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남편과 처음 구한 집은 아주 전형적인 북부식 집으로 작지만 정원이 딸려 있다. 남편이나 나나 정원 일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들인 데도 프랑스인인 남편은 그 작은 땅이 생겨서 신이 났다. 필자에게 정원은 미지의 공간이었는데, 남편에게는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그 집에서 처음 맞은 봄, 우리는 벨기에까지 가서(벨기에는 작물이 싸다) 묘목과 허브, 채소류, 꽃 등을 차 한가득 싣고 왔다. 그리고 주말인 그다음 날 내내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정원에서 하루를 보냈다. 프랑스인은 정원을 참 좋아한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은 남녀노소 불문, 거주 지역 불문, 10명 중 7명이 정원을 가꾼다고 한다. 진정한 애호가는 일주일에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10시간이 넘고, 평균적으로는 약 3시간 정도다.
필자의 집 2층 창문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이웃이 모두 정원에 나와 의자에 누워 책을 읽거나,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기한 재주를 보여주며 주말 햇빛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정원은 개인적인 휴식 공간 외에도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프랑스인에게 ‘올해 첫 바비큐를 하는 날’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날이다. 날씨가 20℃만 살짝 넘어도 필자의 남편은 “이번 주말에는 바비큐를 할 수 있겠는걸” 하고 신난다. 코로나19로 그 횟수가 부쩍 줄었지만 날씨 좋은 봄, 여름, 가을에는 정원이 손님을 맞는 공간이 되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 써서 가꾼다.
집값이 비싼 파리에서 정원은 매우 사치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파리 중심에서도 정원을 가꾸는 부르주아가 있기는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사는 젊은 파리지앵에게 개인 정원은 꿈같은 소리다. 그런 파리지앵 중에도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곳곳에 있는 공용 정원을 이용하는 이들이다.
젊은 층이 대부분인 만큼 이들이 정원을 가꾸는 용도는 매우 실용적이다. 단순한 심신 안정을 떠나, 로컬푸드를 직접 길러 먹겠다는 친환경적 의도가 더 높다. 실제로 정원 가꾸기의 목적은 세대별로 큰 차이가 있는데 50~60대 이상의 노년층은 정원을 심미적 이유로 가꾸고, 20~30대 젊은 층은 환경을 이유로 정원을 ‘텃밭’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 중간쯤에 낀 우리 부부는 심미적인 이유 반, 텃밭 용도 반으로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어 중에서 필자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표현 중 하나가 ‘자르댕 스크레(jardin secret)’다. 말 그대로 번역하자면 ‘비밀 정원’인데, 진짜 비밀스러운 정원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프랑스인이 비밀 정원이라 함은 자기 자신의 깊은 내면의 생각·사고 등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자신만의 취향·취미 등을 의미한다. “그건 나만의 비밀 정원이야”라 함은 자신만의 비밀이니 더 이상 건들지 말라는 뜻을 내포한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소확행’과 비슷하다. 그런 표현이 존재할 만큼 프랑스인에게 정원 가꾸기란 행복을 실천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글쓴이 송민주
4년째 파리에 거주하는 문화 애호가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책을 번역했으며,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등을 제작하고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