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래가 19금 개그로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다. 데뷔 이래 최대 위기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나래는 유튜버 헤이지니와 함께 유튜브 웹 예능 <헤이나래>에 출연했다. 박나래가 아슬아슬한 개그를 보여주면 헤이지니가 당황해하며 만류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었다.
<헤이나래>는 지난 3월 23일 ‘최신 유행 장난감 체험…’ 이라는 제목으로 ‘암스트롱맨’이라는 남자 인형을 소개하는 영상을 게시했다. 박나래는 속옷만 입은 남자 인형을 들고 “인형의 팔이 어디까지 늘어나는지 보겠다”며 인형의 사타구니 아래로 인형 팔을 쭉 늘리며 남성이 자위행위를 하는 듯한 상황을 연출했다. 제작진은 해당 장면에 ‘어디까지 늘어나지?’의 자막을 띄웠다.
이 영상이 공개된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남성 연예인이 바비 인형으로 같은 행동을 했다면 연예계에서 은퇴해야 한다” “화면에 15세 시청이라고 해놓고 수위가 너무 높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결국 제작진은 영상 공개 하루 만인 24일 해당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고, 이튿날인 25일 박나래는 소속사를 통해 사과의 말을 전했다.
같은 날 인스타그램에 “한 방송을 책임지며 기획부터 캐릭터, 연기, 소품까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저의 책임과 의무였는데 저의 미숙한 대처 능력으로 많은 분께 실망을 안겨드렸습니다. 그동안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는데 저를 믿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라고 심경을 밝혔고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일단락되는 듯했던 논란이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난 4월 29일 강북경찰서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박나래를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위반 혐의로 수사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이 접수됐다고 밝힌 것. 박나래 측은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성희롱이다 vs 코미디일 뿐
논란을 향한 시선은 ‘명백한 성희롱’이라는 의견과 ‘코미디일 뿐’이라는 의견으로 나뉜다. 박나래의 19금 개그를 성희롱으로 구분 짓는 이들은 그녀의 행동이 불쾌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 만약 성별이 바뀌었다면 방송계에서 퇴출당할 수준의 심각한 성희롱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tvN 예능 <온앤오프>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방송인 김민아도 남성 성희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김민아는 유튜브 채널 <왓더빽 시즌2>에서 남자 중학생에게 “에너지가 많은 시기인데 그 에너지는 어디에 푸느냐”라고 질문했고, 남중생은 미소로 대답을 피했다. 이후 그녀는 미성년자에게 성희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질문을 했다고 비난받아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자숙했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콘텐츠상에 시청 가능한 연령을 표시했더라도 모든 연령의 시청자가 자유롭게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유튜브이기 때문이다.
또 이를 선례로 ‘남성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을 향한 성차별적 대우나 언행은 주의하자는 분위기가 자리 잡는 추세지만 역으로 남성에게 건네는 성적 뉘앙스의 말과 행동은 관용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박나래의 행동을 그저 코미디의 한 종류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 타임스>는 “서구 코미디의 기준으로 볼 때 박나래의 행동은 불쾌해 보이지 않는다”라며 성에 대해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는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 남성들은 여성들이 자유롭게 성적인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권리 신장이 되는 현상에 저항하는 일종의 백래시(반발성 공격) 현상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인터넷 시민 단체 ‘오픈넷’은 지난 5월 10일 “성적 담론을 확장하고 소외됐던 여성의 성적 주체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과감한 시도들은 긍정하고 보호해야 한다”며 박나래를 옹호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해당 영상에 대한 논란의 책임을 박나래에게만 지우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성인 개그를 주력으로 하는 박나래가 출연했지만 적당한 수위를 마련하지 않고 연출한 제작진 CJ ENM 스튜디오 와플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 또 함께 출연한 키즈 유튜버 헤이지니는 박나래가 논란으로 뭇매를 맞는 동안 KBS2 시사 교양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는 등 책임에서 한 발짝 물러난 모양새를 취해 비난받았다.
그 후 공식 석상에 오른 박나래
논란 후 직격탄을 맞은 프로그램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다. <나 혼자 산다> 측은 박나래의 성희롱 논란이 불거진 후, 박나래의 사과나 분량 축소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는 즉각적인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박나래의 경찰 조사가 진행된 후인 지난 4월 30일 박나래가 고향에 있는 조부모를 찾아가는 에피소드를 방영했다. 해당 방송에서 박나래의 할아버지는 “사람은 미완성이다. 100% 다 잘할 수 없다.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한테 나쁜 소리를 듣지 말자고 생각하고 노력해라”라고 조언했고, 박나래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시청자는 그녀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에피소드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 후 박나래는 지난 5월 13일 열린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예능상 시상을 위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척해진 그녀는 표정과 행동이 모두 위축된 모습이었다. MC 신동엽은 박나래에게 “최근 들어 마음고생 다이어트로 살이 좀 빠졌다”고 성희롱 논란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했고, 박나래는 “(다이어트를 하는데) 과학보다 더 나은 게 따로 있더라. 진땀이 난다”고 응답했다. 신동엽은 관객에게 박수를 유도하며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박나래는 과거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19금 개그에 대해 “4만 볼트의 전류가 앞에 있다 생각하고 선을 지키는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9금 개그는 ‘내가 하면 장난, 남이 하면 성희롱’이라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의 해석이 가능한 분야다. 국내에서는 서양처럼 19금 개그를 그저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박나래는 정상에 올라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박나래의 성희롱 논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5월 11일부터 15일까지 5일간 <우먼센스> 독자 198명이 논란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1 유튜브 <헤이나래> 속 박나래의 행동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33.9% 단순히 코미디일 뿐.
33.8% 명백한 성희롱이다.
22.2% 다소 수위가 높았다.
10.1% 여자 코미디언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2 박나래의 하차 요구, 적절하다고 보십니까?
67.6% 활동 중지는 과하다. 다만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23.3%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9.1% 방송계를 떠나야 한다.
3 박나래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8.4% 엄격하게 다스려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돼야 한다.
33.4% 과한 처사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28.2% 논란이 젠더 갈등으로 번지는 등 본질을 벗어났다.
4 누구의 책임일까요?
58.8% 제작진, 박나래, 헤이지니까지 모두의 잘못
20.3% 제작진
14.7% 제작진과 박나래
6.2% 박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