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리고 여자
여자가 세상에 복수하는 법
폴란드 영화 <브레슬라우의 처형>(2018)은 묵시록적 연쇄살인을 파헤치는 두 여자의 이야기다. 소름 끼치도록 스릴 넘치는 작품은 아니지만 '오호!' 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결정적 매력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매력은 살인 방식이다. 영화 초반, 팔다리 잘린 소의 몸통 속에서 사체가 발견된다. 다음 피해자는 경주마 두 마리에 묶인 채 참수당한다. 피살자 모두 죽어 마땅한 악인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다음 살인 역시 짓궂은 유머를 품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웃을 대목이 여럿이다.
두 번째 매력은 캐스팅이다. <브레슬라우의 처형>에서는 영웅도 주요 악당도 여자다. 영화 속 연쇄살인 동기로는 드물게 돌봄노동 문제가 언급되기도 한다. 대사도 거의 여자들 몫이다. 남자는 사건 현장에서 사체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형사, 리포터에게 구박받는 카메라맨, 무능한 정치인 등 우스꽝스러운 모습뿐이다. 남배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는 동안 여자는 민폐녀, 섹시녀, 청순녀, 바가지 긁는 아내 정도로만 스쳐 지나가는 영화를 보면서 여성 관객이 느낀 짜증을 이 영화를 통해 남자들도 잠시나마 체험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감독 겸 각본가 패트릭 베가는 남자다.
주인공 '헬레나'는 유능하지만 성질 고약한 형사다. 비대칭 투블록 머리와 꺼칠한 외모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 동유럽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불만 많은 펑크족 출신 중년 여성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헬레나까지만 해도 관객은 이 영화가 정통 상업영화의 캐스팅 문법을 얼마나 따를지, 혹은 배반할지 알 수 없다.
프로파일러가 지원을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헬레나가 수사권을 빼앗길까 걱정하는 대목에서 관객은 미국 드라마식 FBI-경찰 앙상블을 상상하며 부패한 남자 혹은 어리고 예쁜 여자가 등장할 차례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파일러 '마그다'는 늘어진 트레이닝복 차림의 풍채 좋은 여성이다. 미국 영화에서 이런 여자가 등장하면 십중팔구 가난하고 심술궂은 루저다.
하지만 마그다는 현장을 휙 보자마자 이것이 도시 역사에서 착안한 공개 처형이며 앞으로 4건의 살인이 더 벌어질 거라 분석한다. 헬레나도 그 명석함에 입을 다문다. 케케묵은 관습을 아무렇지 않게 쓱 밟고 지나가는 쿨함이 캐스팅에서도 드러난다.
세 번째 매력도 그 쿨함에 관한 것이다. <레이더스>(1981)에서 원주민 검투사가 재주 부리는 걸 지켜보던 '인디애나 존스'가 갑자기 총으로 빵 쏴버리는 장면이 아직도 의외의 격투 신으로 거론되는데, 이 영화의 범인 퇴장 신이 그에 비견될 만하다. 한 많은 범인의 넋두리, 정의로운 형사의 훈계 따위는 없다. 그걸 보면 감독이 '소름 끼치는 스릴러'를 못하는 게 아니라 구질구질함을 질색해서 이런 영화가 나왔구나, 깨닫게 된다. 그 덕에 우리는 자기과시욕 따위 없이 순수한 분노를 품고 무소의 뿔처럼 세상에 돌진하는 여성 안티히어로를 보게 됐다. 나는 지금 '내가 사랑한 영화 속 악녀' 순위를 다시 쓰고 있다.
글 이숙명(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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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밤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 영화 <부당거래>와 <신세계>의 각본을 맡은 박훈정 감독의 연출작으로 배우 차승원, 엄태구, 전여빈이 출연한다. 4월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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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더
런던에서 평화로운 삶을 보내던 한 노인이 딸을 비롯해 자기 자신까지 의심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전 세계 영화제 117개 부문 노미네이트된 화제작으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한 안소니 홉킨스가 주연이다. 4월 중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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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모든 가족이 비밀로 간직해오던 사건을 두고 서로를 이해해가는 이야기. 가족 간의 서사를 섬세하게 다뤄 국내 굴지의 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배우 유재명, 염혜란 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4월 중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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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
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작은 밴과 함께 낯선 길 위의 세상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길 위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다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4월 15일 개봉
TV
SBS <모범택시>
베일에 가려진 택시 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 기사 '김도기'(이제훈 분)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범죄 액션 오락물로 인정받은 오상호 작가가 대본을 집필했다. 상반기 기대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배우 이제훈, 이솜, 김의성 등 굴지의 배우들이 호흡을 맞춘다. 4월 9일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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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언더커버>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안기부 요원 '한정현'(지진희 분)과 정의를 위해 공수처장이 된 인권 변호사 '최연수'(김현주 분)의 이야기로, 거대 세력에 맞서 사랑과 정의를 지키려는 두 사람의 치열한 싸움이 뜨겁게 펼쳐진다. 배우 지진희와 김현주를 비롯해 허준호, 정만식, 한고은, 연우진, 한선화 등이 연기 호흡을 맞춘다. 4월 중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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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로스쿨>
최고의 명문 로스쿨 교수와 학생들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얽히게 되면서 펼쳐지는 캠퍼스 미스터리 드라마. 살벌한 로스쿨 생존기를 통해 예비 법조인들이 법과 정의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송곳> 등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석윤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며 배우 김명민, 이정은, 김범, 류혜영, 고윤정, 현우 등이 출연한다. 4월 14일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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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 <다크홀>
싱크홀에서 나온 검은 연기를 마신 변종 인간들과 그 세계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그린 서바이벌 드라마. 영화 <더 폰>을 연출한 김봉주 감독과 드라마 <구해줘 1> <타인은 지옥이다> 등 강렬한 서스펜스를 선사해온 정이도 작가가 집필한 작품이다. 배우 김옥빈, 이준혁이 주연을 맡았다. 4월 중 첫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