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마인>의 인기가 뜨겁다. 드라마 화제성 1위로 출발하더니, 지난 10회(6월 6일 방송) 시청률이 9.4%(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세상의 편견을 벗어나 진짜 나의 것을 찾아가는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기획 의도답게 이보영과 김서형을 전면에 내세워 두 여성의 활약상을 그려낸다.
극 초반에는 재벌가를 배경으로 한 출생의 비밀과 불륜이라는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아닐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의 추리력을 자극하는 반전과 스피디한 전개,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의 서사가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들고 있다. 매회 범상치 않은 재벌가를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드라마 제목은 ‘마인(Mine)’, 즉 ‘내 것’이지만 극 중 인물들은 진짜 제 것이 없다. 제작진 역시 “<마인>은 삶에서 찾아야 할 진정한 내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세상의 편견에 부딪힐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전작 JTBC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에서 상류층의 은밀한 심리와 비밀을 심도 있게 다뤄 인기를 모았던 백미경 작가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좋아하면 울리는>을 연출한 이나정 감독이 의기투합했다.
<마인>의 인기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배우들의 연기력. ‘왕사모’ 역 박원숙, ‘엠마 수녀’ 역 예수정, 효원가의 두 며느리 역 김서형과 이보영, 효원가의 3남매 역을 맡은 박혁권·김혜화·이현욱, 프라이빗 튜터 역 옥자연 등 연기 잘하는 배우가 모두 모였다. 게다가 드라마의 판타지를 더하는 감초 연기자 ‘노덕이’도 베테랑 연기 전문 공작새다.
관전 포인트
예측 불가 스토리
‘서희수’(이보영 분), ‘정서현’(김서형 분), ‘강자경’(옥자연 분) 세 여성이 협력해 공공의 적 ‘한지용’(이현욱 분)에 맞서기 시작하며 드라마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둘도 없는 다정한 남편이라 믿었는데, 배신과 유산을 겪으며 남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는 서희수. 사랑을 포기하고 늘 이성적으로 행동하던 정서현은 효원가 대신 사랑을 선택하겠다는 아들 ‘한수혁’(차학연 분)을 보며 이전과 달리 한지용으로부터 효원가를 더 견고하게 지키려고 한다. 검은 야욕을 숨기고 있던 한지용이 효원의 후계자가 되면서 자신의 앞길을 막는 이들을 어떻게 처단해나갈지 궁금해진다.
다양한 인간 군상
왕사모 ‘양순혜’(박원숙 분)는 큰며느리 정서현의 꾸지람에 반격 한마디 못 하고 입을 삐죽이는가 하면 집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빵을 먹고 돌아다니는 등 목소리만 컸지 허술한 존재감으로 무시당하는 존재. 쓰러진 남편 ‘한 회장’(정동환 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다 본의 아니게 남편을 살리고 마는 그녀의 코믹 연기는 압권이다. 박원숙이 아닌 양순혜는 상상이 안 갈 정도다. 박원숙과 모녀 케미를 선보이는 딸 ‘한진희’(김혜화 분)는 엄마의 고약한 성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갑질의 여왕’이지만, 막상 강하게 나오는 사람에게는 꼼짝 못 한다.
효원가의 메이드 ‘주 집사’(박성연 분)는 효원가 저택의 모든 일정 관리와 메이드들의 총책임자로 숨은 비선 실세. 걸어 다니는 CCTV라고 할 정도로 효원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어느 라인에 줄을 서야 할지 항상 고심한다. 철저하게 효원가의 충신인 것 같지만, 사실은 효원가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위험인물이기도 하다.
마시는 공기도 다른 재벌가 라이프
효원가 사람들은 마시는 공기도 특별하다. 저택의 산소포화도는 일반 공기 대비 15배 높다는 설정이다. 제작진이 실제로 몇몇 재벌가를 취재한 끝에 이러한 내용을 드라마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재벌가의 식사와 파티 음식 세팅 등은 미술소품팀 내 파티 담당이 따로 준비할 정도로 신경 썼다. 극에서 효원가 사람들은 남극의 얼음을 녹인 물을 마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이드들에게 패악질을 해대는 왕사모 양순혜와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녀 한진희의 모습은 갑질로 사회면을 장식한 모 재벌가와 닮은 모습이다.
