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라운드, 치열한 언론 공방전
지난 3월 31일 오후 서초경찰서. 초등학교 시절 후배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기성용(프로축구 FC서울)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분은 ‘고소인’이었다. 기성용 선수는 오후 2시 50분쯤 경찰서 앞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수사기관에서 철저하게 조사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2일, 자신의 성폭력 의혹 제기자들에 대해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고소와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한 첫 법적 공식 행보였다.
사건부터 짚어보자. 지난 2월 24일 법무법인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A씨와 B씨가 전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축구부 생활을 하던 2000년 1〜6월 선배인 기성용 선수 등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폭로했다. 한 초등학교에서 당시 1년 후배였던 A씨와 B씨를 상대로 구강성교를 강요했다는 주장이었는데, 처음에 익명으로 지목됐던 ‘국가대표 출신 스타플레이어’는 곧 기성용 선수로 알려졌다.
처음 폭로가 시작된 지난 2월 24일. 박지훈 변호사는 “(A씨와 B씨가) 가해자들의 먹잇감으로 선택된 이유는 당시 체구가 왜소하고 성격이 여리며 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20여 년이 지난 현재도 날짜까지 특정이 가능할 정도로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덧붙였다. 사건 당시 가해자들이 미성년자였고 공소시효가 지난 만큼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과를 희망한 것으로 보인다.
기성용은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보도된 기사 내용은 저와 무관합니다. 축구 인생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고통받는 가족들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동원해 강경하게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생생한 기억” vs “축구 인생 걸고 나와 무관”
이어 초등학교에서 함께 축구부로 활동했던 사람들의 진술이 이어졌다. A씨와 B씨의 동기라고 밝힌 익명의 제보자는 한 매체에 “축구부 합숙소가 군대 막사처럼 생겨 20~30명이 다 같이 모여서 생활했다. 그런 환경에서 2명을 따로 불러 구강 성교를 강요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또 순천중앙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었던 정한균 씨도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학생들은 전부 코치랑 같이 생활해서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 3월 16일 방영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PD수첩>이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PD수첩>의 서정문 PD는 한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목격했다는 추가 제보자들의 증언이 담긴 녹취 파일을 확보했다. 다만 제보자들이 언론을 통해서가 아닌 법정에서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해 이번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기성용 선수의 법률 대리인 송상엽 변호사(법무법인 서평)는 즉각 반발했다. <PD수첩>이 편향된 시각을 제공했다는 것. 송 변호사는 <PD수첩>에 A씨와 B씨의 육성을 제공했으나 대부분 방송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성용 측은 유트브 체널 <GOAL TV>에 B씨의 음성이 담긴 녹취 파일 8개와 이 사건을 중재하려고 했다는 C씨의 음성 녹취 파일 1개를 공개했다. 해당 파일중 하나엔 B씨가 기성용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이 담겨 있다.
“(사건 보도 후) 우리가 ‘(기성용 선수가 가해자라는 건)오보다. (정정) 기사를 써달라’ ‘기성용 (선수는 가해자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박지훈) 변호사 입장에서는 이걸 오보라고 해버리면 대국민 사기극이 되니까.”
기성용 측이 해당 녹취를 공개한 후 A·B 씨의 변호를 맡은 박지훈 변호사는 지난 3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B씨의 입장을 전하며 반박했다. B씨는 “기성용 측 변호사가 악의적으로 (녹취 파일을) 왜곡 편집했다. 기성용 선수 측은 나에게 여러 루트를 통해 집요한 회유와 압박을 가했다. 심하게 불안감과 두려운 마음을 느껴서 잠시나마 ‘기성용 선수 측이 원하는 대로 사건을 없는 것으로 해줄까?’라는 바보 같은 마음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계 악습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지훈 변호사는 지난 4월 14일 <우먼센스>와의 통화에서 “피해자가 심적으로 힘들어할 때, (폭로를 철회하라는) 회유의 전화를 받았다. 70여 통에 달하는 전화를 받고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주고받은 대화를 기성용 선수 측에서 악의적으로 편집해 공개했다. 우리도 해당 통화의 녹취를 갖고 있는데 피해자가 ‘제발 그만하라’고 말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고 전했다.
