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 2>에서 유독 낯익은 참가자로 화제를 모은 허찬미. Mnet <프로듀스 101>과 JTBC <믹스나인>에 이은 세 번째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이었다. 다시 도전하기까지 망설임도 있었으나 그에게 무대만큼 간절한 꿈은 없었다. 14살 때부터 5년간 연습생으로 지내다 지난 2010년 혼성 그룹 '남녀공학'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그룹 내 멤버의 연이은 논란으로 해체 수순을 밟았고, 이후 유닛 그룹 '파이브돌스' 활동도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줄곧 아이돌로 활동해왔던 그의 <미스트롯 2> 출전 소식에 의아하다는 반응이 잇따랐지만, 허찬미는 다시 한번 대중 앞에 섰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향상되는 실력에 호평이 이어졌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무기로 최종 11위라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
아이돌에서 트로트 가수로
<미스트롯 2>로 큰 관심을 받았어요. 하루하루 설렘 속에 지내고 있어요. 기대 이상으로 큰 사랑을 받아서 얼떨떨하고, 아이돌로 활동했을 때 느껴보지 못했던 높은 연령층의 팬이 생겨서 정말 감사해요.(웃음)
아이돌 출신의 <미스트롯 2> 도전,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쉬웠다면 거짓말이죠. 잘 몰랐을 때는 트로트를 단순히 '성인 가요'라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선입견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게 된 건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 때문이었어요. 부모님이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다가 만났는데, 당시 외할아버지께서 가수는 '딴따라'라며 강하게 반대해 아버지가 가수를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하셨대요. 지난해부터 트로트 열풍이 불면서 아버지가 현역 가수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노래하기 위해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나이 때문에 출전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속상해하셨고요. 그 모습에 출연을 결심했어요. 결혼 후 가정에 헌신하셨던 아버지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 대신 무대에 서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트로트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걱정 반, 기대 반? 제가 처음에 트로트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왜 장르를 전향하려고 하는지 의아해하는 반응이었는데, 방송 이후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모습으로 무대에 서는 게 걱정됐던 거 같아요.
지금까지 총 세 번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그만큼 절실했나요? 네. 어릴 적부터 줄곧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좌절할 일도 많았지만, 부모님께 제 길을 잘 가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은 두 번 참가해도 많이 하는 거라고 하는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이 컸던 거예요.
이미 얼굴이 알려진 가수라서 부담도 컸을 거 같아요. 맞아요. 그동안 보여줬던 무대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부담감이 따랐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하는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고요.
트로트 특유의 창법을 구사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요? 너무 어려웠어요.(웃음) <미스트롯 2> 출연을 결심하고 창법을 바꾸기 위해 레슨을 받았는데 그동안 불러왔던 방법과 너무 달라서 목이 상하더라고요. 경연마다 목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 속에 무대를 마쳤던 게 기억나네요.
이번 방송을 통해 '오뚝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무슨 뜻인가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웃음) 성과가 좋지 않아도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시 도전하는 모습 자체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셔서 붙은 별명이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 들려줬던 보이스 컬러와 완전히 다른 창법으로 대중 앞에 서는 게 걱정도 됐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는 따뜻한 말을 건네주시고 별명까지 만들어주셔서 무대를 즐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미스트롯 2>를 통해 가장 친해진 멤버 한 명을 꼽으면요? 한 명? 너무 어려운걸요?(웃음) 지금 떠오르는 건 '뽕가네'로 같이 활약했던 (은)가은 언니요. 한 명을 꼽기는 했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참가자 전부 '내가 이겨서 다음 라운드에 꼭 가야지'라는 마음보다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연습 과정이나 힘든 일, 잘 풀리지 않는 부분들을 서로 공유하고 배도라지즙을 나눠 마시면서 격려했죠.
본인에게 <미스트롯 2>가 남긴 것은 뭔가요? 음악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미스트롯 2>가 아니었다면 트로트 도전은 생각해보지 못하고 해오던 음악만 했을 거예요. 또 도전과 성장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 프로그램이기도 해요.
나는 왜 계속 실패하는 걸까, 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마다 빛을 볼 수 있는 시기가 다른 건데 왜 스스로를 괴롭혔을까 싶어요.
