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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페스'가 뭐길래?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 ‘알페스’를 둘러싼 논란들.

On March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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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미 캐릭터 다시 잡아주세요”. 그룹 아이오아이(I.O.I) 출신 가수 전소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글이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팬픽’에 대한 피드백이었다. 함께 아이오아이로 활동했던 가수 청하와의 가상 일화로 구성된 해당 팬픽에는 “너 지금 당장 바지랑 팬티 벗고 엎드려” 등 수위가 높은 내용이 담겼다.

실존 인물을 로맨스 관계로 엮어낸 소설 알페스(RPS, Real Person Slash)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알페스는 주로 남성 연예인이나 남성 아이돌을 등장인물로 내세우며 동성 커플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아이돌 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1990년대 말 1세대 아이돌을 대상으로 팬픽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알페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성시원(정은지 분)’이 반에서 팬픽을 보다가 걸리는 장면이 나오듯 국내에서도 한 시대의 유행으로 자리매김했다. 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대상으로 소설을 만들어 공유하는 형태로 생산됐던 알페스는 최근 들어 예능, 드라마 등에 출연하는 캐릭터 간의 ‘로맨스물’로 확장했다.
 

현행 처벌 수위는?

알페스에 대한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특정 인물이 등장하는 성적 목적의 ‘허위 영상물·음성물’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제작·반포할 시 처벌하도록 하지만, 이때 글이나 그림은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성립도 까다롭다. 명예훼손이 되려면 사실 혹은 허위가 입증돼야 하는데 알페스는 ‘허구’의 이야기로 사실이나 허위에 속하지 않는다. 다만 알페스에 등장하는 인물이 미성년일 경우에는 아동·청소년보호법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상황이 이렇자 알페스에 포함된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 등장인물이 실존 아이돌이라는 점에서 도 넘은 내용에 한해 처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알페스에 등장하는 당사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벌법에 글, 그림까지 포함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현행법상 알페스에 딥페이크와 같은 편집물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며 “글이나 그림에 나타난 표현을 성범죄 처벌 조항에 포함하면 대부분의 창작물이 성범죄 성립이 가능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팬픽으로 시작해 성범죄로

이전부터 소비돼온 알페스가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는 ‘수위’ 때문이다. 알페스 장르 가운데 도를 넘는 성적 대상화, 연출 등이 문제시되는 것이다. 실제 SNS를 비롯해 팬카페 등에서 확산하고 있는 알페스에는 선정적인 내용이 담겼다.

방탄소년단(BTS), 엑소, 세븐틴, 위너 등 탄탄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룹 멤버들의 실명으로 쓰인 일부 알페스에는 성관계를 연상케 하거나, 가학 행위 같은 설정이 포함되기도. “OO의 손이 XX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OO는 더 강하게 나갔다” “입맞춤을 해오는 OO에 XX는 저항했지만, OO는 팔을 더 세게 잡았다” “방 안에서는 거센 숨소리가 들렸다” 등의 표현을 비롯해 대상이 되는 연예인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줄거리가 전개된다.

알페스 논란이 수면으로 떠오른 건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에서 시작된 여성 성적 대상화가 지적되면서다. 소위 ‘남초 커뮤니티(이용자 가운데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부 남성 이용자들이 이루다를 성적으로 다루는 방법 등을 게재하자 인공지능 윤리 논란이 일었고, 이에 반발한 남성들이 ‘알페스’를 문제 삼아 반박한 것이다.

알페스에 대한 논쟁은 청와대 국민 청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1월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성년 남자 아이돌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알페스 이용자들을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아이돌이란 직업군 특성상 피해자의 상당수가 미성년자이거나 사회 초년생인데 잔인한 성폭력 문화에 노출돼 받을 혼란과 고통이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라며 “이용자가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를 정도로 만연하게 퍼진 문화”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알페스 생산·소비자들이) 아이돌을 소비해주기에 아이돌 시장이 유지되고 있으니 소속사도 우리를 고소하지 못할 거라는 후안무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날 n번방과도 같은 수많은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들의 태도를 떠오르게 한다”며 “그 누구라도 성범죄 문화에서는 성역이 될 수 없다”며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해당 청원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정치권에서도 알페스의 문제를 인식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19일 알페스 등 아이돌 성 착취물 제조자와 유포자 처벌을 위한 수사 의뢰서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당시 하 의원은 “(알페스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 폭력과 범죄의 문제”라며 “신종 성범죄로 떠오른 알페스 제작자와 유포자를 일괄 소탕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의 n번방’이다?

알페스 논란은 성별 간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알페스의 수위가 ‘딥페이크’나 ‘n번방 사건’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하나의 ‘팬덤 문화’로 소비돼온 알페스와 강력 성범죄인 n번방 사건, 딥페이크를 같은 선상에 둘 수 없다고 반박한다.

딥페이크는 포르노 영상, 나체 사진 등에 실존하는 여성의 얼굴을 합성한 성 착취물로 실제 많은 여자 아이돌이 딥페이크를 당한 사실이 알려진 성범죄다. n번방 사건도 10대 미성년자를 비롯해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가학 행위를 저지른 강력 성범죄다.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n번방을 개설해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가해자들의 신상이 줄줄이 공개될 만큼 중대한 범죄로 꼽히기도.

일각에서는 알페스가 아이돌 가수를 소재로 하지만 망상에 불과해 n번방, 딥페이크와 같이 성 착취나 성적 대상화로 이어지는 성적 지배구조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알페스 이용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알페스를 성범죄와 동일시하는 시각에서 나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알페스는 권력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억압하는 범죄적인 성격이 아닌, 팬심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전문가들도 알페스 논란을 다른 성범죄와 동일시하며 접근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제2의 n번방’이라는 수식어로 젠더 갈등을 조장하기보다 신상 정보를 악용한 성적 대상화를 근절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우먼센스>와의 통화에서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성적 괴롭힘이라는 것, 가해자의 참여가 확장성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피해 심각성을 같은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알페스’ 논란 언급한 래퍼들

  • 쿤디판다

    래퍼 쿤디판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페스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그는 “남녀 막론하고 피해자의 성별과 관련 없는 범죄”라며 “딥페이크, 알페스 다 없어져야 한다. 저도 며칠 전에 저를 엮어서 누군가가 쓴 소설을 누가 보내줘서 보고 정신이 아득해진 기억이 있다”며 알페스 이용자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를 독려했다.

  • 키디비

    래퍼 키디비는 알페스를 문제 삼은 래퍼들을 지적하며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언제부터 한국 힙합이 성희롱에 이렇게 예민했지? 다들 입 다물고 있었던 거 아닌가?”라며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저 웃음뿐”이라고 했다. 한편 키디비는 과거 래퍼 블랙넛이 자신을 향한 성적 모욕이 담긴 가사를 쓴 것에 대해 블랙넛을 성폭력 범죄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과 모욕 혐의 등을 적용, 고소한 바 있다.

  • 비와이

    래퍼 비와이는 알페스, 딥페이크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을 공유하며 청원을 독려했다. 그는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 알페스는 성범죄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에 알페스가 취향이라고 주장하는 네티즌을 향해 “나의 회사 아티스트는 성범죄가 취향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이어 그는 딥페이크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골자의 청원을 올리며 “끔찍하다”고 비판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 캡처, 네이버 블로그 검색 결과 캡처, 각 연예인 인스타그램
2021년 03월호
2021년 03월호
에디터
김연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 캡처, 네이버 블로그 검색 결과 캡처, 각 연예인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