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냅의 유고 에세이집 <명랑한 은둔자>를 먼저 읽어본 이가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부분이 그 사람과 비슷한 걸까 생각하며 읽었다. 읽는 도중에 관심의 초점이 바뀌었다. ‘이건 내 얘기잖아.’ 읽고 나서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았다. 이 책을 낸 출판사의 편집자는 “독자들이 ‘내 이야기 같다’며 읽는다”고 말한다. 역자는 후기에서 “내가 쓴 글 같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난 냅처럼 심각하진 않으니까 냅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난 냅처럼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명료하게 분석하고 쓸 줄 모르니까 역시 내가 더 한심하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시인 김소연은 추천사에서 “캐럴라인은 내 친구 같고 나 자신 같다”고 말한다.
캐럴라인 냅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사적인 비밀과 만난다. 누군가 내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나도 그래”라며 다른 사람에게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것처럼 나도 그의 글을 읽으며 내 수줍음과 외로움, 유대감과 기대와 배신감, 사랑과 우정, 상실감,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중독의 순간을 떠올린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이 둥실둥실 문장으로 떠오른다.
그의 에세이는 촘촘하게 우리 삶에 밀착돼 있다. 근본적인 인간관계의 문제를 살피기도 하고, 조립식 가구 설명서도 제대로 못 읽는 자신을 희화화하기도 한다. 부모의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해보다가 왜 입을 옷이 없는지 투덜대기도 한다. 그는 사뭇 진지하게 말한다. “자연발생적 옷장 기능 상실 증후군은 어떤 사람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옷들이 갑자기 이유 없이 죄다 부적절하고, 맞지 않고, 흉하고, ‘하여튼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증상으로는 불안, 스트레스, 짜증의 눈물, 강박적인 패션 잡지 탐독, 구슬픈 어조로 ‘입을 옷이 없어’ 하고 자주 말하는 것 등이 있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예후는 심각하다.” 자, 당신의 이야기 같은가?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쌍둥이 언니와 각별한 유대감을 나누며 자라났다. 수줍음 때문에 다른 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 어려워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기자로, 작가로 꾸준히 글을 쓰면서 살았다. 첫 책은 잡지에 연재했던 칼럼을 정리한 <앨리스 K.의 인생상담>이다. 37살에 두 번째 책인 <드링킹>을 출간했는데 알코올의존증 경험을 담은 이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불만족스러운 연애와 개에 대한 사랑을 담은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 다이어트 강박증과 섭식장애에 대해 털어놓은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를 펴냈다.
그리고 2020년 4월에 폐암 말기를 선고받았다. 42살이었다. 그는 폐암 선고를 받고 7주 후에 죽었는데 그사이에 오랜 연인인 모렐리와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독신 여성이에요. 38살이고, 좀 외톨이처럼 살아요. 아휴, 미안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지금이면 진작 결혼했어야 하는 건데”라는 말 대신 자신을 “명랑한 은둔자”라고 산뜻하게 정의할 줄 알았던 사람. 그의 책을 읽는 경험은 나 자신과 닿았다 떨어졌다 닿는 것에 가깝다. 그가 썼을 더 많은 책을 읽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한다. 그 모든 “나 자신 같은”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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