자신만의 무기, 재능을 꼽으면요? 퍼포먼스요.(웃음) 현역 트로트 가수 선배님들을 보면 리듬을 타거나 작은 동작을 가미하는 정통 트로트를 선보이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춤, 퍼포먼스를 추가해봤어요. 이게 통할까 싶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퍼포먼스적인 요소를 연구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데뷔 11년 차입니다. 아이돌로 활동했을 당시 함께 무대에 올랐던 다른 그룹들의 활동을 보면 어떤가요? 예전엔 부러웠어요. 처음에 몸담고 있었던 SM엔터테인먼트에서 같이 연습생 시절을 보냈던 가수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마냥 축하해주지 못했어요. '나는 왜 안 될까?', '나는 왜 계속 실패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거듭했던 거 같아요. 철없는 생각이었죠.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려고 애썼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마다 빛을 볼 수 있는 시기가 다른 건데 왜 스스로를 괴롭혔을까 싶죠. 이제는 마음 편하게, 그리고 가장 크게 동료들의 행복을 축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 거 같아요.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소속됐던 그룹들이 해체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맞아요. 가수를 하면 안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고, 실제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특히 <프로듀스 101> 출연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추측성 논란이 난무해 외출이 어려울 만큼 마음이 피폐해졌어요.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으로 방송 출연을 한 건데 근거 없는 말, 논란이 이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니까 자존감도 떨어지고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무대도 못 하게 됐고요.
가장 큰 상처가 됐던 말, 지금도 기억나나요? "얘는 뭘 해도 안 된다"는 말이오. 연습생 기간도 길고, 데뷔한 지도 오래됐고, 소속됐던 그룹들의 성과도 좋지 않아서 나온 말 같은데 저에게는 큰 상처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웃음) '꼭 증명해내고 말겠다'는 문장을 마음에 새기고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무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데 집중했어요.
응원하는 사람도 정말 많죠. 기억에 남는 응원이 있나요? 데뷔했을 때부터 꾸준히 저를 찾아주는 팬의 응원이오. 제가 <미스트롯 2>에 출연한다고 기사가 났을 때 반가워하지 않았던 친구예요. 아이돌로서 빛을 보지 못해 트로트로 전향한 게 아니냐고 물어봤던 팬인데, 방송을 보고 난 뒤에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면서 트로트도 잘 어울린다며 앞으로도 응원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또 SNS 메시지로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 이름을 밝히고 응원을 보내주시는 중장년층 팬들의 모든 말이 기억에 남아요. 아이돌로 활동할 때 받았던 사랑과 결이 달라서 귀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가족. 언제나 저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도전을 거듭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앞으로 활동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서 부모님께 보답하고 싶습니다.
효녀인가요?(웃음) 돈 못 드리는 효녀?(웃음) 당장 부모님께 돈 봉투를 건네지는 못하지만, 스케줄이 없을 때는 가급적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위로 여덟 살 터울의 언니가 있어 부모님 연세가 많은 편인데, 막내인 제가 애교를 피우거나 작은 부분이라도 옆에서 도와드리면 크게 좋아하시더라고요. 꼭 성공해서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도움이 되는 딸이 되는 게 꿈이에요.
가요계 롤 모델은 누구인가요? 이효리 선배님이오. 어릴 적부터 이효리 선배님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어요. 노래, 퍼포먼스, 춤, 예능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다재다능한 모습을 배우고 싶죠. 소신 있는 행보와 독보적인 존재감도 선배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흘러도 즐겨 듣는 노래를 물어본다면 선배님의 '유고걸(U-Go-Girl)'이에요.
인생 노래 한 곡을 꼽으면요? 아버지의 노래요. <미스트롯 2> 결승전에 올라가면 인생 곡을 부를 수 있는데, 저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아버지의 노래를 불렀을 거예요. 아버지가 현역 트로트 가수이실 때 '오동필과 둘바라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셨거든요. 그때 노래 중에 '울지 마세요'를 가장 좋아해요. 지금까지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잘 이끌었고, 최고의 아버지라는 걸 '울지 마세요'라는 노래를 통해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솔로 앨범으로 찾아뵙게 될 거 같아요. 아직 타이틀곡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스트롯 2>을 통해 저를 알게 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하고자 기존에 해왔던 음악에 트로트곡도 포함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기회가 된다면 방송에서 보여줬던 퍼포먼스가 가미된 트렌디한 트로트를 앞으로도 들려드리고 싶고요.
가수 허찬미, 인간 허찬미 각각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가수 허찬미로서는 '힘이 나는 사람'. 제 무대를 보면서 힐링됐다는 분들이 계셨는데 지금까지 들었던 가장 큰 칭찬이 아닐까 싶어요. 우울할 때 제 음악을 듣고 기운이 났으면 좋겠고, 제 무대를 통해 웃을 수 있는 분들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인간 허찬미로서는 '평범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래서 본래의 모습으로 편안하게 대중에게 다가가려고요. 공인이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