 그룹·솔로 아티스트(총 164명)를 보유한 서비스로 규모를 키웠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 3대 연예 기획사인 JYP엔터테인먼트가 디어유와 손잡고 플랫폼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 6월 4일 JYP엔터테인먼트는 디어유의 보통주 260만 3,192주를 130억여원에 추가 취득했다. 지난달 전체 지분 9.1%에 해당하는 보통주 168만 2,000주를 사들인 것까지 합하면 428만 5,192주로 총 23.3%의 지분을 갖게 된 것이다. JYP는 “디어유와 전략적 시너지 창출을 위해 지분 취득을 결정했으며 향후 사업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본격적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선 디어유는 최근 코스닥 상장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 6월 11일 한국거래소에 코스닥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상장 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이다. 상장 절차를 완료하면 K-팝 플랫폼 전문 회사로서는 첫 번째 상장사가 되는 것이다.
팬과의 소통, 찐으로 즐기는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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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팬 사랑, ‘소녀시대’ 태연
‘버블’로 ‘신세계’를 맛봤다는 그룹 ‘소녀시대’ 태연. 꾸준히 대화를 이어가 팬들을 향한 ‘찐사랑’을 자랑하고 있다. SNS나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은 자신의 사진이나 애정어린 말들을 건넨다고. 버블 이용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구독 한 번 했다가 ‘입덕’했다는 후기가 잇따른다. 태연은 “버블 없이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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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보다 더 즐기는 그룹 ‘SF9’ 인성
그룹 ‘SF9’의 디스코드(채팅방) 중에서는 인성이 가장 인기다. 후기를 보면 메시지가 오지 않아도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로 웃게 된다는 반응이 잇따른다. 다른 멤버를 사칭해 웃음을 유발하거나 늦은 밤 프로필 사진을 내린 채 전 남자친구의 단골 멘트 “자니?”라는 메시지를 팬들에게 전송한다고. 이와 관련해 같은 그룹 멤버 휘영은 팬들과 가장 소통을 잘하는 멤버로 인성을 꼽으며 “이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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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공유, ‘슈퍼주니어’ 김희철
솔직한 발언으로 사랑받고 있는 가수 겸 방송인 김희철. 그는 자신의 일상 대부분을 공유하면서 팬들에게 다가간다. 갓 일어난 아침부터 스케줄 가는 길, 메이크업 받을 때나 술자리에서도 메시지를 보내는 그다. 심지어 숙취에 시달리는 순간까지 공유한다고. 김희철만의 특이점은 팬들에게 역으로 질문을 한다는 것. 한 10대 이용자가 낮 시간대에 답장을 보내자 “수업 시간에 왜 보내냐”고 다그친 일화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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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컷 대방출, 그룹 ‘NCT’
총 23명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NCT’의 ‘버블’은 포털 연관 검색어에 박제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팬들에게 수시로 메신저를 보내는가 하면 답장에도 충실하다고. 멤버 마크는 공개한 적 없는 비하인드 사진을 대방출하고, 중국 멤버 샤오쥔은 수시로 노래 영상을 공개하며 도영은 매일 메시지를 보내 팬들 사이에서 ‘효자’라는 명칭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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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우게 만드는 그룹, ‘스트레이키즈’ 필릭스
주로 늦은 시간에 팬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룹 ‘스트레이키즈’ 멤버 필릭스. 오전 2~3시에 노래를 추천하거나 감성 젖은 메시지를 전송해 졸린 눈을 비비며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팬이 한둘이 아니란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활동하는 만큼 필릭스의 메시지에 답장 받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