믿보배 이보영과 김서형의 만남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 이보영과 김서형이 선택한 드라마다. 전직 톱배우인 둘째 며느리 서희수는 재벌가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따르는 인물이다. 시어머니 양순혜 앞에서도 할 말을 당당하게 하고, ‘한하준’(정현준 분)이 친자가 아니라는 비밀로 자신을 흔들려는 기자에게도 비굴하지 않은 태도로 진심을 피력한다. 내면의 강인함과 외면의 따뜻함을 이보영만큼 잘 표현하는 배우도 드물 것이다. 서희수가 남편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겪는 변화를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가 된다.
김서형은 다시 한번 정서현이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나 열연 중. 안하무인 시누이 한진희에게는 자신의 집 출입 금지를 선언하고, 술에 취해 주 집사에게 손찌검한 남편 ‘한진호’(박혁권 분)를 단번에 알코올 중독센터로 보내버리는 모습은 집안 내 그녀의 위상을 보여준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냉철한 리더의 품격을 드러내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아픈 사랑을 간직한 양면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보영 VS 김서형 스타일링
두 주인공의 스타일링 역시 방송과 함께 화제다. 뼛속까지 재벌인 맏며느리 정서현과 배우 출신의 자유분방한 둘째 며느리 서희수는 태생이 다른 만큼 스타일링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정서현은 공간별로 차별을 두어 외출복과 가내복의 상반된 느낌을 강조했다. 헤어스타일도 집 안에서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커트로, 갤러리에서는 전문 경영인답게 우아한 느낌으로 스타일링했다. 뻔한 재벌가 여성의 복장이 아닌 디테일이 있는 디자인의 의상을 선보이는 그녀는 대담한 패턴의 단정한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매치하거나,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드레시한 올 블랙 룩에 볼드한 주얼리를 더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서희수는 코발트블루, 플라워 패턴 등으로 강인함을 표현하고, 전직 톱배우이자 재벌가의 며느리답게 그녀의 스타일링에는 고혹적이면서 우아함이 담겨 있다. 퍼프소매로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고 H라인과 플레어 라인 등 다양한 원피스 라인으로 세련된 우아함을 돋보이게 한다.
‘효원가’ 대저택 어디?
드라마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 <사랑의 불시착> 등 연달아 히트작을 낸 김소연 미술감독은 “화려한 상류층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과 세트에 특별히 신경 썼다”고 전했다. 드라마 세트 구상과 소품 준비만 꼬박 4개월이 걸렸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루바토’와 ‘카덴차’로 불리는 웅장한 대저택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곳으로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정서현이 개인 요가 레슨을 받는 공간 역시 뮤지엄 산 내부의 명상관이다.
튜터 강자경이 면접을 보던 장소와 개인 수영장은 강원도 홍천 바회마을에 있는 ‘홍천 세이지우드’다. 효원가 대저택의 입구는 가평의 프리미엄급 골프장 ‘아난티클럽 서울 CC’의 초입에서 촬영했다. 효원의 본가인 카덴차의 내부는 가파른 세 계단이 공간을 지배한다. 1층과 3층을 잇는 수직의 계단과 위아래로 철저하게 분리된 주거 환경은 계급의 차를 극명하게 나타낸다. 은밀한 공간을 더욱 크게 부각해 재벌가에 대한 시청자의 상상력을 끌어내기 위한 제작진의 의도가 담겼다.
상위 1% 라이프
재벌가답게 효원가 곳곳에 놓여 있는 미술 작품들은 극의 서사와 리얼리티를 더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희수가 사는 루바토 1층에는 미술품 보험 등을 들어 모두 진품을 걸고, 정서현이 사는 카덴차에는 일일이 실제 화가들의 동의를 구해 크기가 같은 가품을 걸었다. 가품은 촬영 후 폐기 된다. 캐릭터가 실제로 구매할 것 같은 작품을 선택하는 데 집중했다. 예를 들어 서희수는 부드럽고 따뜻한 색과 느낌의 조각품을 살 것 같아 곡선과 부드러운 색감이 돋보이는 노기쁨 작가의 작품이나 이헌정 작가의 조각품 등을 활용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재벌가 맏며느리 정서현을 눈물 짓게 만든 ‘코끼리 그림’은 드라마를 위해 별도 제작된 소품. 제작진은 촬영 전 코끼리 그림에 대한 회의를 여러 번 했다. 극 중 발달장애 작가가 그린 그림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실제 발달장애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참고하고, 우리에 갇힌 코끼리 그림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콜라주 형식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코끼리 그림을 제외한 전시회 현장에 걸린 그림들은 실제로 발달장애를 가진 성인 작가들의 진짜 작품이다.
