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궁전이 오늘날의 베르사유궁전이 된 데는 석유왕이라 불리는 미국 록펠러 가문의 영향이 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궁전은 방치된 채 낙후돼 있었다. 록펠러는 두 차례에 걸쳐 엄청난 기부를 했고, 그 덕분에 파괴됐던 성의 지붕과 트리아농궁전을 복원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미국의 갑부들을 비롯해 프랑스의 유명 인사들과 기업들도 베르사유궁전의 후원자, 즉 메세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부·메세나 문화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활성화됐다. 관람이 불가능해지자 베르사유궁전을 돕겠다는 도움의 손길이 늘어난 것이다. 전국 봉쇄령으로 경제적 타격이 컸던 기업들도 기부금 지원을 끊지 않았다. 이런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 덕분에 베르사유궁전은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순간에도 분주하게 앞날을 준비하고 있다.
베르사유궁전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역사 유적지를 방문하지 못한다는 것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베르사유궁전은 18~19세기 궁전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무수한 내부 장식(커튼, 카펫, 가구 등등)과 정원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무수히 많은 고성이 있지만, 베르사유만큼 가구가 완벽하게 복원되고 정원이 잘 가꿔진 성은 드물다.
이토록 많은 내부 장식과 드넓은 정원 상태를 유지·보수하려면 700명이 넘는 장인과 직원이 필요하다. 만약 베르사유궁전이 없어진다면 이곳을 돌보는 수많은 장인이 일자리를 잃는 동시에 장인의 기술도 맥이 끊어져버림을 의미한다.
베르사유궁전의 타피스리 아틀리에의 감독인 제롬 르북은 “우리 아틀리에에서는 18~19세기 장인들과 똑같이 작업한다. 미술 역사책에서나 봤던 과거의 가구를 내 손으로 직접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고 말한다. 베르사유궁전의 아틀리에에서는 정기적으로 젊은 수습공들을 받아 훈련하고, 무형 유산인 장인의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이렇듯 베르사유궁전은 프랑스인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풍부한 문화의 산물이다. 베르사유궁전에서는 지난해 여름까지 방학에 바캉스를 떠나지 못하는 프랑스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궁전의 문을 열기도 했다.
프랑스의 에머리지 그룹에서 지원한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던 이 행사는, 긴 여름방학 내내 시에서 운영하는 센터에 맡겨지는 파리 외곽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베르사유궁전 휴무일에 아이들만을 위해 문을 열고 특별 관람을 하게 한 일이었다. 베르사유 근처에 살아도 베르사유궁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이 아이들은 (대부분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 전문 가이드가 이끄는 설명에 푹 빠져 온종일 베르사유궁전을 놀이터 삼아 뛰어다닐 수 있었다.
이렇듯 프랑스인에게 베르사유궁전이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 장인 기술, 메세나 정신이 담긴 살아 있는 삶의 터전이다.
글쓴이 송민주
4년째 파리에 거주하는 문화 애호가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책을 번역했으며,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등을 제작하고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