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10월 13일.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목동 이대병원에서 16개월 영아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의 이름은 정인이(입양 후 안율하). 위탁모를 거쳐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아이였던 정인이는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응급실에서 생을 멈췄다.
의료진은 처참한 정인이의 상태에 분노했다. 찢어진 장기에서 발생한 출혈이 복부 전체에 가득 차 있어 제대로 된 음식 섭취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팔과 쇄골, 다리는 양쪽 모두 골절돼 있었다. 부검 결과 외력에 의한 장 파열이 사망 원인으로 나왔다. 강한 외부적 충격이 아니면 불가능한, 췌장 절단 상태가 지속돼 숨을 거뒀다는 진단이었다.
의료진이 발견해 드러난 학대 혐의
의료진은 곧바로 양부 안 아무개 씨와 양모 장 아무개 씨를 경찰에 학대 혐의로 신고한다. 양부와 양모는 혐의를 부인했고, 특히 췌장 절단에 대해서는 “소파에서 떨어뜨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파에서 떨어져 사망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유성호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소파에서 떨어져 16개월 아이가 숨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라며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장간막과 췌장 파열이 발견됐고 다양한 부위, 다양한 시기의 상처가 보였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부검 결과 정인이의 갈비뼈에는 시기가 다른 것으로 추정되는 4곳의 골절이 있었다.
언론 취재로 드러난 안 씨 부부는 ‘천사인 척하는 악마’였다. 입양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고 입양 가족 모임에 참여하는 등, 정인이를 입양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어느 특별한 가족>에 출연 당시 입양 가족이라며 따뜻한 가족인 양 인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인이는 방송 12일 후 결국 숨을 거뒀고, 언론 취재가 시작될수록 충격적인 학대 정황이 드러났다.
차 뒷좌석에 친딸을 태우면서 옆구리에 정인이를 끼고 있거나, 짐짝처럼 정인이를 던지는 것을 봤다는 제보자들의 진술이 나왔다. 아이를 살펴볼 기회가 많은 어린이집에서는 더 많은 학대 정황을 알 수 있었다. 온몸에 멍이 든 정인이의 몸 상태는 물론,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여러 차례 부모에게 얘기를 전했지만 학대는 멈춰지지 않았다. 어린이집 CCTV에는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정인이의 상태를 얘기하는 교사에게 양부가 “걸어”라고 하며 데리고 가는 모습도 언론에 공개돼 공분을 자아냈다.
이처럼 지속적인 학대 정황에 어린이집 측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거나 지난해 5월과 6월, 9월에 아동학대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학대는 없었다”는 양부모의 반발에 곧바로 수사를 접었다. 매번 무혐의 처분을 받아 정인이는 안 씨 부부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속되는 학대 속에 정인이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정인이가 생사를 오가는 아찔한 순간에서조차 양모는 ‘공동구매’를 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양모 장 씨는 정인이가 응급실에 있던 순간 어묵 공동구매를 추진했고, 사망 다음 날에는 어묵 공동구매자에게 연락해 “애들 데리고 놀이터에서 놀까요?”라고 물은 뒤 첫째(친딸)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함께 놀았다고 한다. 정인이 사망 후에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장 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고 남편 안 씨는 아동학대와 방조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경찰로 향하는 분노
이처럼 정인이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경찰의 무능한 대응이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살릴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매번 정인이를 안 씨 부부에게 돌려보낸 것은 경찰이었기 때문.
지난해 9월 23일에는 소아과 진료에서도 학대 정황이 포착됐다. 아동보호기관 관계자가 동행한 소아과 진료에서 소아과 전문의는 정인이를 진료한 뒤 “입안에 상처가 심각하다. 일주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다고 해서 몸무게가 1kg 가까이 빠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학대를 의심했다.
하지만 경찰은 앞선 두 차례(2020년 5월, 6월)의 신고 접수 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단순 구내염이라는 양모 장 씨의 단골 소아과 진단을 근거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양부모가 억울함을 토로하며 오열하자 오히려 달래주기도 했다.
경찰은 뒤늦게 나섰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1월 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머리 숙여 사과한 뒤 “이번 사안으로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를 드린다”며 초동 대응 미흡에 대해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양천경찰서장에게 책임을 물어 대기 발령 조치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아동학대 전담 수사 부서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시·도경찰청 소속 특별수사대의 기능을 확대, 특별수사대 내에 아동학대범죄 전담팀을 별도로 두는 형태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한 조치들은 여전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첫 공판을 앞두고는 살인에 비해 형량이 낮은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한 부분이 집중포화를 받았다. 경찰은 “죽이려고 한 게 아니다”라는 양모 장 씨의 진술과 여러 정황 등을 토대로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살인죄의 구성 요건을 고려한 조치이기도 하다. 통상 살인죄로 처벌하려면 △고의성 △계획성이 입증돼야 한다. 즉 정인이를 죽이려는 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학대를 했다고 볼 정황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경찰은, 이 고의성 입증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비교적 처벌 수위가 낮은 아동학대치사로 양모와 양부를 기소했다. 양모 장 씨 측이 변호인을 통해 “학대 사실은 인정하지만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 주효한 것이다.
법조계가 분노하는 대목이다. 드러난 정황들로 볼 때 살인죄로도 다퉈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지적이다. △16개월의 어린 정인이에게는 어른 주먹으로 때리는 충격만으로도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 △아이가 제대로 섭식하지 못하는 등 생명이 위독한 신호가 있었음에도 필요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에 의한 살인 혐의 적용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거센 비난 여론에 검찰은 발 빠르게 대처했다. 첫 재판이 열린 지난 1월 13일, 공소장 변경으로 혐의를 아동학대치사에서 살인으로 변경했다. 대신 살인 혐의가 무죄가 나올 가능성을 대비, 아동학대치사는 예비적 기소 조치를 해뒀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법원에 피고인을 처벌해달라고 요청할 때 주의적 기소로 혐의를 적용하지만, 혹시 처벌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예비적 기소라고 해서 추가로 혐의를 더 걸 수도 있다”며 “경찰이 처음부터 살인죄로 기소하고, 만약을 대비해 아동학대치사를 예비적으로 기소하고자 했다면 오히려 칭찬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양부모 측은 ‘살인의 고의성과 계획성’을 부정하는 데 집중했다. 첫 공판에서 양부모의 변호인 측은 “(사망의 원인이 된) 췌장이 파열될 정도의 충격을 준 적이 없다. 일부 폭행 또는 과실이 사망에 인과관계가 있을 순 있으나 고의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법조계는 살인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법원은 지난 2017년 발생한 ‘원영이 학대 사건’의 가해 부모에 대해 마땅히 해야 할 구호조처 등을 하지 않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인정하고, 원영이의 양모와 친부에게 각각 징역 27년과 17년을 선고한 바 있다.
재판 당일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법원에는 사건에 분노하는 시민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재판이 열린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는 오전 8시부터 시민들이 ‘정인이 살려내라’ ‘장XX(양모) 사형’ 등의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정인이를 추모하는 근조 화환이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줄지어 놓여져 있었다.
시민들은 취재진과 뒤엉켜 양부 안 씨가 탄 차량이나, 양모 장 씨가 탄 호송차를 막고 서서 “살인자!”라며 소리를 질렀다. 눈을 던지거나 차량 창문을 두드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정인이를 살려내라”면서 남편 안 씨가 탄 차량을 둘러싸고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현장을 찾았던 고 아무개(30세) 씨는 “정인이 사건을 기사로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법원 앞에서라도 목소리를 내고 싶어 찾았다”며 “살인죄로 엄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