이후 3월 23일 A·B씨 측 대리인 박지훈 변호사 역시 중재자 역활을 하려 했다는 C씨와 B씨의 통화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해당 통화에서 C씨는 “폭로 기사가 오보라는 기사를 내면 기성용이 사과할 것이다. 형(기성용)도 잘못한 게 있다더라”고 말한다. A·B 씨 측은 C씨와의 통화를 근거로 기성용 측이 회유를 권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기성용 선수 측은 “C씨가 부탁 없이 자발적으로 중재에 나선 것”이라고 C씨와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한편, 양측이 공개한 음성 녹취 파일은 통화의 일부분만 편집돼 인용된 것으로, 전후 맥락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음성 녹취만으로 과거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2라운드, 본격화된 고소전
기성용 선수는 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자리에서 “진실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A4 용지로 총 240장이 넘는 증거와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실무근을 주장했다. 반면 A씨와 B씨 측은 성폭력 사실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를 모두 법정에서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경찰은 A씨와 B씨 측에 소환 통보를 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박지훈 변호사는 <우먼센스>와의 통화에서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이라 우리가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드디어 법정으로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에 영향을 줄까 봐 공개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피해자들의 말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박 변호사는 “기성용 선수가 FC서울로 이적하면서 언론에 자주 노출되자 피해자들이 가슴속에 묻어뒀던 기억이 떠올라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가족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돼 힘들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성용 측의 송상엽 변호사는 지난 4월 16일 <우먼센스>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수사가 끝날 때까지 말을 아끼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 “아직 과일이 익지 않았다. 진실이 밝혀진 후 더욱 풍성한 내용으로 취재에 협조하겠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법조계에서는 20여 년 전 사건의 진위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A씨와 B씨에게 불리한 상황이라고 전망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를 객관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다수의 진술이나 한두 명의 아주 구체적인 진술이 있어야 하고, 오래된 사건일수록 진술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 예를 들면 일기나 당시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 휴대폰 속 문자 같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입증하지 않는다면 수사기관이 폭로에 대해 ‘사실로 보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기성용 선수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상 행보로 돌아온 기성용
수사기관으로 사건이 넘어가면서 기성용 선수의 아내이자 배우 한혜진은 SNS 활동을 재개했다. 지난 4월 7일 자신의 SNS에 울산 원정에서 패하고 온 기성용 선수를 향해 딸이 쓴 편지를 공개했다.
“아빠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괜찮아. 그래도 재밌었어.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울산이 이겨서 속상했지. from 사랑해 아빠.”
한혜진은 편지를 찍은 사진과 함께 “울산에서 올라오는 아빠를 기다리다 편지를 써놓고 (딸이) 잠들었다. 경기에서 지면 제일 속상해하는 딸, 예쁜 마음, 한글 공부는 다시 열심히 하자”고 적었다.
기성용 선수를 둘러싼 논란 이후 첫 SNS 게시물이었다. 또 지난 4월 13일엔 “축하축하. 감사”라는 글과 함께 기성용 선수의 ‘EA 이달의 선수상’ 수상을 축하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논란 이후 첫 경기였던 지난 2월 27일 경기에서 빠르게 교체된 기성용 선수는 그 후 3월 한 달간 6경기에 출전해 3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했다. 한편 수사 결론은 이르면 2~3개월 안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폭로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만큼 사건 내용 자체가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양측 자료를 받고 취합해 검토한 뒤 결론만 내리면 되는 사건이다. 빠르면 한 달 안에도 처분이 가능하지만 지켜보는 눈이 많은 만큼 경찰도 2~3개월에 걸쳐 천천히 사건을 처리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기성용 성폭력 논란 타임라인
2. 24
▶A·B 씨 측, 보도 자료를 통해 21년 전 ‘국가대표 출신 스타플레이어’의 성폭력 폭로
▶성폭력 가해자로 기성용 지목
3. 7
기성용 기자회견 “사실 밝히고 법적 책임 물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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