한 회장의 서재 마룻바닥에는 블루 다이아몬드 등 귀중품을 보관하는 금고가 설치되어 있는데 특별한 공간이 숨겨진 이 금고 제작에만 2,0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이나정 감독이 작품을 위해 직접 제작 의뢰한 것으로 ‘파나쉬 차선영’ 제품이다. 이밖에도 1,000만원대의 ODE 익스트림 1 USM 에디션 오디오, 루이스폴센 조명, 드비알레 트렌스페어렌트 스피커, 비트라 체어 등 집 안 곳곳에 놓인 유명 인테리어 소품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탄탄한 내공 ‘연기파’ 이현욱
드라마 <마인>의 최대 수혜자 배우 이현욱. 그가 맡은 한지용은 굴지의 대기업 효원그룹 막내아들이자 사생아로 효원의 주인을 꿈꾼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만한 외모와 비상한 두뇌를 가졌지만 공감 능력 제로의 소시오패스다. 매회 몰입도 높은 연기를 선보이고 ‘빌런’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에 눈길이 간다.
연기 엘리트 코스 밟은 수재
끝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국민 빌런인 한지용 캐릭터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현욱의 연기력 덕분이다. 불법 격투기에 거액을 걸고 죽어가는 두 격투기 선수를 보고도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흥분하는 모습, 한 회장의 친아들이 아닌 탓에 친엄마에게조차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원망을 듣고 자란 인간적 아픔의 서사까지. 모두 이현욱의 연기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그는 연기의 엘리트 코스라는 안양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다. 중학생 시절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연기 학원에 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할머니와의 예고 진학 약속을 지키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물론 무명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방황한 적도 있지만, 결국 연기로 돌아오게 됐단다.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까지 오랜 시간 탄탄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은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의 ‘왕눈이 유기혁’ 역할은 웹툰 원작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고시원 사람들 중 가장 빨리 살해당해 2회 만에 하차했지만, 그의 섬뜩한 연기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SBS <모범형사>, JTBC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영화 <#살아있다>와 다수의 연극 무대가 배우 이현욱을 만들었다.
<마인>에서 그는 이보영, 김서형, 박혁권, 박원숙 등 연기라면 자신 있다는 ‘믿보배’들과 함께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오롯이 드러낸다. 극 중 부부로 나오는 이보영에 대해서는 “내가 미혼이고 아이도 없다 보니 부부라는 설정에 있어 표현이 부족할 때가 있다. 내가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줘서 나는 배우기 바쁘다”고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악역 배우는 국민의 욕을 먹으며 성장하는 법. 욕을 더 많이 먹을수록 악역을 찰떡같이 소화했다는 방증이니 즐거울 법도 하다. 그의 SNS를 보면 국민 욕받이 캐릭터를 즐기는 내공이 상당하다.
“감독님이 예언하신 대로 전 쓰레기가 되었습니다. 야호” “내일은 또 얼마나 많은 욕을 먹을까” 등 자조적인 멘트가 인상적이다. 극 중 대척점에 있는 김서형과의 대화 장면에는 “누나한테 진로 상담”이라는 멘트를 달고, “다들 화 푸세요. 저는 테크노를 출 테니”라는 멘트에는 김서형에게 뺨을 맞는 순간 얼굴이 돌아가며 마치 테크노를 추는 듯한 모습의 사진이 함께 있다.
한편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의 신부>로 활동을 이어간다. 상류층 결혼정보회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욕망을 다룬 작품으로 배우 김희선과 함께한다.
신예 옥자연의 발견
<마인>은 신예 옥자연의 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맡은 효원그룹 손자 하준의 프라이빗 튜터 강자경은 첫 등장부터 강렬했다. 주 집사가 메이드 소집에 자신을 부르자 고성을 지르고, 파티 음식을 효원가 사람들이 먹기도 전에 스스럼없이 집어 먹는다.
희수의 드레스를 제 옷처럼 걸치며 노골적인 물질적 욕망을 드러내고 한지용을 유혹하는 등 전형적인 팜파탈의 악역인 줄 알았더니 하준의 친모로 밝혀진다. 하준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계모 서희수에게 고마움과 질투심을 동시에 느끼면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두려울 것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옥자연은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지난 2012년 연극 무대로 데뷔한 후 OCN <나쁜 녀석들:악의 도시>, MBC <투깝스> 등을 통해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쳐왔다. 강렬한 인상과는 달리 큰 반항 없이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전작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020)에서 악귀를 받아들인 ‘백향희’ 역으로 강한 존재감을 나타내며 매회 신스틸러로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